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는 목적(Purpose)이다.
우리의 삶은 다분히 미래지향적이고 방향성이 있다. 만약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배고픈 줄도 모르고 악착같이 노력할 것이다. 적어도 목표를 위해 모든 열정을 쏟고 집중하는 동안은 나의 삶이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목표는 그만큼 우리에게 강한 모티베이션을 제공하고 의욕과 투지를 불태우게 한다. 그러나 목표달성에 실패하면 한순간에 의욕을 상실하고 슬럼프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눈부신 미래를 꿈꾸며 장미 빛으로 화사하게 물들었던 삶이 갑자기 무의미하고 공허한 삶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목표에 따라 의미 있는 삶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목표보다 더 중요한 건 목적이다. 목표와 목적은 비슷한 말로 혼동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앞으로 의사가 되고 싶다는 건 목표이다. 나는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는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가? 내가 세운 목표의 이유를 따져보는 게 목적이다. 삶의 목적은 존재의 이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래지향적인 삶은 현재의 벽을 넘어 미래를 기대하고 희망을 품게 하지만 목적을 위해서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음미하고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삶에는 출발점과 끝이 있고 원이 아니라 직선의 형태로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이동한다. 그런 여정에서 삶의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믿음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셋째는 중요성(Significance)이다.
우리는 가치를 추구하고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나의 삶은 가치가 있는가? 어디에 가치를 둘 것인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지만 가치있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부와 재산을 소유하는 것, 남부럽지 않은 직업과 화려한 경력, 사회적인 신분, 놀이와 쾌락 등에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전도자는 세상에서 삶의 가치와 중요성을 발견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만약 모든 것에 의미가 없다면 왜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전도자는 모든 것을 부정하기 위해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삶에 대해 냉소적이고 차가운 태도를 취하기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인간의 이해와 통제 밖에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인생과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인생을 꿰뚫어보는 지혜와 통찰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한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살기 때문에 삶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 굳이 유명한 맛집을 찾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먹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 떨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기쁨을 주지 않는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비록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열심히 일한 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와 식당에서 직장 동료와 잠시 회포를 푸는 것도 우리를 기쁘게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달짝지근한 디저트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기쁨을 준다. 일상의 삶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즐거움과 기쁨이 우리를 살아있고 행복하게 한다.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현재를 잡으라(Seize the day)”는 뜻이다.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현재이고 이것들이 모여 나의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은 동생 아벨과 비교하여 자신이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자 이에 격분하여 아벨을 들판으로 유인한 뒤 살해한다. 아이러니컬하게 아벨의 이름은 전도자의 ‘헛되다’는 의미의 ‘헤벨’과 같다. 죄가 없는 아벨은 부당한 죽임을 당하고 대가 끊어진 채 연기처럼 왔다가 허망하게 사라졌다. 이에 반해 살인자인 가인은 죽음의 처벌을 면한 뒤 많은 자손을 두고 오래 살았다.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던 전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고 허무하며 그 어떤 것으로도 의미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이다. 만약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밤을 지새울 필요가 없고 급하게 서두를 일이 없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죽음이 없는 건 불행한 일이다.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가슴 졸이는 긴장감이 있고 악착같이 도전할 수 있으며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지금 이 순간을 줄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정기원 목사 (602)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