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왜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만나기를 원하셨을까? 갈릴리는 예수님이 자란 곳이고 제자들의 고향이다. 또 갈릴리는 제자들이 예수를 처음 만나 제자가 된 곳이고 그들의 믿음이 시작된 곳이다. 그 곳은 제자들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복음 전파를 위한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된 베이스 캠프이다.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이 베이스 캠프에서 체력을 보강하고 전력을 점검한 뒤 산 정상을 향해 도전하기도 하고 예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는 것처럼 갈릴리는 그들의 쉼터이고 재충전의 발판이며 우정과 사랑의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위로의 장소이고 강력한 팀워크를 다지는 훈련장이다. 제자들은 그 곳에서 예수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복음 전파를 위해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후 좌절과 절망, 걱정과 염려,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그것은 이미 예고된 죽음이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선뜻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거대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거목이 쓰러진 것처럼 앞만보고 돌진하던 그들에게 갑자기 목표가 사라지고 폐차하기 일보직전에 있는 낡은 고물차의 트렁크에 싣고 다니던 여행용 가방만 동그라니 엎어져 있었다. 땅이 흔들리고 눈 앞이 캄캄했다. 전적으로 의지하던 지도자가 사라진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할 지 막막한 상태에서 그들은 구덩이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 거렸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3번 예수를 부인한 뒤 심한 죄의식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무엇이 자신을 그토록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이 되게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건 남자로서 감내하기 힘든 가문의 수치였다. 제자들 역시 베드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줄행랑을 쳤다. 누가 봐도 명백한 배신 행위였다. 목숨을 걸겠다고 수없이 다짐을 했건만 죽음 앞에서 사지가 오그라들고 두려움에 온 몸이 얼어붙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이 복음을 위해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던 만큼 그들의 마음에는 좌절과절망감에서비롯된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쌓였다. 식음을 전폐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한 복음사역을 계속하기는 불가능했다.
모든 것이 붕괴되고 허물어진 상태에서 그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갈릴리로 돌아왔다. 예수님이 그들을 베이스 캠프로 초청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다시 만나 마음에 쌓인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단 하루도 살 수 없다. 희망이 우리를 살아 숨쉬게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희망이고 기쁨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우리가 상처와 아픔을 딛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다. 제자들에게 갈릴리가 잊을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이었던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벧엘은 가나안 땅을 밟은 후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린 뜻깊은 장소였고 언제든지 돌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할 수 있는 베이스 캠프였다.
아브라함과 롯의갈등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특별한 관계였다. 롯은 아브라함의 형제인 하란의 아들로 아버지가 갈대아 인의 우르에서 죽자 졸지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홀로 남겨둘 수가 없어 하란에서 함께 길을 떠나 가나안에 데리고 왔다. 그는 항상 롯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고 친 자식처럼 돌봤다. 삶이 불안정할수록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기대어 보호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그들은 외지를 떠도는 신세였기에 더욱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모든 것이 낯설게 보이고 기존의 질서에 적응이 되지않는 떠돌이와 같은 이방인의 삶에서 가슴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한국사람만 보면 반가워서 한 걸음에 달려가 인사를 하고 수다를 떠는 것처럼 우리는 위로와 대화가 필요한 존재이다.
그는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 갈 때도 롯을 데리고 갔고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함께 올라왔다. 롯은 아브라함을 믿고 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했고 아브라함 역시 롯을 필요로 했다. 롯은 아브라함의 선택을 자신의 선택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 자발적으로 그의 통제아래 있었고 모든 것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믿음직한 보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던 그들의 끈끈한 관계에 눈에 보이지않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상황이 악화되었다. 한마디로 돈 문제 때문이었다. 동업을 하다가 갈라져 원수지간이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돈이 웬수지, 이야기하면 뭐해요. 동업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결국 돈도 잃고 친구도 잃었어요.” 돈이 개입되면 오랫동안 지속되던 인간관계도 하루 아침에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만고의 진리가 아닌가.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