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정기원 목사 기독칼럼] 십계명 9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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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이다(출20:14). 성경적으로 간음은 결혼한 여자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남자의 결혼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남자가 결혼했거나 약혼한 여자와 성관계를 갖는 것도 간음이다. 말2:10-16과 잠5:15-20은 남자의 행음과 부도덕함을 비난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성관계를 갖지 않으면 간음이 아니다. 간음죄를 큰 죄로 간주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사람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범죄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결혼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맺은 거룩한 언약이다. 따라서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간음은 결혼의 언약을 깨뜨리는 행위이다.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다른 말로 바꾼다면 결혼의 언약을 깨뜨리지 말라는 명령이 된다. 일곱째 계명은 성관계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만 결혼의 언약을 깨뜨리고 오염시키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십계명은 계명을 범했을 때 받게 될 구체적인 처벌규정을 명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레20:10과 신22:22에 따르면 간음하면 죽음을 당하는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 아들을 필요로 했던 이스라엘은 일부다처제였다. 따라서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합법적으로 다른 여자를 받아 들일 수 있었다. 솔로몬 왕은 아내가 700명이고 300명의 첩이 있었다. 신22:23-27은 강간과 자발적인 관계의 차이를 설명한다. 본인이 원해서 관계를 맺었는지 아니면 강제로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를 구분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특수한 장소를 제외하고는 여자가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했는지를 중시한다. 남녀가 결혼 전에 갖는 성관계는 간음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결혼해야 하며 이혼할 수 없다(출22:16-7, 신22:28-29).  

창1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축복하시며 집을 떠날 것을 요구하신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집을 떠나면서 그의 믿음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첫번째 수업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에게 결혼과 가정 그리고 아내의 의미를 가르치기를 원하셨다. 가정이 믿음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간 후 아내를 누이라고 부르며 애굽왕 바로에게 아내를 내어준다.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 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 가장인 남자의 생명을 지켜야 하고 이를 위해 여자의 순결을 희생하는 것은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내 사라 역시 자식을 낳지 못하자 그에게 여종인 하갈을 주어 동침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아브라함과 사라는 차례로 간음죄를 범한다. 창19장은 롯의 두 딸이 아버지 롯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하여 자식을 낳음으로써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는 잘못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창20장에는 아브라함이 아비멜렉 왕을 만나 또 아내를 내어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는 아비멜렉의 말을 통해 아내를 내어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임을 깨닫고 기도한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결혼과 가정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을 때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난다. 유다의 큰 아들 엘이 죽자 동생 오난은 형수인 다말과 동침한 후 형에게 씨를 주지 않으려고 땅에 설정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음을 당한다. 막내 아들인 셀라를 다말에게 주기를 계속 거부하는 시 아버지 유다에게 접근한 다말은 그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갖는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그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다윗 왕은 밧세바를 취하고 그의 남편까지 살해함으로써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른 후 눈물로 회개하며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음을 당하는 뼈아픈 댓가를 치룬다. 간음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가함으로써 인간 세상에 비극을 가져온다.  

예수님은 마5:27-30에서 성관계를 갖는 것만이 간음이 아니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 자체가 간음이라고 규정한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욕심, 음욕, 나쁜 생각을 제거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간음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스로 마음을 통제하고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자기통제가 필요하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기 마음을 다스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예수님은 마19:1-12에서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것은 간음이라고 정의한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이 완악함을 보시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선언하셨다. 문제는 우리의 왜곡되고 뒤틀린 마음과 태도에서 온다. 남녀가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위로하며 서로의 부족함을 메울 수 있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육체적인 사랑과 더불어 영혼을 살리는 영적인 사랑이 함께 어우러질 때 그 사랑은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된다.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은 단순히 간음하지 않으면 충분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라는 명령으로 이해해야 한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의 아내 또는 남편을 사랑하고 섬기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이웃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그들의 영혼을 품을 수 있다면 우리는 간음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B2BChurch.org 정기원 목사 (480)209-9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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