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로마서 – 깊게 천천히 오래 보기 17

하나님이 의롭다는 말은 하나님은 믿고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의 관계를 맺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하나님의 의로움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약속을 지키고 어떤 경우에도 언약의 관계를 깨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담겨있다.
창38장은 유다와 다말의 시건을 다룬다. 첫째와 둘째 아들이 죽자 셋째 아들을 며느리인 다말에게 주기를 꺼렸던 유다는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그녀를 처가로 돌려보냈다. 대를 이어야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절대적인 권한과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유다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 그녀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떠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집안에 남기로 결심한 뒤 목숨을 건 위험한 모험을 감행했다. 아내를 잃고 상심에 빠진 유다가 양털을 깎기 위해 딤나에 올라갔다. 기회를 엿보는 사냥꾼처럼 다말은 얼굴을 가리고 길목에서 그를 기다렸다. 멀리서 그녀를 창녀로 오해한 그는 성욕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접근했다. 후에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고 격노한 유다에게 그녀는 보관하던 그의 소지품을 보여주었다. 그는 다말이 자기 아이를 가진 것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녀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녀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녀를 가까이하지 않았다”(창38:26) 유다는 가장으로서 집안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쿨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왜 그녀가 자신보다 의롭다고 했을까? 그녀가 의롭다는 말은 그녀가 유다보다 더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관계에 있어서 그녀의 판단과 행위가 옳았다는 뜻이다. 그녀의 도발적인 행위에 의해 그들의 관계는 회복되었고 유다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깨달었다. 의로움은 관계용어로 언약의 관계에 기초한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What is right and wrong?)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물음이 의로움을 결정한다. 언약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특성이나 성품을 표현하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동사와 같이 행동을 강조하는 동적인 단어이다. 다말이 대담한 행동을 통해 의로움을 입증했듯이 의로움은 행위를 동반한다.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졌다고 해서 다 선생은 아니다. 현재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을 때만 선생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전쟁터에 있어야 할 군인이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면 그는 군인이 아니다. 가수는 무대에 있을 때 가장 가슴이 벅차고 흥분되며 뜨거운 열정으로 무대를 불태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의로운 행동을 하실 때 하나님은 의롭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의로운 행동은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활동이고 하나님의 정의를 드러내는 행동이다.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라 이스라엘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라” (삿5:11) 구약성경 사사기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행동을 언급한다.
하나님의 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언약(Covenant)은 관계와 계약이 결합된 단어이다.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변치 말자고 서약하는 것처럼 언약은 쉽게 파기할 수 없는 사랑의 관계로 맺어진 계약이다. 아브라함은 암소, 암염소, 숫양, 산 비둘기, 집 비둘기의 중간을 쪼개고 마주 대하여 바닥에 펼쳐 놓았다. 언약을 맺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랏 베릿(Karat Berit)”이다. 여기서 카랏은 자르다(Cut)는 뜻이고 베릿은 언약(Covenant)을 의미한다. 왜 ‘언약을 자른다’고 표현했을까? 언약은 바닥에 뒹구는 동물의 시체처럼 언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반 토막이 나도 좋다는 죽음의 맹세를 요구한다. 언약의 의식을 거행할 때 당사자가 동물의 시체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그 길은 동물의 시체와 피가 흥건하게 베어 있는 죽음의 길이다. 그런데 동물의 시체 사이를 누가 지나갔나? 아브라함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 하나님이 죽음의 길을 지나간 것은 그에게 준 약속을 보증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언약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죽음의 대가를 지불하셨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실 것을 예고하는 예표였다. 언약을 맺으려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과의 무너진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언약, 모세의 언약, 다윗의 언약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으로 완성될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였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