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유형지 바스크 레돈도로 가는 나바호 족의 ‘멀고도 먼 길’ – 연이은 흉작으로 위기에 처한 섬너요새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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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이래 메말랐던 황무지에  페코스 강물이 흐르자  땅 속에  묻혀있던 해충들이 기어나와 익어가는 옥수수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너른 대륙의 하늘을 검게 가렸던 비바람이 황무지를 지나자 추수를 기다리던  밀밭은 온통 물에 잠겼다. 보급품을 가득 싣고 요새로 향하던 군용마차는 평원을 주름잡는 키오와 인디안과  코만치 인디안에게 약탈당하곤 했다. 말썽많은 나바호를 강제 이주시켜  버림받은 땅 보스크 레돈도에 “아름다운 칼토니아”를 세우려던 칼튼 장군의 원대한 꿈 “섬너 요새의 나바호 수용소”는 계속되는 시련에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된다.

크로커 (Marcellus M. Crocker) 준장은 수확을 앞둔 옥수수가 야도충에 의해 황폐화되고 잘익은 밀밭은 폭풍우로 모두 물에 잠겨 한창 어수선할 때 섬너 요새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요새에 수용된 나바호가 무려 8천명에 이르자 이를 지휘하는 요새사령관도  소령에서 준장으로 격상되었다. 

“급식 양을 반으로 줄여라”

1864년 10월22일 크로커 장군은 칼튼 장군으로부터 기대했던 추수가 완전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유로 나바호에게 지급되는 양식은 곡류는 하루 12아운스, 육류는 8아운스로 줄여서 배식하라는 긴급명령을 받았다. 추수가 실패한 이후 윈게이트나 로스 피노스 요새에서는 더 이상 나바호 포로를 섬너 요새로 보내지 않았다. 또한 캔비 요새는 나바호 원정작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간다고 보고 1864년 10월8일 폐쇄했다. 잔여병력은 유니온 요새로, 그리고 자재는 로스 파노스 요새로 이전했다. 그리고 새로 투항하는 나바호는 유니온 요새와 로스 파노스에 수용 했다. 이곳에 수용된 나바호에게도 섬너 요새의 나바호처럼 연명할 정도로 최소한의 양식만 지급되었다. 

배식량에 비해 작업은 세었다. 고향을 기리는 나바호들의 한숨은 점점 길어지고 불만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또한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양식을 구하거나 고향을 향해 달아나는 나바호들은 늘어났다.

칼튼 장군은 나바호들의 불만을 강한 노동을 통해 억제하기로하고 새로 9천 에이커의 황무지를 개간하기로 했다. 페코스 강물을 끌어들이는 수로작업에 전 나바호들을 동원했다. 또한 칼튼 장군은 홍수로 물에 잠겼던 밀밭에는 콩을 심고 땔감으로 사라진 미류나무와 머스키트가 자라던 황무지에는 5,0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흉작소식에 반기를 드는 지역 여론

보스크 레돈도에서 가을 추수가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금까지 칼튼의 나바호 이주정책을 극찬하던 지역신문이나 여론은 싸늘하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산타 페의 지역신문 “뉴 멕시칸”은 나바호들의 약탈사건이 발생하면   온 지면을 칼튼 장군을 비난하는 기사로 채웠다. 그리고 한 사람의 편견에 의해 무고한 나바호들이 300-400 마일 밖으로 유배되어 인권을 유린당해서는 안된다고 칼튼을 비난했다.

황무지를 개간하여 자급자족하기로 한  나바호들이 다시 국민의 세금에 의존하게되자 지역 신문 “뉴 멕시칸”은 “요새에 수용된 나바호들에게 하루 필요한 빵이나 밀가루 1파운드는 공급하려면 40센트가 소요된다. 8,000여 명의 나바호들이 1년을 버티려면 무려 1,168,000 달러의 국민들의 세금이 사라진다. 현재 수용된 나바호는 전 부족의 절반 밖에 안된다. 만약 전부족을 수용한다면 2,336,000달러라는 귀중한 세금을 낭비하게 된다”고 연일 칼튼 장군의  이주정책이 엉터리라고 비난했다. 

한편 의회의 특별자금 1백만 달러로 벌거벗은 나바호들을 입힐 무명천과 신발, 담요와 황무지를 개간하는데 필요한 농기구를 실은 보급마차를 인솔한 베이커는 12월11일 섬너 요새로 향했다. 그러나 일행 중에는 인디언 관리국으로부터 비밀리에 섬너 요새의 상황을 탐지하라는 밀명을 받은 마이클 스텍이 끼어있었다. 그는 칼튼의 나바호 이주정책을 앞장서서 반대하는 반 칼튼 파의 선봉이었다. 스텍은 4일간 요새에 머물면서 개간한 땅은 적합한가에서부터 나바호들이 처한 상태까지 세세히 탐문하고 조사했다.

