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곱은 라반에게 감쪽같이 속은 것을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화를 내거나 복수를 하려고 일을 꾸미는 것은 전시도 아닌데 계엄령을 내리는 것처럼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이었다. 더구나 사랑하는 라헬을 생각하면 이 어려운 시기를 참고 견디는 것 외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한 뒤에 대가를 받은 처음 7년과 달리 이번에는 7년간 일하는 대가를 선불로 미리 지급받았다. 라헬과의 결혼을 허락받고 그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라반은 야곱이 7년간 속 썩이지 않고 열심히 일하도록 꿀을 잔뜩 묻힌 당근을 던져주고 그의 환심을 샀다. 그는 외삼촌을 위해 14년을 보냈지만 수중에 남은 것은 두 아내뿐이었다. 리브가와 결혼하여 비교적 조용하고 평안한 삶을 살았던 이삭과는 대조적으로 두 여인과 결혼한 그는 기쁨과 평안을 잃어버리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면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고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너무 달랐다. 그는 텅 빈 관중석에 홀로 앉아 남편의 마음을 독차지하려는 두 여인의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며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이 시끄러운 집안이 자기 통제 밖에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브라함이 사라와 하갈의 갈등과 다툼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처럼 그는 레아와 라헬의 갈등 때문에 괴로워했다. 여자들의 싸움을 말리고 중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여자와 싸우는 것은 손과 발을 묶은 채 싸우는 것처럼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그는 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여자와의 갈등이 그의 인생에 그토록 쓰라린 고통을 안겨줄 줄은 미처 몰랐었다. 여자와의 싸움을 피하는 것이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사라나 하갈과는 달리 레아와 라헬은 모두 자식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권력투쟁에서 먼저 자식을 가진 여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득세하게 될 것을 아는 두 여인은 경쟁적으로 자식을 갖는데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자식을 원한다고 마음대로 가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으니 독수공방하며 외로운 밤을 홀로 보내야 했던 레아와 비교하면 한결 나은 위치에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레아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레아는 남편으로부터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버림받은 채 살아가는 불행한 여인이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조직에서 왕따를 당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건 서글픈 일이다. 상대에게 따지고 대항할 힘이 없어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만약 그 상대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가족의 일원이라면 집을 뛰쳐나가지 않는 한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레아는 외적인 미모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다. 야곱을 남편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버지의 선택이었다. 물건을 팔 때 불량품을 하나 덤으로 끼어서 파는 것처럼 라반은 처리가 곤란한 물건을 강제로 팔아치우듯 레아를 야곱에게 강제로 떠넘긴 비정한 아버지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일방적인 선택과 강요에의해 기쁨과 자유를 잃어버리고 동생과의 관계도 나빠져 서로 미워하고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버지와 남편과 동생도 모두 자기 편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결혼생활을 지속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결혼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것처럼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다.
변호사를 고용해 이혼하고 집을 나가려고 해도 앞으로 살 길이 막막했다. 그렇다고 인생을 비관하여 약이라도 먹고 다리에서 뛰어내릴 용기도 없었다.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고 절망으로 뒤덮인 어둠 속에서 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고 온 가족이 함께 다니는 교회에서도 사람들의 뒷담화가 무서워 아무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며 몸을 뒤척거리다가 늦게 잠이 들기 일쑤였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의 인생을 망가뜨렸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결혼이 불행의 시작이었나? 돈만 아는 아버지가 문제인가? 번번히 자신의 앞길을 막는 동생이 문제인가? 아니면 외지에서 흘러 들어와 집안에 풍파를 일으킨 야곱이 문제인가? 누구에게 침을 뱉을 것인가? 언제든지 예고 없이 불행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그러나 사태를 해결하는 열쇠는 나에게 있다.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대처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오히려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고 지금 좋게 보이는 일이 후에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