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5년 11월30일 목요일부터 12월 3일 일요일까지 (호르키시타스 출발 63일부터 66일째)
콜로라도 강 상류는 어느 지점에서 3개의 지류로 갈라져 흘렀다. 어렵사리 콜로라도 강을 건널 여울목을 찾던 디 안자 사령관과 전 대원은 마침내 비교적 강폭이 좁은 이 지류를 발견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이 지류를 건너 알타캘리포니아에 발을 딛기로 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콜로라도 강변에 사는 유마 원주민을 하느님 품에 안내하겠다는 가르세와 아이하츠 두 신부를 위해 팔마 추장이 제공한 야트막한 언덕에 오두막집 두 채를 세워주기로 했다. 일행은 아침부터 서둘러 콜로라도 강과 힐라 강이 하나가 되는 오늘의 유마시이기도 한 강 폭이 비교적 좁은 여울목에 도착했다. 유마 원주민들은 밧줄을 노새가 탄 배에 연결한 후 앞에서 끌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등에 업어 건너주었다. 본래 물에 공포가 많은 가르세 신부는 원주민 3명이 머리와 다리를 각각 둘러맨 후 건너주었다. 원주민과 팔마 추장의 도움으로 전 대원은 무사히 강을 건넜다. 여울목을 건너자 궁금해하던 원주민 여인 4명이 야영지를 찾았다. 그날밤, 팔마 추장이 디 안자가 선물한 화려한 스페인 장교 복장을 입고 야영지를 방문했다. 팔마 추장은 긴 스타킹에 백색 셔츠, 황금색 조끼와 푸른색 자켓, 예쁜 자갈로 장식한 검은 우단에 어깨망토를 걸친 모습은 매우 자랑스러워 보였다.
11월 30일 물을 두려워하는 가르세 신부 원주민 3명이 어깨에 메고 강을 건너다
새로 마련한 야영지는 대원들에게 그리 쾌적한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대원들은 디 안자 사령관이 현지에 남을 두 신부의 거처를 마련할 때까지 새로 마련한 야영지에서 지냈다. 여울목 부근에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거친 새벽바람에 천막이 날아갈 정도였다. 강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먼지와 모래 바람에 대원들은 눈도 뜨지못하고 제대로 숨도 쉬지못했다. 대원들은 사령관이 두 신부의 거처를 마련한 후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심한 모래바람은 저녁무렵까지 계속되었다. 허약한 대원 10여명이 급기야 몸살로 몸져 누웠다. 투박을 출발할 때부터 허약해 보이던 여인네 2명이 급기야 사망했다. 여인네 사망으로 전 대원은 장마비로 물에 잠긴 야영지에서 이틀을 더 머물렀다.
당초 디 안자 사령관은 두 신부가 머물 2채의 오두막을 하루에 마치려 했다. 그러나 심한 강풍과 오두막을 지을 병사들의 식사도 마련할 수 없을 정도의 모래바람은 오두막 공사를 하루 더 연장헸다. 그리고 병사와 대원들은 현지에 머물 두 신부에게 필요한 기본 양식과 담배, 원주민에게 나누어 줄 유리구슬 2 상자, 25파운드의 쵸코레이트, 설탕, 리야드 기름, 다량의 마른 쇠고기, 사탕, 콩, 비스킷 1 상자, 넉넉한 햄, 치즈, 요리용 프라이팬, 12개의 비누, 불밝히는 양초, 식사용 와인을 두 신부의 거처에 챙겼다. 그날 밤, 팔마 추장과 방문중인 파블로 추장이 완성된 두 신부의 오두막을 돌아보았다.
1775년 12월 4일 월요일부터 12월 6일 수요일까지 (호르…출발 67일부터 69일까지)
두 신부가 거처할 오두막 축성식을 마친 아침 9시30분경 전 대원은 팔마 추장의 마을을 떠났다.오후 2시경 일행은 파블로 코하트(Cojat) 추장이 다스리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주위는 뻘 냄새가 나는 개펄이었다. 이 마을 남쪽에서 서쪽으로 15마일 거리의 체로 디 산 파블로(Cerro de San Pablo) 높다란 언덕인 야영지를 출발하여 콜로라도 강 지류를 건넜다. (*Cerro는 스페인어로 언덕). 콜로라도 강의 상류에서 갈라진 지류는 흐르면서 다시 합류하고 그리고 여울목이 생겨났다. 여울목이 있는 지류는 약 3마일가량 흘러 푸에르토 디 라 콘셥션 (Puerto de la Conception)에 이르렀다. 이 물길은 동 북동쪽에서 서 서북쪽을 향해 흘렀다. 북동쪽을 바라보고 30마일 거리 힐라 강과 콜로라도 강 중간지점에는 유마인들이 바우퀴바리 (Bauquibari)라고 부르는 거대한 암반 투성이 산이 버티고 있었다. 이곳에서 또 북쪽으로 약 9마일 거리에는 라 캄파냐 (La Campana)라는 바위 산이 있었다. 아마도 이 길이 후세에 악마의 길이라고 불리운 그 유명한 엘까미노 델 디아브로의 일부였을 것으로 보인다.
