[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타고난 최고의 싸움꾼 야곱 147

“나는 어떤 조건에도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떠날 수 없어요. 비록 우리가 화해를 했어도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삶을 사는 당신과 함께 어울릴 수가 없으니 여기서 이만 헤어집시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게 나의 솔직한 심정입니다”라고 야곱은 에서의 심기를 건드리고 가슴에 대못을 박는 야박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20년 만에 만나 어렵게 갈등과 원한의 결박을 끊고 화해했는데 찬물을 끼얹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함께 갈 수 없는 이유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천천히 뒤를 따라 갈 테니 먼저 출발하라고 에서에게 말했다. 뒤따라올 것을 믿고 먼저 세일에 당도하여 기다렸다가 전화도 받지 않고 모든 연락이 끊긴 뒤 뒤늦게 야곱이 거짓말한 것을 알고 에서가 격노하여 “그러면 그렇지 사람을 속여먹던 버릇이 어디 가나? 이제 야곱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안 믿는다.”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부르르 떠는 한이 있어도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지금 눈 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하는 게 가장 급한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야곱은 최대한 부드럽고 우아한 이별을 선택했다. 창35장 말미에 이삭이 죽자 에서와 야곱이 만나 그를 장사하였다는 말에서 에서와 야곱이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을 알 수 있다. 에서가 “우리가 떠나자(Let us be on our ways)”고 한 말에도 우리가 각자 자기의 길을 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무튼 야곱은 세일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북쪽으로 방향을 바꾼 뒤 다시 얍복강을 건너 시속 80마일로 급히 차를 몰아 숙곳(Succoth)에 도착했다. 숙곳은 요르단에 가까운 장소였다. 그는 왜 약속의 장소인 벧엘이 아니라 숙곳으로 갔을까?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돌기둥을 세우고 다시 그 장소로 돌아올 것을 하나님에게 서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이를 먹고 기억력이 가물가물해져 지명이 잘 생각나지 않아 애를 먹어도 그렇지 어떻게 벧엘을 잊어버릴 수 있나? 그가 에서를 따라가지 않은 것은 “참 잘했어요!”하고 칭찬 스탬프 도장을 5개나 받을 만큼 매우 잘한 일이지만 벧엘로 가지 않고 숙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아마도 그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 위에 위치해 있어 가나안과 다른 도시들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임시거처를 마련할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그가 요르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18개월동안 이 장소에 머물렀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가 에서에게 제공한 많은 선물을 보충하기 위해 물자와 자원이 풍부한 이 장소에 머물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는 숙곳에 정착하기 위해 명문학군이 있는 지역에 집을 산 뒤 침대와 가구 등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집안 정리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희생이 따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손해보는 장사도 각오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자기 생각과 고집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을 방해하는 큰 장애물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순순히 자기 생각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부분적인 순종은 차라리 불순종보다 못하다. 부분적인 순종도 순종이라고 착각하기가 쉽기때문이다. 야곱이 벧엘로 가는 것을 잠시 뒤로 미루고 눈에 보이는 숙곳에 정착한 것은 명백한 불순종이다.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반대쪽에 있는 다시스로 줄행랑을 쳤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도망할 생각을 했을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니느웨에 가려고 생각했을까? 그는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괴롭힌 니느웨 사람들이 심판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가해자에게 선처를 베풀기 전에 먼저 피해자를 회복시키고 복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틀에 갇혀 있었다. 그는 풍랑을 만나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제 정신이 들었다. 죽기 전까지는 쉽게 변하지 않는 게 사람이다. 이스라엘은 싸움이 일어나면 늘 두들겨 맞는 피해자였다. 그들에겐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언제 적이 공격해 올지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고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공황장애를 앓는 환자처럼 폐쇄적이 되었다. 타인에 대한 사랑보다 미움과 증오, 적대적인 감정이 앞서고 불평불만이 많아졌다. 트라우마가 그들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방의 빛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지만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 갇혀 있었다. 사명을 잃어버린 공동체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그들은 요나처럼 마음의 문을 닫고 자기 생각과 고집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엉뚱한 목적지를 향해 가는 어리석음에서 돌이키지 못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