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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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요통(腰痛) 3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요통(腰痛)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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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 선생님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요통을 원인에 따라 10가지로 분류하여, 이를 10종 요통이라 하는데, 즉 신허(腎虛)요통, 풍(風)요통, 한(寒)요통, 습(濕)요통, 습열(濕熱)요통, 기(氣)요통, 어혈(瘀血)요통, 좌섬(挫閃)요통, 담음(痰飮)요통, 식적(食積)요통 등 입니다.

    지난 주에는 10종요통 중의 첫 번째로 신허요통에 관한 내용이었고 오늘은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 풍 요통(風 腰痛)

    “風傷腎而 腰痛者或左或右痛 無常所引兩足强焉…”이라 하여 풍사(風邪)가 신장(腎臟)을 상하여 허리가 아픈 경우가 있는데, 통증이 오른쪽이 아프다가 왼쪽이 아프고, 왼쪽이 아프다가 오른쪽이 아프며 정처없이 좌.우측으로 이동하는 것 같고 심하면 다리까지 당기고 아픈 것으로 서양의학의 허리 디스크증(추간판 탈출증)에 가까운 요통으로 한의학에서 풍사(風邪) 즉 바람이 쉽게 이동하는 성질과 연관시켜 명명한 것입니다. 풍 요통은 신체가 허약한 상태나 과로한 후에 오랫동안 찬바람이나 추위에 노출되었을 때에 발생하며, 통증이 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다리까지 뻣뻣하게 당기면서 수축되는 느낌이 나타납니다. 특징으로는 유난히 바람을 싫어합니다. 임상중에 간혹 풍(風)과 열(熱)이 신경(腎經:腎臟이 주관하는 경락)에 침입하여 요통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허리가 앞으로 뻣뻣하면서 땅기고 통증이 무릎과 다리까지 파급되어 갈증(渴症)이 나고 변비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의서의 의학입문(醫學入門)에 의하면 치료는 침과 뜸(灸)으로 하며, 한약 처방으로 오적산(五積散), 오약순기산(烏藥順氣散)에 체질과 증상에 따른 가미(加味)를 하며, 통증과 그 병세가 심하면 가미용호산(加味龍虎散)을 응용합니다.

    3. 한 요통(寒 腰痛)

    “寒傷腎經腰痛 不能轉側 見熱則減 遇寒則發 脈沈弦焉…”이라 하여 한사(寒邪:외부로부터 침입한 차가운 기운)가 신경(腎經)을 손상하여 허리가 아프게 되는 것, 통증이 너무 심해서 허리를 옆으로 틀거나 돌아눕기위해 몸을 돌리지도 못하게 되는데, 아픈 부위를 따뜻하게 해주면 통증이 조금 줄어들지만 반대로 아픈 부위를 차갑게 해주면 통증이 심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요통은 허리가 찬물에 가라앉은 듯 하다고 표현하며,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거나 추운방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에, 또 추운 곳에서 오래 있을 경우에 갑자기 허리가 아프고 무겁다고 합니다. 따뜻한 곳에 누워 있으면 통증이 덜해 집니다. 한(寒)이 침범하게 되면 다른 원인의 요통과는 다르게 통증 자체가 굉장히 심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치료는 오적산(五積散)에 한사(寒邪)를 풀어내는 약성을 가진 약재를 가미해서 처방하며, 통증이 심하면 가미용호산(加味龍虎散)을 응용합니다. 

    4. 습 요통( 濕 腰痛)

    “久處卑濕 雨露浸淫 腰重 痛如石 冷如氷…”이라 하여 대개 지리적(地理的)으로 지대가 낮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했던가 아니면 그런 환경속에서 근무하는  사람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서 바깥 활동을 하느라 이슬을 맞았거나 비가 내리는 굿은 날씨에 비를 맞게되면 습사(濕邪:외부로부터 몸에 침입한 습기)가 체내로 스며들어서 허리를 지나는 경락(經絡)에 문제를 일으켜서 요통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습 요통 환자들는 특징적으로 “허리에 돌을 매단것 같다”또는 “허리가 무겁고 얼음처럼 차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이 원고를 쓰다보니 기억이 떠오르는 환자가 있는데, 서울에서 임상 중에 낚시를 좋아하는 어느 낚시 마니아가 장마철 어느 날에 밤낚시를 마치고 이 습 요통이 생겨서 저의 한의원에서 한 동안 치료를 받으러 왔던적이 기억이 납니다.                                  

