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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Aug
독자투고] 1945년 8월에 처음 봤던 소련군작성자: 아리조나타임즈 조회 수: 32
필자는 1945년 함경북도 성진시 (현 김책 시)에서 살았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의 주변 정세를 보면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시작한 베니토 무솔리니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패퇴하면서 결국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라 3세에 의해 수상직에서 해임된다.
패색이 짙어가던 일본의 히로시마에는 8월6일 원자폭탄이 투하됐지만 항복하지 않아 8월9일 나가사키에 다시 원폭이 투하되어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다. 일본정부는 8월10일 항복을 결정하고 15일 포츠담 선언을 수락 하며 무조건 항복했다.
당시 피해자 중에는 포로로 잡혀 있던 미국, 영국, 네덜랜드,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의 군인 및 유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한국과 중국 징용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정식으로 발표됐다.
당시 경성 (현 서울)에서 발간되던 경성일보에 의하면 8월9일 오전 소련군이 만주 (현 중국 동남지역) 국경과 한국 동북단에 공격을 개시했다.
동해안에 상륙한 소련군 전사자 배낭에서 발견된 소련 술 보드카와 미국제 통조림은 신기하기만 했다. 강력한 독일군을 항복시킨 소련이 최강의 무기를 갖추고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말을 타고 오기도 하고 보병들은 걸어서 진주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차 소련군이 말타고 진주해 항복조인이 끝나 후 후속부대는 마차를 타고 왔으며 여군이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련에서는 드문 당시 한인들과 체구가 비슷한 작은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