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브라함의 영적인 오딧세이는 창세기 22장의 아케다(Akedah)에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창 23장의 사라의 죽음과 24장의 이삭의 결혼은 아브라함 일대기의 마무리 부분으로 아브라함의 마지막 미션을 다룬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12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질병으로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지거나 암에 걸려 고통을 받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교통사고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삶을 잘 살았다. 그녀는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쳤고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이며 현숙한 아내이자 훌륭한 어머니였다. 성경이 여자의 죽음이나 수명을 언급하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사라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아브라함 일대기에서 그녀가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동반자이고 친구이며 한평생을 동고동락한 아내였고 가정이라는 작은 믿음의 공동체를 이끄는 동역자였다.
결혼생활에 많은 위기와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믿음으로 눈물과 고난의 세월을 극복하고 아브라함과 함께 한 오랜 여정을 마무리한 뒤 가나안 땅 헤브론에 안식했다. 쉬고 싶어도 마음놓고 쉴 수 없었고 평생 여름 휴가나 흔한 크루즈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그녀는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젠 쉬고 싶다고 영원한 안식을 갈망했는지 모른다. 아들 이삭이 태어났을 때 그녀는 90세였고 이삭이 40세에 리브가를 만나 결혼하기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끝내 사랑하는 아들의 결혼식을 보지 못했다. 유대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치기 위해 길을 떠났을 때 큰 충격을 받고 몸져누워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낸 아브라함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아내를 잃은 것은 마치 자신의 분신을 잘라내는 것과 같은 아픔과 고통을 주었다. 그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통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오열하고 땅을 치며 대성통곡했다.
언제나 눈을 뜨면 옆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지만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이라도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 어디선가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그는 두리번거리며 연신 주위를 살폈다. 때론 아내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막기도 하고 언성을 높여 말 싸움을 한적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니 그녀는 자신에게 너무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잃어버린 후에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한탄했다. 나에겐 왜 인생을 꿰뚫어보는 지혜와 통찰력이 없을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진작 깨달었더라면 좀 더 잘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몰려왔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지 못한 게 가장 후회스러웠다. 생각해보니 평생을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한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뭐가 그리 쑥스러워 사랑한다는 말 한번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내가 아직 살아있는 게 감사하다고 느끼면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기쁨과 감사의 순간이 된다. 그것이 비록 실패와 절망의 순간이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고통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역설적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살아있으니까 눈물을 흘리고 슬퍼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은 감정이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불행이나 아픔도 살아있음에 가능하다는 시각으로 바라보면 감사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죽음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위대한 스승이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우리 안에 이미 삶과 죽음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한 쪽 만 바라보기 때문에 삶의 균형과 방향을 잃어버리고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면서도 마치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큰 소리치며 살고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에 대한 인식이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온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에덴동산을 떠났을 때 그들은 각성하여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순진한 어린 아이같이 에덴동산에서 아무 걱정없이 편하게 먹고 지냈던 그들은 온실에서 거친 비바람이 부는 들판으로 나왔다. 앞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그들은 새로운 각오와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견지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눈으로 삶의 본질과 실체를 보고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아브라함 못지않게 사라의 죽음을 슬퍼한 사람은 이삭이었다. 이삭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진 그는 아내 리브가를 통해 위로를 받고 힘들게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다.
정기원 목사 (602)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