    치료는 침 부항 뜸을 응용하며, 오적산(五積散), 출부탕(朮附湯), 통경산(通經散) 등의 처방을 환자의 체질과 증상에 따라 선택하여 가미하여 처방합니다. 저의 임상 경험상으로 치료와 함께 건식사우나를 권하기도 합니다. 

    5. 습열 요통(濕熱 腰痛)

    “平日膏粱厚味之人腰痛 皆是濕熱陰虛 濕熱腰痛者 遇天陰惑久坐而發者是也…”라 하여 평소에 기름진 음식을 즐기는 사람은 모두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부인들의 산후조리가 안 좋을 때에 특히 발생률이 높습니다. “인간 기상대”란 말을 들을 정도로 기후변화에 매우 민감한 요통으로 비 또는 눈이 오거나 날씨가 흐릴때 아프며, 오래 앉아 있어도 아프며 습기와 더운 열기가 함께 몸속으로 들어와서 요통이 발생하는 것을 말하고, 요통이 발생하면 허리가 화끈거리고 무거우며 몹시 아픈데 주로 여름의 장마철에 많이 발생합니다. 임상 중에서 체중 조절에 실패한 부인들의 요통인 경우에 가장 많이 해당되는 요통입니다.               

    치료는 침구(鍼灸)의 요법을 시행하면서, 실증(實症)인 경우에는 이초창백산(二炒蒼栢散)을 응용하며, 허증(虛症) 칠미창백산(七味蒼栢散) 혹은 당귀첨통탕(當歸拈痛湯)을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가감 응용합니다. 만약 상기 처방으로 효과를 얻지 못하면 삼화신우환(三花神祐丸)이나 외신산을 활용합니다.

    경보당 한의원 (480) 314-0701 

  • [윤원환 목사 기독교칼럼] 한국교회 형성 이야기 3

    [윤원환 목사 기독교칼럼] 한국교회 형성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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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후 14세기 초반까지 중국에서 원왕조의 비호를 받은 네스토리안교회는 원왕조, 즉 몽골제국의 몰락과 함께 퇴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중국 민족주의와 함께 부상한 명왕조의 종교적 탄압과 더불어 네스토리안교회가 중국 민중 속에 토착화되지 못한 점도 작용한 것 같다. 

    이후 근 200년간 서방교회에 의한 제3세계 선교활동은 잠복기를 거쳐 주후 16세기 종교개혁과 더불어 로마 카톨릭교회는 제3세계 선교확장의 기치를 들게 되는데 이 때 활용된 정치적 체제는 바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경영이었다. 이때 로마 카톨릭교회의 세계선교의 전위대는 프란시스칸과 도미니칸 수도회와 더불어 더욱 전투적 성격을 띈 예수회(Jesuits) 등이었다. 특별히 예수회원 소속 수도사들은 동양지역 선교에 열정을 보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와 프란시스 사비에르였다.  

    동양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사비에르는 인도를 거쳐 주후 1549년 8월 몇몇 수도사들을 대동하고 일본 가고시마에 도착하였다. 그는 2년 3개월 동안 일본에 머물게 되는데 그의 선교열매로 1천 5백여명의 기독교 개종자를 얻게 되어 일본 선교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그 후 지속적인 선교활동으로 일본내 지역영주들의 개종도 잇따라 1587년에는 20여만명의 일본 기독교인들, 즉 ‘기리시단’이 생겼다.  

