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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May
[독자 투고] 다시 가고 싶은 개성 '선죽교' -신현 자 사모작성자: 아리조나타임즈 조회 수: 54
나는 1945년 예쁜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고 서울 삼청국민학교에 입학했다.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자유로운 신앙생활과 평화로운 행복을 누렸다.
경복궁 뒷담길을 걸어서 주일학교에 가는 길에 마주오시는 춘원 이광수 아저씨께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1950년 4월, 우리 학교는 졸업여행을 개성으로 가기로 했다.
이방언이 정몽주를 죽인 선죽교에는 정몽주가 흘린 선혈이 우리나라 지도 모양으로 지워지지 않은 채 비가오면 그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얘기도 전해져 온다.
기차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개성에 도착했다.
질서있게 두 줄로 서서 선죽교와 시골풍경을 감상했었다.
선죽교는 북한의 국보문화재 제36 호로 지정되었다가 국보 문화유물 제159호로 변경됐으며 개성시 선죽동에있다.
"인생도 물과 같아 가고 아니 오너메라"라고 했는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인생의 흐름을 역류하는가 보다 부끄러움 없고 자랑스럽고 행복했던 유년시절이 이 늙은이를 울리고 웃기곤한다.
다시 보고 싶은 개성 선죽교,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은 멀리 숨어버리고 잠을 찾아 숨박꼭질 하는 밤이다. 잠도 안 오는 밤에 고려를 지키려는 정몽주와 이씨조선을 세우려는 이방언이 주고 받은 시를 다시 읊어 본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단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언-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 이 있으랴." -정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