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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타고난 최고의 싸움꾼 야곱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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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으로 치면 그는 막판 뒤집기를 시도했다. 비록 싸움의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여주었다. 그가 발꿈치를 잡고 허공에 매달려 기를 쓰고 마지막 몸부림을 친 것은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무서운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성취와 발전은 모든 분야에 모자란 것이 없이 필요한 것을 두루 갖춘 육각형 인재가 아니라 발꿈치를 잡고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야곱은 꿈꾸는 자였고 자신감과 긍정 마인드를 가지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한 줌 남김없이 쏟아붓는 열정을 가진 냉혹한 승부사였다. 야곱은 싸움으로 점철된 투쟁의 삶을 살았다. 그는 엄마 뱃속에서 에서와 싸웠고 후에 외삼촌 라반과 싸웠고 레아와 라헬 두 여인 사이에서 갈등과 고뇌의 힘든 시간을 보낸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 밤새 씨름했다. 그는 싸움에 관한한 탁월한 실력으로 쌓아올린 화려한 전적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넘사벽’ 수준의 레전드 챔피언이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눈을 부라리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 먼저 기선을 잡으려고 선제 공격을 하는 편이었고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이기려고 애를 썼다.

그는 50전 50승의 대기록을 세운 챔피언처럼 한 치의 허점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기록을 보유하기를 열망했다. “사람들은 1등만을 기억한다.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등주의를 고집하는 대기업의 광고처럼 그는 치열한 경쟁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관계에서 치열한 경쟁과 싸움은 사랑을 몰아내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타인은 그저 나와 아무 관계가 없어 무시해도 좋은 존재였다.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타인을 나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는 이웃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준다. 구약성경에서 맨 손으로 사자를 때려잡는 가장 힘센 사람은 누구인가? 삼손이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수수께끼 문제를 내고 7일 안에 정답을 맞히는 사람에게는 인기있는 테슬라 Y 모델 한 대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 이것은 무엇일까?” 블레셋 사람들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마침내 그들은 삼손의 아내를 설득하고 위협해서 답을 알아냈다. 일곱째 되는 날 그들은 삼손을 만나 답을 말했다.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대답이 질문의 형태로 끝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를 향한 질문이다. “꿀보다 달콤하고 사자보다 강한 것은 무엇일까?”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꽁꽁 얼어붙은 우리 마음을 따뜻한 봄바람처럼 녹여준다. 사랑에는 대상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살하거나 죽지 않는다. 사랑의 힘이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사랑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
사람들과 어떻게 사랑의 관계를 맺고 유지하느냐가 우리의 삶의 본질이고 모든 것이다.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영생을 소유의 개념으로 보는 데서 왔다. 그러나 영생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이다. 구약성경에는 613개의 율법이 있다. 이것을 10개로 줄인 것이 10계명이다. 예수님은 이 10개의 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2가지로 줄였다. 사도 바울은 다시 이 2가지를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하나의 법으로 요약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그는 선언했다. 그러자 율법사가 다시 질문했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사람들은 이웃을 나와 가까운 사이, 또는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나 친구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와 아무 관계가 없고 잘 모르는 사람은 나의 이웃이 아닌가? 길에서 구걸하는 노숙자는 나의 이웃인가? 돈을 빌려주었는데 돈을 갚지 않고 도망간 사람은 나의 이웃인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러시아 군인은 이웃인가?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바꾸면 “누가 나의 이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된다. 이웃의 범위와 경계선은 어디인가? 

                         

정기원 목사 (602) 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