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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로마서 – 깊게 천천히 오래 보기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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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3:21).
이제 율법과 달리 하나님의언약의 신실함이 나타났다. 율법 아래 속하지 않기 때문에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아무 차별이 없다. 인간이 위기의 해결책을 찾는데 실패한 자리에서 복음이 시작되고 하나님에 의한 해결이 시작되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인간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증가하여 인간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이제 바울은 입장을 바꾸어 인간의 문제를 파헤치는 검사가 아니라 변호사의 역할을 한다. 부정이 긍정이 되고 절망이 희망이 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대표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획을 완성하셨다. 사람들은 로마서에서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이라는 기본명제를 재확인하려고 한다. 특히 롬3:21-31은 기독교의 신학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마르틴 루터가 주장하는 “믿음에 의한 칭의(Justification by faith)”를 뒷받침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전혀 문맥에 맞지 않는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는 28절에 이어지는 29-31절은 다른 내용을 담고 있고 또 4장의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마서의 주제문인 1:16-17을 반복하고 확대 해석하여 그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하는 3:21-31은로마서의 첫번째 수사학적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부분이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3가지 단어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이는 사형선고를 받아야 할 죄인을 법정에서 무죄로 판결하는 칭의(Justification), 노예시장에서 노예의 몸값을 지불하고 해방시키는 구속(Redemption), 그리고 죄의 용서를 다루는 속죄(Atonement)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불의와 불경건에 대해 나타났다. 불의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롬1:32).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모두 죄의 통치아래 있다(롬3:9). 그러나 의로운 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24절).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두번째 출애굽을 암시하는 그림자였다면 예수의 죽음은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노예상태에 있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새출애굽(New Exodus)이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의 힘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힘은 신실함에서 신실함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이다(롬1:17). 22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은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통해 작동된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은 이스라엘과 세상을 위한 하나님 자신의 신실함을 드러내는하나님의 언약의 정의이다.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처럼 예수의 신실함은 그를 영원히 살게 하는 의로움이고 또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움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3:25). 율법과 달리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유대인이나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었다. 화목제물은 헬라어 ‘힐라스테리온(Hilasterion)’으로 달래기(Propitiaton) 또는 속죄(Expiation)를 의미한다. 히브리서9:5에는 속죄소로 번역되었다. 달래기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아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오해하기 쉬운 단어이다. 예수는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셨다. 속죄의 제물이나 장소를 의미하는 ‘힐라스테리온’은 은혜의 장소인 시은좌(Mercy seat)와 깊은 관련이 있다. 시은좌(속죄소)는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의 뚜껑(카포렛, Kapporet)을 지칭하며 제단으로 사용되었다. 대제사장은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황소와 염소의 피를 시은좌 위에 뿌렸다. 우리는 언약의 피를 통해 정결하게 된다. ‘힐라스테리온’은 피를 의미하며 예수의 피와 관련된다. 예수를 시은좌에 놓은 것은 우상숭배를 대신하는 참된 예배의 회복을 의미한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