식수도 여물도 없고 날씨는 엄청 추웠다
파블로 추장이 다스리는 산 파블로 강의 물길은 평온했다. 비록 물길의 폭은 좁으나 이곳에 선교원을 세우기에는 너무 위치가 협소하다고 폰트 종군 사제는 생각했다. 지나는 길은 잘 자란 잡목이 길을 덮어 대원들은 발길을 찾기가 힘들었다. 짐을 실은 노새나 말도 힘들어했다. 그래도 노새는 자주 일행을 이탈했다. 그때마다 노새몰이는 달아난 노새를 찾아 이리저리 들판을 달렸다.
황금빛 모래 사막을 거쳐 파이롯 높 (Pilot Knob) 남서쪽으로 12마일을 지나면 북서쪽으로 콜로라도 강 삼각지가 나온다. 그곳이 유마 부족의 마지막 영토경계였다. 디 안자와 대원들은 이틀에 걸쳐 유마 부족의 영토인 삼각지를 지났다.
6일 수요일 10시,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섰다. 파블로 추장의 아들이 길 안내를 자청했다. 또한 전임 추장의 두 아들도 자청해서 앞장섰다. 이날도 걸음이 느린 가축들이 뒤를 따랐다. 일행은 늦은 오후 디 안자 사령관의 지난 1차 탐험 때 식수를 구하려 무진 고생했던 오지 마을 산타 오라야(Santa Olaya)에 도착했다. 한 겨울 사막은 무척 차가웠다. 멀리 해안가에 희미하게나마 산맥이 지나갔다. 근 3마일 길이의 산타 오라야 호수는 콜로라도 강줄기와 나란히 12마일이나 동쪽으로 흘렀다. 이 근방에 거점을 둔 코하트 (Cojat) 부족은 손수 짠 그물로 1시간동안 천여 마리의 물고기를 낚는다고 자랑했다. 원주민 전교에 나선 가르세 신부는 벌써 삼각지 남쪽 지방을 찾아 떠난 지 오래였다.
1775년 12월 7일 목요일부터 12월 8일 금요일까지 (호르…출발 70일부터 71일까지)
대원들이 강을 지나 길을 나서면 3일간 가축들은 뜯을 초목도 볼 수 없고 누구도 마실 식수를 구할 수 없다. 디 안자 사령관은 앞으로 닥칠 극한 상황을 감안, 전 대원들에게 이틀간의 체력충전기회를 주었다. 전 대원들에게 충분히 먹고 마신 후 원기를 축적하도록 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또한 전 대원을 나누어 출발시켰다. 앞서간 분대가 식수를 고갈시키면 이를 충분히 보충한 후 후속부대가 도착하도록 조처했다. 소떼들이 마시는 물을 보충하는데 이틀이 소요된다고 보았다. 소떼가 물을 다 마셔버리면 말들이 마실 물은 바닥이 났다.
소와 말, 노새가 산타오라야에 도착했을 때 산타오라야의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제1차 탐험 때 사막을 가로지른 후 닥쳐올 재앙에 소심하게 대처했었다. 그러나 이번 제2차 탐험은 제1차 탐험 때보다도 동원된 대원이 8배나 많지 않은가. 긴장한 디 안자 사령관은 제2차 탐험은 더 세심하게 대처했다. 디 안자는 어디에서 식수를 조달하고 뒤따라 출발한 분대를 어디에서 재집결할 지를 세밀히 계산했다. 사령관은 출발에 앞서 정찰대를 미리 보내 산타로사 (Santa Rosa)에서 산타 로사 우물에 이르는 세로 델 산을 기준으로 삼았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