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미지의 땅’ 알타 캘리포니아로 가는 보급로를 찾아라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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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에 협조하는 사령관, 독초중독으로 사망한 사제
디안자 사령관도 예수회 사제들의 전교를 적극 협조하는가 하면 이주민 보호에도 앞장섰다. 1731년 그간 중단되었던 예수회 사제들의 전교를 위해 3명의 사제가 피메리아 알타에 부임했다. 후앙 보우티 스타 그라츠호퍼 신부와 펠리페 세게서 신부 그리고 이그나시오 하비에르  켈러 신부가 부임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오도된 신앙에 물든 토착민들의 저항이었다. 특히 구에바비와 산하비에르 델 박 그리고 산타 마리아 소암카의 토착민들은 전래신앙을 버리지 못하고 사제들의 하느님 말씀을 무조건 배척했다. 이들을 전교하기위해 켈러 신부 등 3인의 사제들은 토착민들과 어울려 풀로 엮은 초옥에서 토착민의 음식을 함께 먹으며 생활했다. 이렇게 생활하면서 먼저 이들의 습관을 익히고 이들의 언어를 배웠다. 한편 사령관 디안자도 사제들을 위한 숙소를 마련해주는가하면 1732년에는 3명의 사제를 몸소 구에바비까지 경호한 후 1천여명의 토착민에게 영혼구제를 위해 사제들이 다시 돌아왔다고 알렸다.
피메리아 알타 일대에서 사제들의 전교는 항상 얼음 위를 걷는 것만큼 위태로왔다. 1733년 그라즈호퍼 신부가 알 수 없는 독초 중독으로 사망했다. 분명 토착민들의 소행으로 의심했다. 그해 저물녁에는 토착민들이 떠나버린 소암카와 구에바비 일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선교원이 운영하는 목장에서 가축을 약탈하고 선교원의 성물을 약탈한 후 인근 산속으로 사라졌다. 디안자 사령관은 일대의 기마병을 인솔하여 토착민들이 은신한 산 속 깊이 추격했다. 디안자 사령관은 수비대 사령관이 토착민을 몰살하려한다는 불량 토착민이 퍼뜨린 유언비어에 놀라 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구에바비 선교원 사제의 노력으로 더 이상 폭동은 번지지 않았다. 약탈해간 성물은 되돌아왔다. 그러나 언제까지 사제들이 토착민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구에바비에서 남서쪽 10마일 지점에서 소노라 일대에서는 처음보는 엄청난 사건이 1736년 1월 일어났다. 
대자연은 소노라일대에 은광이라는 선물을 내렸다. 

야퀴이 인디안에게 내린 대자연의 축복 ‘은괴’
 야퀴이 인디안 안토니오 시로메아(Antonio SIraumea)는 ‘아구아 카리엔테의 원죄없이 잉태하신 우리들의  성모님 (Our lady of the Immaculate Coception of Agua Caliente)’이란 뜻의 광산 야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야영장을 차리고 행운을 기다렸다. 그리고 매일 북쪽으로 참나무가 연이어 줄서서 자라는 거친 계곡을 헤메이는 것이 일과였다. 거친 계곡을 헤메는 무리는 야퀴이 인디안만이 아니었다. 일확천금으로 팔자를 고치려는 노다지꾼들은 벌써 인근 계곡에 모여들어 근처에는 야영장이 작은 마을을 이룰 정도였다. 1730년대 알타 수비대장 우레아 (Bernardo de Urrea) 는 아구아 카리엔테 북쪽에 ‘아리조나 (Arizona)’라는 이름을 내건 목장을 개설했다. 작고 외진 마을에 작은 내가  흐른다하여 토착민들은 이 마을을 토착민 인디안 말로 ‘아리조나’라고 불렀다. 또한 가브리엘 디 푸르드홈이라는 퇴역 대위도 근처에 야영장을 세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노다지는 병사들이나 지체높은 이주민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736년 10월경이었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청명한 10월 어느날, 하루내내 계곡을 뒤지던 야퀴이 인디안 안토니오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몇 발자욱을 옮기던 안토니오는 무엇엔가 발이 걸린 듯 휘청거리고 넘어졌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의 발을 잡았던 장애물을 살폈다. 그의 발밑에는 거므스레한 돌같은 물체가 흙위로 모습을 빠꿈이 드러내고 있었다. 순간 기이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야퀴이 인디안 안토니오는 들고다니던 곡괭이로 조심스레 기이한 물체의 주위를 뒤졌다. 그리고 그 괴이한 물체는 커다란 바위덩이만한 은괴임을 확인했다. 안토니오는 환호를 지르며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다시 현장으로 달려와 은괴임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불꽃처럼 번지는 은괴 소문에 몰려드는 노다지꾼 
야퀴이 인디안 안토니오가 엄청난 노다지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아구아 카리엔테 계곡을 지나 들불처럼 소노라 일대에 퍼져갔다. 주민 중에는 프란시스코 디 롱고리아 (Francisco de Longoria)가 재빨리 근처의 광권을 신청했다. 그리고 행정당국이 도착하기 전 광산일대에서 발견되는 광물에 대한   법적소유권을 주장했다. 얼마 후 도착한 행정당국은 은괴가 발견된 주위에 경비를 세우고 무단발굴을 금했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미 노다지에 정신을 빼앗긴 노다지꾼들은 미친듯 산비탈과 계곡을 뒤져가며 굴러다니는 은조각을 거두었다. 호세 페르민 디 알마잔 (Jose Fermin de Almazan)이라는 노다지꾼은 무려 무게가 1.25톤에 이르는 은덩어리를  캐냈다. 이러한 소문은 며칠 안되어 소노라 일대의 이주민 사회를 광란의 열풍에 빠뜨렸다. 이주민들은 모두 곡괭이와 야영장비를 갖추고 은괴가 지천으로 깔려있는 아리조나 목장 근처 아구아 칼리엔테 계곡 야산으로 몰려들었다. 
1736년 11월 13일 수비대장겸 지역 수석판사겸 시장 디안자는 약 90마일 거리의 바카누치 (Bacanuchi)의 판사실에서 우레아의 아리조나 목장이 있는 아구아 카리엔테 산비탈에서 은광맥이 발견되어 온 소노라 일대가 광풍에 휩싸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지역 수석 판사직도 겸하고있는 디안자는 어떻게 은광맥이 발견되었는가 궁금했다. 노다지꾼이 발견했다면 이는 황실의 몫 20%를 제외하고는 당연히 발견자의 몫이다. 그가 처음받은 보고에는 은광맥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었다. 그리고 옛 토착민들이 제련한 은괴를 땅속 깊이 매장한 것이라는 뚜렸한 증거도 없었다. 증거라고는 야퀴이 인디안 발이 걸려넘어진 지상에 노출된 은괴뿐이었다. 만약 이 은괴가 광맥에서 추출되었다면 노다지꾼은 당연히 광권을 보유하고 황실몫 20%를 제외한 노 다지의 권리를 갖게된다. 만약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은괴가 토착민이 비밀리에 매장한 것이거나 불법으로 채취한 것 이라면 전량 황실이 그 소유권을 갖게된다. 서둘러 아리조나 목장 근처 아구아 카리엔터의 야산을 찾아가 디안자는 이 신비의 비밀을 풀어야했다.
구에바비를 거쳐 디안자는 11월 20일 자신의 수호성인 산안토니오 디 파두아 (San Antonio de Padua)라고 이름지은 은괴가 노출된 산비탈로 말을 몰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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