    하지만 일본 기독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치기간부터 박해를 받기 시작하여 그의 후임 도쿠가와 이에야스 때인 1612년 금교령이 발포되고 많은 기독교 순교자들이 생겼다. 일본 기독교는 1853년 안세이 조약 체결로 외세에 문호를 개방할 때까지 대략 200년 간 암흑기를 갖게 된다.  

    일본선교기간  중국선교에 대한 중요성을 파악한 사비에르는 일본에서 인도로 1551년 귀임한 후 다시 1552년 8월 중국 광동성과 가까운 상천도에 상륙하였다가 그곳에서 죽게 된다. 이후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인 루지에리와 마테오 리치는 1583년 중국 광동성 수도인 조경 지부를 방문하고 선교허락을 얻은 후 서문 밖에 성당을 짓게 되는데 이것은 사비에르의 중국 선교 시도후 30년만에 이루어진 쾌거였다. 

    1607년 루지에리의 사망후 중국선교의 책임은 마태오 리치에게 위임되었고 그는 중국문화를 수용하면서  유식자와 관료층을 주대상으로 포교에 나섰다. 중국 선교현장에서 리치는 여러 권의 서책을 중국어로 발간하게 되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천학실의> <교우론> <서학기법> 등이며 중국출신 성도들의 도움을 얻어 <천주실의> <기하원본>등의 한역서학서를 출간하게 된다. 

    이와 같은 학문을 통해 중국 왕실 및 상류층과 교분을 맺은 리치는 선교사업도 착수하여 북경에 교회를 세우고 1609년에는 북경에 천주성모회를 조직하였다. 그가 죽던 해인 1610년경에는 2천여명의 기독교인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명나라 말기에 중국에 들어온 예수회 중심의 천주교는 중국에서 발전하여 청왕조가 들어온 1644년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나 선교회들 간의 갈등과 청정부와의 마찰이 계기가 되어 중국에서의 천주교는 박해를 받기 시작하여 1842년 남경조약 때까지 1백년간 중국 기독교는 암흑기를 만나게 된다. 

    이와 같이 예수회 중심의 로마 카톨릭교회가 일본과  중국에 16-17세기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을 때 대한민국은 조선왕조시대 때로서 조선왕조는 명나라와 주종관계를 맺고 유교를 국시로 하며 기타 신흥종교 혹은 사상은 배척하는 분위기 속에 있었다. 

    조선왕조는 중기를 지나면서 두가지 중요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다. 

    임진왜란은 일본을 평정한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그의 후임으로 등극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국내의 갈등을 외국으로 전환하려는 정치적 고려에서 조선을 정벌하고자 한 것인데 그의 선봉대장 중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예수회 선교사의 선교로 기독교로 개종한 다이묘였다. 그는 그의 군대상징으로 십자가 문양을 사용하였고 조선반도에서 그의 군대가 머무는 곳에 천주교 신부들을 초치하여 미사를 집전케 하였다. 이때 조선에 들어온 천주교 신부는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와 일본 수도사 후칸 에이온이다. 그래서 이들은 1594년에서 1595년 4월까지 1년여간 조선반도에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 일본 군인들의 정신적 사기를 진작하는 일들을 도왔다. 

    이들의 조선입국은 조선인들의 선교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선 선교역사에서 갖는 의의는 미약하지만 한국과 로마 카톨릭 형태의 기독교가 전란을 통해서 조우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이다.

  • [손기일 사회복지칼럼] 유학생 부부 임신케이스&친자식 아닌 아이 키우는 친척/조부모 경우

    [손기일 사회복지칼럼] 유학생 부부 임신케이스&친자식 아닌 아이 키우는 친척/조부모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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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생 부부인데 의료보험이 없이 임신이 되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S씨는 한국에서 온지 2년이 된 유학생입니다. 

    아내가 의료보험이 없는데 임신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험회사에 가입을 하려고 전화를 했지만, 이미 임신이므로 가입을 거부했습니다. 

    경제적 사정으로 병원비를 직접 지불할 형편은 아닙니다.  

