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로마서 – 깊게 천천히 오래 보기 25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2:13) 바울은 율법을 행할 것을 강조한다. 이는 모순되는 말처럼 들리기 쉽다. 롬3장은 아무도 의로운 자가 없고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더구나 그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않고(갈2:16) 율법의 행위에 의존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다고 주장한다(갈3:10). 그런데 모든 사람이 행한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면 결국 행위로 평가받고 구원받는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그가 이토록 행위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평생 살면서 행한 것을 조사해 대차대조표로 만들면 잘한 행동보다 잘못된 행동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믿는 나는 그 많은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최후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가? 입학 정원제를 없애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도록 대학의 문을 개방한 후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처럼 구원의 문은 처음엔 넓게 보이지만 결국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인가? 물론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이 세상은 범죄가 끊이지 않는 무법천지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믿음에 의한 칭의(Justification by faith)와 최후의 심판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많은 크리스천들은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한번 구원받았으면끝까지 구원받은 사람인가? 아니면 언제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
예수를 믿기 시작해 몇 년간 열심히 교회에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가정에 문제가 생겨 이혼하고 교회를 떠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는 구원을 받았다가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인가? 만약 그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잘못을 회개하고 다시 돌아왔다면 그는 구원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구원을 받은 사람일까?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여 구원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구원은 언제라도 잃어버릴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것인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끝에 가봐야 구원받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롬2:16)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고후5:10) 그러나 죄가 없는 사람은 없고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지으며 산다. 따라서 우리에겐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여기서 악은 믿음을 버리는 배교를 의미하고 배교는 구원을 위해 예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행위이다. 우리는 주기도문의 내용처럼 죄의 용서를 구하고 믿음을 지키도록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로마서에서 순종을 강조한다. 순종은 믿음에서 온다. 믿음이 뿌리이고 행위는 열매이다.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온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한다. 따라서 행위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겉을 중시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2). 바울은 크리스천을 마라토너에 비유한다(빌3:11-14). 우리에게 중요한 건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 완주하는 거다. 11절의 말씀처럼 그의 목표는 새창조와 부활이다. 끝까지 완주하려면 예수를 믿는 믿음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완주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단 한 사람이라도 믿음의 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할 것을 약속하셨다. 큰 그림에서 보면 한번 구원을 받으면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다가 포기하고 떠난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사람은 구원을 잃어버렸다고 하기보다 처음부터 성령의 능력과 삶의 변화를 온전히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강력한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다면 성령이 그 사람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심판의 기준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우리의 마음이다. 얼마나 진실한 마음과 진정성이 있는 믿음을 가졌는지가 기준이 된다. 최후의 심판은 예수를 믿고 난 후의 삶을 강조한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화두처럼 되새기며 살아야 한다. 최후의 심판은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이미 현재라는 시간 안으로 들어왔다. 심판은 무섭고 두려울 수 있지만 오히려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완전한 구원의 시간이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