섬너 요새의  나바호 보호구역은 폐쇄하라

스텍은 여러 명의 나바호들을 한사람 한사람 직접 대면하면서 그들의 불만과 애로를 모두 청취했다. 워싱턴으로 돌아간 스텍은 자신이 목격하고 실제 면담에서 얻은 사실을 토대로 “한마디로 섬너 요새의 나바호 보호구역은 폐쇄해야한다”고 인디안 관리국에 보고했다.

몇년 전만해도 메스키트 나무들만 듬성듬성 자라던 보스크 레돈도는 완전히 그 모습이 변했다. 풀 한포기 자라지 않던 황무지에는 북쪽에서 동쪽으로 페코스 강물을 끌어들이는 장장 7마일에 달하는 수로가 유유히 흘렀다. 또한 입구에 들어서면 미류나무가 늘어선 8마일이나 되는 너른 길을  따라 가면 서쪽으로는 잘 정돈된 요새가 나타났다. 그리고 옥수수와 밀밭은  바다처럼 물결쳤다.

칼튼 장군은 지난 해의 충격에서 벗어나 새해가 들어서자 1865년 1월 새해 첫 주부터 6,000 에이커의 땅에 옥수수를 비롯하여 밀, 콩등 각종 씨앗을 뿌렸다. 나바호들은 병사들의 엄한 감시를 받아가며 물이 골고루 스미도록 밭고랑을 고르고 물이 잘 흐르도록 수로를 정비했다. 칼튼은 이미 파종한 옥수수 밭 옆에는 옥수수를 수확할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하여 대치 작물로 밀을 심고 콩이나 완두콩, 그리고 호박이나 수박등도 골고루 심었다. 

수시로 해충 전파여부를 감시

크로커 장군은 농작물이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6,000 에이커의 너른 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바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더 이상 정부의 특별자금을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크로커 장군은 매일 특별감시팀을 꾸려 너른 들을 가득 채운 옥수수나 밀같은  농작물에 혹시나 해충이라도 전파되었을가하여 수시로 점검했다. 그러나 옥수수 대에 알이 들어설 때까지 별다른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요새에서는 두꺼운 카드보드로 식권을 만들어 매끼마다 나바호 한사람 당 일매의 식권이 배부되었다. 나바호들은 식권을 내고 배식받았다. 그러나 얼마 후 똑같은 모양의 위조 식권이 나돌자 요새 측에서는 종이 대신 쇠조각으로 식권을 만들었다. 그러나 손재주가 비상한 나바호들은 이것도 모방했다. 요새 당국은 워싱턴 국방성에 부탁하여 모방할 수없는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식권을 발부했다. 그러나 이것도 결국 허사였다. 나바호들은  일찌기 백인 병사들로부터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 기술과 은세공술을 전수받아 나바호들의 은세공 기술은 특히 뛰아났다. 부족장 델가디토는 백인들의 은화를 가지고 정교한 장식품을 만들 정도였다.

가짜 식권 나돌아 집단배식으로 해결

가짜 식권으로 머리를 앓던 요새 당국의 요청에 따라 국방성에는 특별 관리팀을 내려보냈다. 특별 관리팀의 조언에 따라 요새에서는 작업장에 동원되는 나바호들을 조별로 인원을 파악한 후 조장으로 하여금 그 조의 식사를 일괄 배식받도록했다. 이렇게하여 위조식권 문제는 해결을 보았다. 

뜨거운 한 여름은 들판에 익어가는 옥수수와 밀이 물결치는 보스크 레돈도에 성큼 다가왔다. 말을 몰고 6,000 에이커의 옥수수, 밀 밭을 돌아보는 크로커 장군은 너른 들판에 꽉찬 농작물을 바라보며 풍년의 꿈에 부풀었다. 크로커 장군은 1에이커에서 최소한 1,500 파운드의 곡물을 수확하면 모두 9백만 파운드의  수확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같은 양이면 나바호들에게 하루 3파운드씩 배식하여 배불리 먹일 수 있다고 보았다. 

지난 해 해충과 폭풍우로 제대로 곡물을 수확하지못한 칼튼 장군은 국방성의 지원으로 근근히 꾸려나갔다. 국방성은 매월 나바호들을 위한 식자재 구입비로 62,000달러를 지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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