    의료서비스

    일반 Medicaid는 흔히 까다로운 자격조건을 요구합니다만, 그 자격에 해당되지 않는 미국 거주민에 대해 최소한의 응급서비스를 제공합니다. Emergency Medicaid라고 불립니다. 진통과 분만은 이에 해당하며, 미국에서 태어날 시민권자를 위한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일반 Medicaid를 신청을 하면 자격이 안되는 임산부에게 Emergency Medicaid를 줄 것입니다. 모든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산전 진찰은 출산을 자신에게 하는 조건으로 산전진찰(prenatal care)를 저가 혹은 무료로 해주는 의사를 찾는 방법과 지역의 Health Center Program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Health Center는 일정액, 혹은 무료로 산전진찰을 하며 각종 검사도 함께 해주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영양보조 서비스

    임신은 WIC의 서비스 자격 요건입니다. 신분에 거의 관계없이 서비스를 제공하며 산전의 영양 및 산후, 아이의 영양을 보조해 줍니다. 

    유학생이므로 그 외의 서비스는 이용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친자식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친척, 조부모로 도움이 필요한 경우 

    P씨는 여동생의 아이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여동생이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서더 이상 아이들을 키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P씨도 형편이 넉넉치 못한 편이라 걱정입니다.

    P씨의 경우, 동생의 아이들을  키우는데 어느 정도의 도움이 필요한 지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료보험, Child Care, 생활비, 학교급식비 그 외에 다른 비용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일, 그 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될 경우, Child Protective Services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아이들의 법적 양육권을 법원에 준다는 게 단점이지만 정부에서 인정하는 적절한 친척집에 살며 의료보험(Medicaid), Child Care, 교육비, 의료비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양육비용을 정부에서 지원하고(일정교육과 조사후 Foster home license를 획득할 경우), 아이들이 안정되었다고 판단될 때 법원의 인정하에 Guardianship이나 입양(Adoption)의 형식으로 법적 양육권을 친척에게 양도합니다.  

    법적 양육권 양도후에도 의료보험, 양육비 지원 등은 지속됩니다.

    만일, 부담이 되지만 심각하지 않을 경우, 일반 guardianship을 법원에 신청하고, TANF(child only)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만일 P씨가 저소득일 경우 다른 사회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혹시, 법적 관여가 싫고 여동생이 일정 기간 후 회복될 수 있으면 권한 위임(Power of Attorney) 정도록 양육에 필요한 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미셸김 원장 라이프칼럼] 100세 수명의 시대

    [미셸김 원장 라이프칼럼] 100세 수명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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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100세까지 사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너무 시끄럽게 호도하고 있다.

    노령인구하면 단연 일본이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져 왔는데 이제 한국은 노령인구의 증가도 그렇다지만 너무 급속하게 늘어나는 노인 인구로 정부 대책이 미비한 상태로 드러나고 있다.  

    요즘 돌아가는 세상의 변화속도는 너무도 빨라 몇십년 후의 일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개인이나 정부나 새로운 변화에 미리 대처하지 못하면 100세 수명을 산다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 가난과 고통이라는 커다란 재앙을 불러 오지는 않을지 오히려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50세 청년, 70세 중년, 90세 노년이라는 말이 이제는 사실로 되어 가고 있는 사회에 어느덧 우리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래도 100세 시대는 누구에게나 오는 축복은 아닌가 보다. 노령인구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나, 아니면 인생은 그저 이렇게 너, 나 없이 속절없이 늙어가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나. 괜스리 마음이 착잡하고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창가를 바라보면서 별일은 없는데 왜 그럴까?  

    청명한 날씨는 아니지만 늘 앉아서 책도 읽고, 신문도 읽고 하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창밖에는 새들이 더 많이 다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비 조금 뿌렸다고 보기 싫은 잡초들이 벌써 군데군데 밉상을 하고 돋아나 있다.  아이구, 저 보기 싫은 잡초들! 하고 돌아서는데 전화가 울린다.  

