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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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워드 캔들러씨, 이 회사주식 90 프로를 가진 나, 아사 캔들러, 당신의 제안에 반대합니다." 아들이면서 지금은 코카콜라회사의 사장으로서 회사 매각안건을 제안하는 호워드 캔들러를 향해 아사 캔들러는 특유의 갈라지고 떨리는 목소리로 일갈했다. 몇 시간 동안 아사 캔들러의  5자녀를 중심으로 코카콜라의 전 중역진들은 뉴욕의 누군가가 2,500백만 달러에 매입하겠다는 제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침묵으로 자리를 지키면서 못마땅한 발언이 나올 때는 버릇대로 양 손의 엄지손가락을 포개어 비벼대며 불만을 표시하던 아사 캔들러는 드디어 매각 안건이 표결에 부쳐지자 이렇게 반대하고나섰다. 1917년 1월 15일 아사 캔들러의 단호한 반대로 코카콜라는 잠시 아사 캔들러의 코카콜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후 1년 반만인 1919년 7월26일 코카콜라는 아사 캔들러가 경멸하는 수전노 우두러프 (Ernest Woodruff)의 신디케이트에게 2,500만 달러에 넘어갔다. 그날밤 늦게 이 사실을 안 아사 캔들러, 천하의 아사 캔들러는 두 줄기 굵은 눈물을 한없이 흘려가며 "애들이 일을 저질렀구나."하고 울부짖었다. 


1916년도 말, 아사 캔들러는 65세가 되면서 사장직을 장남 챠알스 호워드 캔들러에게 넘겼다. 8남3녀중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난 아사는 4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두었다. 이들 5명의 자녀와 평생지기 프랭크 로빈슨, 조카 새뮤엘 돕스 등이 회사의 중역을 맡아 회사를 이끌고 있었다. 중역진 중에서는 누이의 아들인 새뮤엘 돕스가 호워드의 사장직 승계에 불만이 많았다.


65세가 되며 사장직 장남이 승계

1868년생인 새뮤엘 돕스는 17세때 아사를 찾아와 일할 것을 청했다. 아사는 새뮤얼이 나이가 어리다고 거절했다. 그날밤 집안의 노예출신 종업원이 갑자기 사망하자 새뮤얼은 대신 그 일을 맡게되었다. 이후 새뮤엘은 다른 두 조카와 함께 회사의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않고 처리했다. 그는 특히 영업일을 도맡아하면서 오늘의 코카콜라를 일구는데 일등 공신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리고 미숙하다고 생각하는 호워드가 사장이 되면서 두 사람간에는 사사건건 불화가 일었다.

호워드가 사장직을 승계할 당시 코카콜라를 둘러싼 주위 여건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사상품을 마시고 사고가 난 소비자들이 코카콜라의 코케인 성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드디어 연방정부는 모든 식품과 의약품에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제거하는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다. 연방정부의 윌리 박사는 코카콜라에 함유된 소량의 코케인과 카페인을 문제삼았다. 코카콜라 측에서는 아사의 동생 존이 조오지아 주의 상급법원 판사직을 사임하고 전담변호사로 나섰다.(존 캔들러는 에모리 대학 재학중 방학을 맞아 귀가하다 미쳐 정차하지않은 기차에서 뛰어내리다 발목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 의족을 했다.) 윌리 박사 측에서 아사의 맏형 밀톤이 변론을 맡아 형제간에 법정대결이 벌어졌다. 그러나 양편에서는 코케인은 제거하고 카페인은 '티'의 원료인 잎에도 카페인 성분이 있음에 따라 정부 측에서는 카페인은 인정하기로 했다.


콜라에서 코케인 영원히 추방 

J.C. 메이필드는 펨버튼으로부터 코카콜라 시럽 제조법을 정식으로 전수 받았다고 주장하며 1914년 다시 코크라는 이름의 소다수를 판매했다. 소비자들은 코카콜라를 코크라고 줄여서 부르자 음료시장에는 자주 소비자와 업자간에 혼란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은 코카콜라 측이 부담했다. 코카콜라 측에서 코크측에 유사명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법적조치를 취하자 코크의 메이필드도 변호사를 통하여 맞대응하고 나섰다.

