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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로마서 – 깊게 천천히 오래 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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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다니면서 성경을 읽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만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읽는 것을 포기하고 인터넷에서 설교 방송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챈들러에 사는 김 집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했다.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어떻게 5,000명을 먹일 수가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의문점이 생기거나 이해가 되지 않으면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누군가로 부터 시원한 답을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먹기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밥을 떠먹여 주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그 사람의 밥그릇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말씀하셨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아무 노력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여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는 불가능하다. 의문점이 생기면 “왜(Why)?”하고 묻고 스스로 답을 찾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개선과 발전은 작은 의문점을 갖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저자가 느꼈던 깨달음과 통찰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지려면 그가 품었던 의문점을 공유해야 한다. 통찰(Insight)은 내면(Inner)과 시선(Sight)의 합성어로 내면을 꿰뚫어보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깊은 내공과 학문적인 지식, 영적인 체험과 성령을 통해 뿜어 나오는 통찰을 가진 사람이다. 로마서는 바울이 쓴 13 또는 14개의 서신 중 대표적인 서신이다. 로마서를 깊게 천천히 읽고 묵상하고 되새기며 그의 깊은 깨달음과 통찰을 함께 나누기를 소망한다.

로마서에 관한 설교들이 인터넷에 넘쳐나고 주석서와 연구자료 등 로마서에 관한 정보가 홍수를 이룰 정도로 많다. 그러나 로마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무엇이 로마서를 이해하는데 큰 장애물일까? 동네에 사는 박 집사는 “나는 로마서를 여러 번 읽었지만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일반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좀더 쉽게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좀 아쉽네요. 만약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 만 알 수 있다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하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구약성경은 오래 전에 기록되었으나 신약성경은 신약이라는 단어 때문에 오래되지 않은 걸로 착각하기 쉽지만 신약성경 역시 2,000년 전에 씌어졌다. 근본적인 문제는 2,000년 전에 기록된 글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과 시각으로 읽는 데 있다. 조선시대 때 기록된 글을 읽으면 현재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많고 당시 시대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더구나 우리가 잘 모르는 다른 나라, 예를 들면 스페인의 어느 학자가 2,000년전에 쓴 글을 읽는다면 더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의 구조나 글을 쓰는 방식이 다르고 관습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비유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당시 예수님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 중의 한사람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보다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과 동일한 관점에서 접근할 때 그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서는 바울이 57년 봄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전 고린도에 3개월동안 머물렀던 겨울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서는 그의 다른 서신들과 달리 구약성경을 빈번하게 인용한다. 그는 누구보다 구약성경에 정통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나서 성경을 보는 관점이 크게 달라졌고 그는 예수를 기준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아담과 관련된 창세기 1-3장, 그리고 아브라함의 언약을 다루는 창15장을 비롯해 그가 좋아하는 출애굽기와 신명기 32장, 시편 2, 8, 44, 110편과 이사야 40-55장에 이르기까지 로마서는 구약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어 구약성경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는 철저하게 바리새인의 삶을 살았다. 그를 이해하려면 유대인의 사고방식과 문화와 역사 그리고 그들의 신앙을 알아야 한다. 로마서는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일본어를 잘하는 한국사람이 일본어로 책을 썼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여전히 한국인 고유의 정서와 감정이 담겨있는 것처럼 로마서는 헬라어라는 옷을 걸쳤을 뿐 그 안에는 유대인들의 신앙과 정서가 숨쉬고 있다. 그리스의 철학인 헬레니즘과 유대인들의 헤브라이즘은 세계 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그러나 히브리적 토양에 뿌리를 둔 성경은 히브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나무에 집착하지 않고 숲을 볼 수 있다. 서구사회를 이끌어가는 기본 사상은 헬레니즘에 기초한다. 플라톤의 철학이 중세시대에 기독교 안으로 흘러들어와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믿음의 뿌리는 어디에 있나? 아테네인가? 아니면 예루살렘인가?
                       

정기원 목사 (602) 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