    “하이, 스캇 오랜만이네.  못 본지가 좀 됐네. 별일은 없구?”하면서 무심히 전화를 받았다.  “미셸, 다 괜찮아. 그런데 나쁜 소식이 있어. 놀라지 마. 너도 좋아하는 대니엘이 어제밤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어” “아니, 이게 왠 일이야? 바로 며칠 전에 통화했는데 아무 탈 없었어. 이 일을 어쩌면 좋아?”하며 당황하는 나를 달래면서 상세한 장례일정을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하고 스캇은 전화를 끊었다.

    한참동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대니엘,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 갑자기 가면 어떻게 해. 지난번 통화 때 곧 만나기로 했잖아!”하면서 앉은 채로 눈을 감고 독백을 하고 있었다.  

    스캇과 대니엘은 원래 오래된 친구, 거기에 비즈니스로 서로 알게 되면서 끈끈한 우정을 만들어 왔다.  스캇의 말이 “대니엘 같은 친구 없어요. 내가 재산이 많다면 모든 것을 대니엘 게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친구지.” 하면서 늘 둘의 우정을 자랑해왔다.  스캇은 좀 덜렁대는 성격이지만 대니엘은 항상 봐도 차분하고, 지적이고, 흐트러진 말을 하는 법이 없다.  

    대니엘은 항상 동부지역으로 일이 있어서 오게 되면 전화를 미리 해주고는 했다. 함께 만나 점심도 먹고 지나간 일도 얘기하고. 착하고 순수하고, 시간이 없어도 옆집 혼자 사는 노인집에 가서 잔디도 깎아 주고. “대니엘, 정말 보내기 싫다.”

    또 하나 슬픈 소식은 한국에서의 박완서 소설가가 담낭암으로 고생하다 유명을 달리 했다는 소식이다.  오래전이지만, 처음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를 않았다. 너무 상세한 설명에 빼곡 빼곡 채워있는 문장들이 조금은 지루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다음에 다른 책을 보아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누가 먹었을까?”하는 책을 읽으면서 “아, 내가 너무 무식하게 그의 책을 읽었구나. 치밀한 표현을 그냥 넘어가고, 이 책에 나오는 환경이나 가족사, 마음 묘사, 심지어 동네 풍경까지도 어떻게 이렇게 치밀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계속 반성하고 그리고 읽고, 그러고 나니 그의 소설에 빠져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성의 외곽 지역인 개풍에서 자라면서 겪은 시골생활, 서울에서 꼭 공부를 시키겠다는 엄마의 고집으로 서울로 이사와서의 낯선 생활, 그리고 6.25 전쟁,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슬픔 등 그때 그 모습이 그대로 떠오르는 쉽게 놓을 수 없는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다.  

    60을 갓 넘은 대니엘이나 아직도 좋은 문장 남기고 싶은 욕심 끝이 없다고 하던 박완서 소설가도 80을 못 넘기고 세상을 하직했다. 100세 수명도 누구나 다 누리는 수명은 아닌가 보다. 70세가 중년이라는데 아직 중년이 안 되었으니 더 팔팔하게 살아 보겠다면 흉이 되려나.

    1. 24. 2011

  • [손기일 사회복지칼럼] 싱글맘과 여성암이 의심될 경우 받을 수 있는 사회서비스

    [손기일 사회복지칼럼] 싱글맘과 여성암이 의심될 경우 받을 수 있는 사회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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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살게 된 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 

    M씨는 남편과의 관계 악화로 혼자 어린 아이 2명을 키우게 된 건강한 젊은 시민권자 여성입니다. 

    남편은 이혼은 하지 않고 집을 나갔으며, 경제적 도움을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1살과 4살로 혼자 집에 있을 수는 없는 나이입니다. 

    의료서비스

    의료보험이 없으므로 Medicaid를 신청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현재 수입이 거의 없으므로 별 문제 없이 승인이 되었습니다. 

