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로마서 – 깊게 천천히 오래 보기 18

언약은 당사자들에게 언약의 신실함을 요구한다. 언약의 신실함은 언약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변함없는 노력과 헌신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언약을 깨뜨렸다고 해서 하나님도 언약을 깨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정의가 설 자리가 없다. 정의는 무엇인가? 영화 ‘레미제라블(The miserable)’에서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19년 동안 감옥에서 옥살이를 한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어느 곳에서도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은 불공평한 세상, 정의와 사랑이 없는 메마른 사회에 대한 분노심과 증오로 가득했다. 그는 우연히 미리엘 신부의 집에 들어가 따뜻한 식사를 대접받고 잠을 자다가 새벽에 은 식기를 훔쳐서 달아났다. 그가 경찰에 잡혀오자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은 식기를 주지 않았나? 왜 은 촛대는 가져가지 않았나?” 미리엘 신부는 아무 조건 없이 그를 용서해 주었다. 장발장은 처음으로 용서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고 용서의 힘이 그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 뒤를 추격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베르 경감으로 법과 정의를 신봉하는 원칙주의자이다. 한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고 죄를 지은 사람은 법의 혹독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용서를 모르는 그가 죽음의 위기에 몰렸을 때 장발장은 그를 살려주고 용서를 실천했다. 간음한 여인이 현장에서 잡혀 예수님에게 끌려왔다. 사람들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정의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고 그녀를 살리는 것이 정의라고 가르치셨다. 심판의 목적은 생명을 파괴하고 죽이는 게 아니라 생명의 치유와 회복 그리고 구원에 있다. 사랑과 용서가 결여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의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처벌과 심판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회복과 구원을 도모한다. 악한 자들이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악한 자들에게 희생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구원하는 것도 정의이다. 하나님의 통치의 원칙은 사랑과 정의이고 이 둘은 하나이다. 하나님의 정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통치하고 계시다면 왜 세상에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가? 악한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데 오히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불행하게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전쟁이나 지진 등 무고한 생명이 희생을 당하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가? 왜 하나님은 이 세상 문제에 개입하여 즉각 해결하시지 않는가? 많은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 포로 수용소에 갇혀 고통을 받고 독가스실에서 죽어 나갈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그러나 십자가를 보라! 예수는 십자가에서 인간의 고통을 겪으시고 죽음을 경험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일하시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고 세상을 구원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고 마침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 미션이 완수되었다.
의로움(Righteousness)은 헬라어로 ‘디카이오수네(dukaiosyne)’이고 형용사와 동사가 있지만 영어에는 동사가 없다. 헬라어 동사를 유사한 의미로 옮기면 ‘정당화하다(Justify)’ 또는 의롭게 하다(make righteous)가 된다. 하나님이 언약을 깨뜨린 사람을 의롭게 하실 때 하나님은 의롭다. 의인은 죄가 없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이다. 본래 의로움은 법정용어이다. 프리웨이에서 시속 100마일이 넘게 달리다가 과속으로 경찰단속에 걸린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과속운전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판사는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월급은 얼마나 받는지, 그가 아내에게 얼마나 좋은 남편이고 자녀들에게 좋은 아빠인지, 또는 얼마나 정직한 사람인지를 묻지 않았다. 판사는 그가 과속으로 운전한 사실에 근거하여 죄의 유무를 판단하려고 했다. 판사가 “왜 과속으로 운전했느냐? 어디를 그렇게 급히 가려고 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임신한 아내가 고통을 호소해 밖에서 일을 보다가 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해명했다. 판사는 급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그의 진술을 듣고 정상을 참작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좋은 판사를 만난 덕분에 벌금도 내지 않고 재판을 끝낼 수 있었다. 그가 법을 어겼지만 판사가 그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무죄가 되었다. 하나님의 의는 어떤 조건이나 요구사항이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는 놀라운 구원의 선물이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