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로마서 – 깊게 천천히 오래 보기 16

“누가 진정한 세상의 왕인가?”라는 질문에 로마황제가 아니라 예수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예수를 부끄러워하는 자는 결국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8:38) 바울은 복음으로 인해 받는 박해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시편의 말씀처럼 대담하고 당당하게 행동했다.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이며”(시119:46) 그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하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정호승 시인은 말했다. 분명한 목적이 있고 가치가 있는 삶을 위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했다. 복음은 세상을 구원하는 수단이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힘이다. 그 강력한 힘에 압도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홀로 세상에 맞설 수 있다. 복음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뒤집어 엎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복음에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하나님의 정의가 있고 하나님의 나라의 구현이 있다. 그는 복음을 십자가의 말씀으로 표현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1:18)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자들은 미련한 자들이고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세상의 왕과 주님으로 선포하고 예수가 재림할 때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부활을 믿었다.
롬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구원은 보편적이고 범 세계적이다. 따라서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그는 복음이 “먼저 유대인에게 그리고 헬라 인에게”라는 사역의 원칙과 우선순위를 표명했다. 실제로 그는 가는 곳마다 먼저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가 이런 사역의 패턴을 유지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부응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에게 빚진 자라고 말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세상은 유대인과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로 나누어지고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은 다시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헬라어를 모르는 사람, 즉 야만인으로 구분된다. 로마 사람들은 모두 헬라어를 사용했다. 그는 사도로 부름을 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가졌고 이를 그들에게 빚진 자로 표현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이 유대인들에게도 빚진 자로 생각했다. 복음이 유대인들을 통해 이방인에게 전해지는 것을 당연한 순서로 생각했지만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고 대적함으로써 복음은 유대인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이방인들에게 전해졌다. 이제 순서가 바뀌어 믿는 이방인들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다시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사역을 계속 하면서도 유대인들을 볼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어떻게 하든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을 통감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그는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복음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힘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왜 하나님의 힘인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거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의미한다. 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유격 전치사인 of를 문맥상 주격 또는 목적격으로 보는 것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자신의 의,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를 의미하거나 하나님 앞에 선 우리들의 의를 의미한다.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기독교는 그의 주장에 따라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을 위한 우리들의 의로움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는 본문의 내용에서 벗어난 잘못된 해석이다. 우리는 바울이 이야기하려는 요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히브리적 관점에서 이 단어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의 의는 3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 둘째는 가난한 자와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정의, 세째는 세상의 마지막 때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힘이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