    1) 재정지원서비스

    남편이 양육에 대한 책임이 지고 있지 않으므로, Child Support를 신청할 것을 제안했고, TANF를 신청할 것도 제안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일정액을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2) 주택서비스

    수입이 일정액 이하이므로 정부 주택보조 프로그램을 이용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원하는 지역에는 대기자가 있으므로 신청서를 내고 기다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3) 영양보조서비스

    우선은 급한데로 Food Bank를 이용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기저귀와 분유를 포함해 10여일의 음식을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므로 WIC를 제안했고 매달 분유와 기초 음식물을 살 수 있는 쿠폰을 받았습니다. 

    Food Stamp를 신청을 해서 한 달에 일정액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4) 생활자립지원서비스

    본인이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낮에는 정부보조 Child Care를 이용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두 아이 다 이용하며 실비의 이용료를 내고 있습니다.

     

    보험이 없는데 여성암이 의심스러운 경우 

    K씨는 이민온 후 의료보험 없이 살아서 정기검진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여성암이 의심스러운 증상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험을 사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고 이미 증상이 보이고 있어 보험회사에서 거부할 가능성이 큰 것이 걱정입니다.

    Medicaid 안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여성암 진단 및 치료 서비스입니다. 어떤 이유로 인해 보험이 없는 여성이 여성암(유방암, 자궁암)에 대한 진단을 일정 나이 이후 혹은 증상이 보일 때 무료로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미국의 모든 주에서 시행합니다. 

    만일 암이 진단되었을 경우 치료까지 커버해 줍니다.

    자세한 내용은 Medicaid 프로그램을 참조하시고 각 주의 Department of health나 Medicaid office에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 [정기원 목사 기독칼럼] 이와 파리떼 재앙 2

    [정기원 목사 기독칼럼] 이와 파리떼 재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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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앙이 일어나는 시점은  아침 일찍 동트는 시간이다.

    첫번째 재앙도 아침 일찍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물에서 땅으로 바뀐 재앙은 새로운 모티브를 보여준다. 

    재앙이 모든 곳에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고센 땅과 이집트의 나머지 땅이 구분되어 고센 땅에는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다. 

    23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사이에 구별을 두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구속(Redemption)의 개념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재앙으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구속하실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파리 떼의 재앙이 징조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구속이 징조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 중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이 징조는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바로를 겨냥하여 바로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과 그의 거부에 초점을 맞춘다. 

    4번째 재앙은 앞서 이루어진 다른 재앙들과 달리 하나님께서 직접 재앙을 시행하신다. 

    무수히 많은 파리 떼가 온 이집트 사람들 집에 들끓게 되고 결과적으로 땅이 해를 받는다. 

    해를 받는다는 히브리어 동사는 샤캍(Shachat)으로 구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파괴, 부패, 부식을 의미하며 사람이나 어떤 것이 파괴된다는 말은 부서짐(Brokeness)이나 더럽혀짐(Defilement), 오염(Pollution)을 암시한다. 

    이 단어는 노아의 홍수를 연상케 하는데 창6장11절은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하다고 기록한다. 

    마침내 하나님은 홍수로 땅을 파괴하기로 작정하신다. 

    인간의 폭력적인 행위가 땅의 파괴를 부른 것처럼 이집트 땅의 파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바로와 이집트 사람들의 폭력적 행위에 대한 결과이다. 

    재앙이 일어날 때마다 바로가 각각의 재앙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번째 피의 재앙에서 바로는 7장23절에 따르면 급히 서둘러 자기의 왕궁으로 들어갔고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애쓰는 흔적을 남긴다. 

    두번째 개구리 재앙에서 바로는 계략을 짜내 모세를 속인다. 

    재앙을 멈추게 하기위해 그는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것을 약속한다. 

    그의 이런 기만적 술책은 파리 떼 재앙에서도 계속된다. 

    8장25-27절은 바로가 모세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모세에게 이 땅에서 하나님께 희생의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한다. 

    바로의 명령에 대한 모세의 반응은 아이러니컬하다. 모세는 이집트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을 미워하기 때문에 이집트 사람들이 없는 광야로 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미워한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토에바(Toeva)”이며 가증스러움, 혐오감을 뜻한다. 

