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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감사기도에 절대자는 '풍요의 땅' 신천지로 응답했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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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77.6마일 플리머스로 이전 
12월 17일 새로운 정착지 이전이 시작됐다. 근 한 달이상 정박했던 프로빈스타운을 떠난 보우트가 앞장서고 그 뒤를 메이플라워 호가 뒤따랐다. 플리머스는 ‘둥근 활모양을 한 대구의 만’의 한 가운데에 위치했다. 바다에 정박한 이주민들은 3일간 메이플라워 호에 머물었다. 그리고 탐색대들은 3일간 정착지를 찾아 주위를 탐색했다. 그리고 왐파노아그부족의 일파인 너우세트 (Nauxet) 원주민들이 한때 경작하다 버려둔 땅 야트막한 야산 사이에 정착하기로 했다. 이곳은 야샨 사이에 위치해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좋았다. 정착지가 확정된 후 보우트 두대가 이주민을 부지런히 연안으로 날랐다. 그리고 이주자들은 앞장선 지도자  블래드포드의 뒤를 따라 새로운 정착지로 향했다.
정착민들은 서둘러 거처마련에 들어섰다 .’대구의 만’의 12월 추위는 대단했다. 겨울바다를 스치며 내륙으로 몰아치는 겨울 바람에 이주민들은 제대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했다. 그러나 더 추워지기전 서둘러 거처를 마련해야했다. 벌써 준비한 양식도 바닥을 보였다. 이주민들은 추위를 피해 인근 야산에서 땔감을 마련하면서 거처마련을 서둘렀다. 별다른 원주민 저항은 없었다. 우선 바다와 면한 야산에 대포 몇문을 배치하여 공격해오는 외부의 적을 방어하기로했다. 이주민들은 서둘러 망루와 진지를 마련하고 대포를 배치했다. 그리고 이곳을 요새의 언덕 (Fort Hill)이라고 불렀다. 또한  망루근처에 한편에 공동묘지를 마련했다.

공동회관 이어 병원 그리고 19채 가옥 세우다
1620년 12월 23일부터 이주대원을 위한 거처마련이 시작됐다. 주택건설작업에는 여인들까지 참가하여 손을 보탰다. 전 대원이 작업에 참여하여 아무도 타지않은 메이플라워는 건장한 청년 20여명이 지켰다. 잎진 버드나무를 잘게 자른후 진흙과 고루 섞어 바람을 막는 외벽을 다졌다. 살을 에는 추위임에도 대원들은 진흙과 버드나무가지에 차가운 물을 부어 골고루 섞은 후 외벽을 다졌다. 여인네들은 물을 나르고 또 물을 데워 작업자들을 도왔다. 작업 시작 2주만에 번듯한 공동회관이 마련됐다. 두번째 완공된 건물은 병원이었다. 이어 대원들의 주택 신축에 들어갔다. 세대별로 19채의 주택을 세우기로했다. 가정이 없는 미혼자들을 각 세대에 배분하여 어울려 살게했다. 불필요한 신축과 또한 모자라는 물품을 절약하기 위한 배려였다. 초대 지도자 겸 거버너인 존 카아버의 지시를 대원들은 잘 순응했다. 정착촌을 꾸리는 동안 전 대원들은 주택이 마련될 때까지 메이플라워로 돌아가 밤을 보냈다. 그러나 악천후와 영양결핍, 각기병과 폐렴, 추위 등으로 정착촌이 채 마련되기전에 대원들은 하나둘씩 이승을 하직했다. 겨울이 지나면서 양식은 턱없이 부족했다. 비례해서 사망자는 계속 늘어났다. 1621년 2월 한달사이 사망자는 무려 31명에 달했다. 혹독한 겨울 추위가 지났을 무렵 메이플라워 선원도 근 30여명에서 반이상 사망하고 갑판장까지 사망했다. 

겨울이 지나고 생존자는 단 47명뿐
 청교도와 이방인 들 중 살아남은 자들은 고작 47명뿐이었다. 대원들은 겨울을 지나면서 영양결필핍, 각기병, 폐렴등 각가지 질병으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못하고 낯선 신천지에서 어이없게 세상을 등졌다. 살아남은 자들 중 자력으로 식사하고 거동할 수있는 대원은 고작 6내지 7명뿐이었다. 대원들의 거처가 마련될 동안 대원들의 임시거처로 활용되던 메이플라워 호는 대원들의 거처가 마련되었어도 출항하지 못하고 사태의 추이를 심각하게 지켜보았다. 
1621년 2월이  되면서 잎진 나무가지에서 새순이 돋으면서 서서히 얼었던 동토도 녹기시작했다. 청교도 지도층은 생존 대원 가족에게 가꿀 농경지를 배정했다. 세대별로 경작할 땅을 배정받은 이주단원들은 원주민들이 버리고 떠난 잡풀이 무성한 땅을  고르고 정비한 다음 원주민들로부터 탈취해 온 옥수수와 콩를 파종했다.

정착민 파종 확인하고 메이플라워  출항
이주민 정착촌이 곡식을 파종하고 안정되자1621년 4월15일 메이플라워 크리스토퍼 존스 선장은 생존한 선원들과 함께 플리머스 정착촌을 떠나 순풍을 안고 한달만인 5월 16일 런던에 도착했다.  
와인과 섬유를 유럽대륙에 실어나르던 메이플라워호는 노후되어 1624년 은퇴했다. 선체는 해체되어 목재는 영국 농촌마을 요르단 (Jordan)의 헛간을 짓는 목재로 팔려갔다. 초대 플리머스의 거어버너인 지도자로 선출도었던 크리스토퍼 존스는 1622년 사망했다. 제2대 거어버너는 윌리암 블래드포드 (1590.3.19-1657.5.9). 갑판에 파도가 들이칠대 바닷속으로 떠내려갔다가 선원들이 던진 밧줄을 잡고 살아났던 존 호우랜드 (John Howland: c1593-1673.2.23)는 이후 존 카아버의 비서를 거쳐 카아버가 사망하자 그의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리고 함께 대서양을 건넌 에리자베스 틸레이 (Elizbeth Tilley)와 결혼했다. 메이플라워가 영국 런던으로 돌아갈 때 신대륙의 어떤 진기한 상품을  싣고갔는 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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