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의 날씨인데 미국의 동북부에서는 눈이 많이 와서 학교도 문닫고 회사들도 일찍 문을 닫아야하는 눈난리를 치르고 있다. 평균보다 높다고는 하지만 피닉스의 날씨는 어떻게 10월 하순에도 겨우 90도선 아래의 기온을 보여주니 피닉스의 여름날씨를 좋다고 해 본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건강 때문에 이곳에 온 이상 싫다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처지도 못된다.
요즘에는 괜스리 인생이 뭐라고 그렇게도 아웅다웅하면서 살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간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다투고, 상처받기도 하고, 서운 해 하기도 하고, 사람들끼리 티격태격 하는 감정의 노출을 보면서 역시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로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된다. 종종 사람들은 믿을만한 사람이 없으니 사람을 믿지 말라고도 한다.
제아무리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하다 가도 막상 도움이 필요할 때는 등을 돌리 는 것이 사람이라면서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이니 늘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얼마나 사람에게 실망을 하였으면 절대로 믿어서는 안되고, 모두가 겉치레에 불과하고 껍데기 인생들이니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고 일러 준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사람같은 사람 만나기 어려운 것은 실감하고 있었으나 사람을 믿지 말라하니 사람을 좋아하고 쉽게 믿기 잘하는 나에게는 어쩐지 섬찟 하게 들리기도 한다. 구름같이 떠도는 인생이라는 말이 왜 새삼 실감이 날까. 그래서 우리는 모두 떠돌아 다니는 구름 같이 안정되지 못하고 떠도는 인생이라 남에게 쉽게 믿음을 주지 못했던가.
말하는 모습대로라면 철석같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도 마음 변하기는 손바닥 뒤집기 하듯 쉽게 변하기 때문에 믿지 말라는 말이 나온 것일까. 배우고 배워도 모자라는 것이 인생공부인 것 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란것 의 가치를 소중히 해 준다면 사람이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텐데.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줄 알았으면 좋겠다. 인생이 뭐라고 자신의 귀한 가치를 쉽게 던져버리고 살 수 있을까.
7년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 늘 빠지지 않는 산책 코스가 있다. 경복궁과 경회루.
여름을 피해서 가느라 가는 계절이 비슷하게 가을 가까이 또는 늦가을에 가게되니 가을의 정취를 맛 보기에는 가까운 서울에서는 경복궁 만한 곳도 없는 것 같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10월의 하순을 지나가는 길목이었다. 친구와 함께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누가 뭐라고 먼저 말할 것도 없이 경복궁을 찾아 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하나의 순서처럼 되어 있었다.
서울의 날씨로는 약간은 쌉쌀한 날씨가 스카프를 목 주위에 걸치고 함께 있기만 해도 가슴이 부드러워지는 친구와 함께 걷는 것은 어쩌면 미국에 와서는 경험해 보기 힘든 날들이다. 경회루를 둘러보고 뒤 언덕길로 걸어 나오려면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어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우리의 기분을 마냥 부풀게 해준다. “시몬! 너는 좋으냐 /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하면 친구는 “그래 나는 너무 좋다 너와 함께 낙엽 을 밟을 수 있으니” 하고 나에게 대꾸해 준다. 그 친구의 미국 이름이 우연찮게도 시몬이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을 녹여주는 눈물이 고이게 해주는 귀한 친구.
프랑스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의 한 구절을 읊으면서 둘이는 마치 학창시절로 돌아가 두 사람의 감정이 포근하게 녹아 나는 듯 여자들끼리 팔짱을 끼고 한없이 걷고 있었다. 낙엽을 밟으면서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낙엽같은 신세가 된다는 것 조차 잊은 채 쌀쌀한 날씨임에도 둘의 마음은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가까이 오라 /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라 /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 바람이 몸에 스민다 / 시몬! 너는 좋으냐 /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한 잎파리 두 잎파리 휘날리는 낙엽을 밟던 생각을 하면서 세상이 우리를 속이더라도, 이웃이 우리를 빈정댈지라도, 믿었던 친구가 배신을 하더라도 나만은 그들과 똑같이 되지 않겠다고 마음 먹는다. ‘나’의 가치는 진정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기에.
10. 31.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