메이필드 측의 변호사는 법정에서 펨버튼이 아편중독자였다는 사실과 계약서에 서명한 도지어 여사와 펨버튼의 서명이 위조라고 주장했다. 1심 판결은 여러가지 정황상 코카콜라 측에 불리했다. 1920년도 있을 최종 판결을 앞두고 호워드를 비롯한 돕스 등 코카콜라 측 임원들은 예측할 수없는 판결에 불안해했다. 이틈을 비집고 먹이 사냥꾼 우드러프의 개런티 신탁회사 측이 샘 돕스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1917년 1월 어느날 정장차림의 두 신사가 애틀랜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1월의 애틀랜터는 곧 눈이라도 내릴 듯 하늘은 회색 구름으로 가득했고 싸늘한 겨울바람은 잎진 가로수 사이를 사납게 굴러갔다.


설탕부족과 유사상품으로 매출 급감

얼마 후 코카콜라 측은 중역회의를 열고 뉴욕 소재 익명의 회사가 2,500백만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의향서를 놓고 갑론을박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마침 애틀랜터 시의 제 44대 시장직에 당선된 아사는 코카콜라  주식 90퍼센트를 가진 대주주로서 이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이로써 코카콜라 매도 건은 외견상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해 연말 아사 캔들러는 자신이 보유한 모든 부동산과 주식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녀들에게 모두 넘겼다. 이제 아사 캔들러는 법적으로 코카콜라와는 무관한 사이가 되었다.

1918년 미국이 세계1차대전에 끼어들면서 모든 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덩달아 코카콜라 시럽의 주 성분인 설탕값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1 파운드에 5센트였던 설탕은 8센트까지 거의 배로 뛰어오르더니 8센트로도 구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정부가 설탕을 배급제로 공급하자 코카콜라 측은 절대 필요량을 확보할  수가 없게 되었다. 정부 측은 또한 전쟁비용 확보를 위해 모든 청량음료에 10퍼센트의 세금을 부과했다. 절대 필요한 설탕을 확보하지 못한 코카콜라 측은 설탕 수확기까지 공장 문을 닫아야했다. 설탕파동과 유사품의 범람으로 코카콜라 측은 1916년 1,000만 갤론의 매출이 1917년 1,200 백만 갤론으로 늘었으나 1918년에는 20 퍼센트가 감소한 1,000만 갤론으로 줄어들었다. 

코카콜라 측은 바틀링 업자 및 소다수 판매대 운영업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원활하게 시럽을 공급할 수 없음을 사과했다. 일부 소다수 판매업자들은 "코카콜라 시럽을 공급받지못해 코카콜라는 제공할 수 없습니다."라는 배너를 내걸기도 하고 어느 업소는 "코카콜라 대신 다음으로 인기인 아프리콜라를 제공합니다."라는 배너를 내걸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업자는 아예 코카콜라 대신 유사품을 코카콜라라고 판매하기도했다.


천하의 구두쇠 코카콜라를 노리다 

이처럼 혼미한 틈을 타고 우드러프는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뉴욕 소재 개런티 트러스트 (Guranty Trust)회사를 운영하는 우드러프(Ernest Woodruff)는 1863년  5월23일 조오지아의 컬럼부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짝달막한 체구에 지독한 악어턱을 가졌으나 제법  규모가 큰 제분공장을 운영했다. 애틀랜터로 올라온 우드러프는 애틀란타와 에지우드를 오가는 트로리 전차를 개설한 친척 조엘 허트에 이어 1904년 개런티 트러스트의 사장직에 오른다. 그는 장래가 유망하나 한때 곤경에 처한 회사를 합병식으로 인수하는데는 귀재였다. 그간 우드러프는 애틀랜틱 아이스 앤드 코얼, 애틀랜틱 스틸, 엠파이어 커튼 오일등 굵직한 회사를 합병했다.

그러나 그는 주위의 경멸을 받을 만큼 구두쇠였다. 그는 호텔에 머물면 눈에 띄는대로 비누를 모았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집어넣어 가방의 부피를 줄여 운반비를 절약할 정도였다. 어느 날 그의 짐을 들어준 포어터가 팁을 바라고 서있었다. 우드러프는 포어터 앞에서 부지런히 주머니를 뒤져가며 "호주머니에 동전이 있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그의 행태를 아는 포어터는 "사장님 호주머니에 언젠가 동전이 있었다면 지금도 그대로 있을 것 입니다."라고 응수했다고한다. 이런 우드러프를 아사는 경멸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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