    신명기 18장에는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며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신다고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결국 이집트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는 물과 기름처럼 함께 섞이지 못하고 분리될 수 밖에 없는 관계이다. 

    가증스러움이란 단어는 위선적 행위를 지칭한다. 

    두 얼굴을 가진 가증스러움 이라는 단어는 바로와 연관된다. 

    바로는 출애굽기 전체를 통해 두 얼굴을 가진 남자로 표현되고 있지 않는가? 

    바로는 모세에게 이 땅에서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라는 선에서 한걸음 더 물러나 광야로 가기는 가되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말한다. 

    바로는 또 다시 모세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모세는 그를 위해 기도하고 약속을 어김으로써 자신과 하나님을 속이지 말라고 29절에 경고한다.

    그러나 바로는 또  다시 그를 속이고 마음을 완강하게  하였다.          

    정기원 목사 (480) 209-9279

    HUNG85259@YAHOO.COM  

  • [류연철 박사 건강칼럼] 다치기 쉬운 겨울철 운동요령

    [류연철 박사 건강칼럼] 다치기 쉬운 겨울철 운동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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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아리조나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기온 차이가 많이  나지요? 새해가 시작하면서 운동하기로 마음먹으신 분들 많으시지요? 그래선지 아침에 출근을 하다보면 동네를 조깅하시는 분들을 더 많이 뵙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겨울운동에는 조금 더 신경을 쓰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기온이 내려가면 몸이 움츠러들고, 움직임이 적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 해도 겨울이 다가오면 운동량이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죠. 

    통계자료를 보면 겨울철이 되면 평소 운동을 잘하던 사람도 약 30% 정도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깥 온도가 내려가면서 그만큼 운동량이 줄어들기 때문이지요.  

     

    꼭 준비운동 하세요 

    그런데 근육이나 관절이 제대로 풀어지지 않으면 조그만 충격에도 부상을 입기 쉽습니다. 부상을  막기 위해서는 준비운동이 중요합니다. 꼭 겨울이 아니라 해도 준비운동의 첫째 목적은 부상방지입니다. 

    겨울철에는 부상의 위험이 더 크니 충분한 준비를  하고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운동능력이 부족한 노인 분들은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겠습니다. 

    운동을 하다 사고를 당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데요, 아침에 갑자기 바깥공기를 쐬게 되면 감기에 잘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뇌의 혈관이 움츠러들어 혈압이 올라가게 되므로 뇌졸중의 발생도 증가합니다. 

    물론 심근 경색과 같은 심혈관 질환 발생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러므로 절대 부상을 입지 않도록 충분한 대비를 한 후에 운동을 해야 합니다. 

    충분히 몸을 따뜻하게 

    일단 바깥에 나가기 전에 충분하게 몸을 따뜻하게 하게 데운 후 나가도록 하시고, 외부 기온변화가 인체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도록 보온을 잘 하셔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옷을 따뜻하게 입으셔야 합니다. 

    아침저녁에 기온이 낮으니 운동하기에 좋지는 않지만, 보통 직장인들은 아침저녁이 아니면 시간을 내기가 힘드실 겁니다. 그래서 겨울에 운동을 하기 위한 준비방법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 제시하는 방법은 겨울아침 운동시 낮보다 특히 더 신경을 써서 지키시는 게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을 따뜻하게 한 다음 밖으로 나갑니다. 새벽에 갑자기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 온몸의 말초  혈관들이 수축하게 되어 뇌혈관질환이 많이 발생합니다. 밖에 나가기 전 충분하게 몸을 데워야 혈관의 신축성이 잘 유지됩니다. 물론 밖으로 나가기 전에 충분한 스트레칭과 준비운동을 통해 몸이 외부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두꺼운 외투보다는 얇은 여러 겹을 입으세요

    보온이 중요하기는 한데 보온을 하겠다고 두꺼운 옷을 여러 개 입는 것은 운동효과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어려우므로 부상을 입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러므로 겨울철에는 운동에 앞서서 얇은 옷을 여러 겹 입는 것이 좋습니다. 

