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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로마서 – 깊게 천천히 오래 보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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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도록 전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가르치고 명령하신 것을 그대로 지키며 말씀대로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로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한 솥밥을 먹고 동고동락하며 함께 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게 하셨다. 서로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다. 그는 예수를 본받는 데 진심이었고, 사람들이 그런 진심을 본받기를 원했다. 물론 노력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지는 않는다. 조각가에 의해 돌이 깎여 나가고 다듬어지듯, 성령에 의해 우리의 나쁜 습관과 탐욕이 부서져 떨어져 나갈 때 변화된다.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바울은 예수를 본받기 위한 훌륭한 롤 모델이었다. 그는 자신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를 닮아 가는 것처럼, 사람들이 예수를 닮아 가기를 원했다. 우리는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 모든 이방인이 예수를 믿고 순종하도록 복음을 전하고, 믿음의 순종(obedience of faith)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자 소명이다.믿음과 순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믿음이 없는 순종은 맹목적인 순종에 불과하고, 순종이 없는 믿음은 실체가 없는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로마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의 순종’을 반복해서 강조하며 순종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친다(롬 1:5, 10:16, 15:18, 16:2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이 구절은 로마서의 주제문으로, 복음의 힘이 미치는 영향과 결과를 다룬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복음이 자랑스럽다는 수사학적 표현이다. 복음이 자랑스러운 이유는 복음이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힘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적들의 침략을 받아 압제와 고통 속에서 많은 눈물의 세월을 보냈다. “하나님은 왜 우리의 고통을 보고만 계실까?”라는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이 결국 자신들을 구해 주시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믿었다. 복음의 증인으로 살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에는 이런 믿음과 희망이 엿보인다.또 이 문장은 “복음은 왜 부끄러운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고난이나 고통을 걱정하고 지레 겁을 먹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고통 없는 삶은 없다.오스트리아에 사는 한 부부는 너무 편안한 삶이 싫다며 대서양 끝에 있는 허허벌판으로 이주했다. 혼신의 노력으로 황무지를 가꾸고 홀로 서기에 성공한 그들은, 무기력감을 떨치고 전력 질주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자신감과 믿음이 있는 한, 어떤 고난과 실패에도 끝까지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술장사를 하는 엄마가 있었는데, 딸은 엄마의 직업을 몹시 부끄러워해 이 사실을 숨겼다. 술장사에 대해 나쁜 선입관을 갖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엄마를 이해하게 된 딸은 더 이상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열심히 사는 엄마를 부끄러워했던 자신이 더 부끄러웠다. 서슬이 시퍼런 로마 제국의 권력 앞에서, 그들이 하찮게 여기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로마는 종교에 관해 비교적 개방적이고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후에는 로마 황제의 신격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을 신으로 여겼고, 아우구스투스는 신전에서 자신에게 경배하는 것을 허락했다. 로마 황제 숭배 의식(imperial cult)은 헬레니즘 문화의 다신론, 조상 숭배, 전설적 영웅의 신격화 등의 영향을 받아 네로 시대에 종교로 자리를 잡았고, 도미티아누스 때에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받들지 않는 것을 범죄 행위로 간주했다. 크리스천들은 종교의 특수성을 인정받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로마 황제 숭배 의식과 관련된 행사나 상인들의 단체인 길드(trade guild), 또는 각종 체육 경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크리스천들은 이방인들에게 질시와 배척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에게 닥칠 피해와 희생을 무릅쓰고, 당당하게 “나는 크리스천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정기원 목사 (602) 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