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로마서 – 깊게 천천히 오래 보기 20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18-20)
그는 1장18절부터 3장20절까지 법정에 선 검사처럼 인간의 본성과 문제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인간의 죄를 묻는다. 바울은 먼저 이방인들을 법정에 세워 그들의 불의를 고발하고(1:18-32) 이어서 유대인들의 불의를 지적한 뒤(2:1-3:8) 모든 사람의 불의를 고발한다(3:1-20). 그는 모든 인간의 총체적인 위기를 다룬다. 그러나 그는 신랄하게 인간을 비판하지만 인간의 본연의 가치와 중요성을 존중한다.
살다 보면 기쁜 소식과 더불어 나쁜 소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쁜 소식이 있음으로 기쁜 소식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원한지만 좋은 일만 일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들로 인해 존재한다. 빛이 있기에 어둠이 있고 행복이 있기에 불행이 있다. 혹독한 추위를 동반한 겨울이 있기에 따사로운 온기로 몸을 감싸주는 봄이 있다. 쓰라린 실패가 있기에 달콤한 성공이 있고 좌절과 절망이 있기에 희망과 도전이 있다. 고통은 오히려 우리를 단단하게 하고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을 주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 나쁜 소식은 현재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게 만든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구원하는 의라면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게 하는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심판하는 의이다. 17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18절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데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가 17절과 18절을 연결한다.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다. 인간은 진리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하고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게 되었다. 점점 악화되는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의를 필요로 한다. 다른 출구나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죄의 악함과 하나님의 진노의 깊이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문제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시골에 수백 년 된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은행나무는 고단한 일상을 멈추고 쉴 수 있는 쉼터였고 마을 사람들의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지 나뭇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해 나무의 건강상태를 알려주는 경고신호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고 땅 속 깊이 자리잡은 뿌리가 썩고 있는 줄을 몰랐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멈출 수 없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파멸과 죽음이 기다리는 종착역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지만 위기를 인식하지 못했다. 암에 걸린 사람이 뚜렷한 증상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어느 날 심한 고통이 찾아오자 병원에 가서 암 말기라는 시한부 인생을 판정 받고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것처럼 사람들은 인간의 위기를 외면한 채 다른 데 정신이 팔려 바쁘고 분주한 삶을 산다. 모두가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세간에 유행하던 대통령의 격노처럼 하나님이 분을 참지 못해 벌컥 화를 내며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관리하는 하나님은 거짓말과 속임, 도둑질, 살인, 전쟁, 온갖 부조리와 불법, 도덕적 불감증, 성폭력과 강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을 수수방관하고 보고만 계시지는 않는다. 심판을 동반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하나님의 정의의 표현이다. 우주만물을 위한 하나님의 목표는 샬롬(Shalom, 평화)이다. 하나님은 사자와 양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어울려 지내는 것처럼 모든 피조물이 하나의 질서아래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모든 피조물을 위한 최적의 장소가 이 세상이다. 아내가 있을 때는 밥하고 빨래하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아내가 떠나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샬롬의 소중함을 모르고 오히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평화가 깨어지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질서와 평화가 없는 세상을 원하는 걸까? 하나님의 의는 샬롬을 만드는 행위이다. 모든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시작되었다. 인간과 피조물과 하나님은 불가분의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관계의 소중함을 유지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세상은 점점 더 나빠졌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