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로마서 – 깊게 천천히 오래 보기 9

우리는 자기 중심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다. 모든 것의 중심은 나이다. 우리가 구원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관심사는 우리의 구원이 아니라 나의 구원에 있다. 우리가 죽어서 각자 심판을 받고 천국에 간다는 개념은 극도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부추긴다. 경쟁이 치열한 곳에는 사랑이 싹틀 수 없고 공동체가 존재할 수 없다. 다른 경쟁자들을 밀어내야 내가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랑과 경쟁은 반대되는 개념이다. 만약 천국에 들어갈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면 누구보다 내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이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든, 옆에서 누가 죽어가든 상관없이 나와 내 가족이 천국에 가면 모든 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길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애써 외면한 채 지나치는 위선적인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강조하고 타인에 대한 이타적인 사랑을 가르친다. 나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속한 나로 존재한다. 구원은 개인을 넘어 모든 인간과 피조물과 세상의 구원으로 확대되어 부활과 새창조로 완성된다. 구원을 받은 자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헌신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왜 구원을 받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소명을 자각했기 때문에 개인의 구원에 집착하지 않았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신은 얼마나 기쁘게 살았나? 그리고 얼마나 남들을 기쁘게 했나?” 이 두가지 질문에 예스(Yes)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앞두고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이라는 이름아래 소수의 의인이 악인들과 함께 죽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정의의 본질과 목적은 생명을 죽이는 게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고 살리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려고 할 때 그들을 멸망시키는 대신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호소했다. 리더는 맨 마지막에 밥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목자의 마음에 항상 양 떼가 있는 것처럼 그의 마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있었다.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바라고 선언했다. 그들에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함이 있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쉰들러는 재산을 정리하여 나치의 학살로부터 유대인 한사람이라도 더 구출하려고 애썼다. 이 차도 팔 수 있었을지 몰라. 내가 왜 안 팔았지? 만약 이 차를 팔았다면 열 명은 더 살릴 수 있었어”하고 안타까워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준다. 타인에 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잃어버린 채 홀로 천국에 가기를 꿈꾼다면 천국은 탐욕에 불타는 이기주의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전락하여 쓰레기 처리장같이 악취가 진동하는 곳이 될 수밖에 없다.
천국에 다녀왔다고 간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어디를 갔다는 말인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간증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본 천국은 한결같이 겉모습에 집중되어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천국에는 눈부시게 휘황찬란한 금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각종 보석으로 꾸며진 화려한 궁전이 있다. 날개 달린 천사들이 날아다니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트로트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고 7성급 호텔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을 무제한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또 만나고 싶었던 가족이나 친구들도 만나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은 천국에도 다 있다. 스마트 폰과 초고속 인터넷도 이용이 가능하고 영화관과 노래방이 있고 골프장도 있어 심심치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천국은 물질주의에 찌든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소산물인지 모른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천국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주위에 이십 사 장로들과 네 생물이 있었는데 그들은 쉬지 않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천국은 궁전과 성전이 결합된 형태로 보좌에서 하나님이 통치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였다. 천국은 하는 일없이 빈둥빈둥 놀고먹기 위한 도피장소가 아니었다. 당신이 믿는 구원은 현실도피나 탈출을 위한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인가? 아니면 세상을 위한 구원인가?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