    운동을 하다 보면 더위를 느낄 수 있는데 그럴 경우 하나씩 벗으면 되고 추위를 느끼시면 다시 입으시면 됩니다. 

    참고로 외투는 방수와 방풍이 잘 되는 것이 좋습니다.

    옷 색깔은  밝은 편이 어두운 편보다 좋습니다. 

    겨울에는 해가 짧으므로 아무래도 어두울  때 운동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밝은  옷은 어둠에 의한 사고방지에 도움이 됩니다.

  • [윤종범 작가 칼럼] 답게, 답게

    [윤종범 작가 칼럼] 답게,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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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구채에 잘못 맞아 날아간 세 개의 오렌지색 탁구공이 수영장 안에 둥둥 떠 있었다. 나는 팔을 한번 내려다보았다. 내 팔이 탁구공에 닿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내 팔은 원숭이의 팔처럼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팔을 뻗는 대신 마당에 놓여있는 그물채를 집어들었다. 

    그물채에 걸려 올라온 탁구공을 바구니 속에 집어넣고 탁구대 옆에 놓인 갈색 플라스틱 의자를 수영장 앞으로 끌고와 앉았다. 밤하늘에는 크고 작은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었다. 저 별들은 서울의 밤하늘에도 저렇게 박혀 있을테지. 크고 작은 저 별들이 사라지고 내일의 붉은 태양이 떠오르면 서울로 나들이갔던 아내와 딸은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의 ‘002 프로젝트’는 막을 내리는 것이다.  3주 전, 장확히는 3주에서 하루가 모자라는 20일 전에 나는 혼자가 되었다. 아내와 딸이 서울로 떠난 텅빈 집에서 나는 진공 청소기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아내의 눈길과 목소리가 집 안에 머무는 평소대로라면 진공 청소기는 벌써 세 번은 돌아가야했다. 대신 내 몸이 바닥을 쓸었다. 혼자가 된 나는 죽은 듯이 지내고 싶었다. 그림자처럼 바닥에만 나의 체취를 묻히며 살고 싶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싸지도 않으면서. 가능하다면 숨도 쉬지 않으면서. 그러나 그것은 일주일이 한계였다.

    일주일을 바닥에서 뒹굴고 난 후 나는 감옥에서 출옥하는 사람처럼 초췌한 모습으로 마당으로 빠져 나왔다. 머리는 강풍이라도 만난 듯 마구 헝클어져 있었고 며칠간 씻지 않은 몸은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 근질거렸다. 햇빛은 왜 또 그리 눈에 부시던지. 나는 이마에 손을 올리며 햇빛을 차단시켰다. 얼굴에 와 닿는 찬 바람이 다소나마 시원히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슬리퍼를 신은 발을 질질 끌며 나는 마당을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쉬지않고 또 한바퀴, 그리고 또 다시 한바퀴를 돌았다. 사실 몇 걸음 떼지않아 담을 보게 되는 작은 마당이라 쉴 필요가 없었다. 빙빙 돌아서인지 어지러워오는 머리를 진정시킬 요량으로 바닥에 끌리던 발을 멈추었다. 다행히 어지럼증은 발을 멈추는 순간 바로 사라지는 듯 했다.

    어지럼증이 가시고나자 패티오의 그늘 안에 들어앉은 탁구대가 눈에 들어왔다. 탁구대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비록 이름도 없는 싸구려 탁구대일망정 나는 그 탁구대에게 잠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인연이란 것은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숨쉬지 않는 물건에도 기꺼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제조회사의 이름조차 모르는 이 싸구려 탁구대는 나와 인연이 있는 것이다. 그 인연이 얼마나 오래되고 깊은 지는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원래 우리집으로 배달되기로 한 탁구대는 이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디서 오는지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나와의 인연이 이 탁구대를 우리집으로 불러 들인 것이 분명했다. 

    지난 해 10월에 열린 아리조나 교민 탁구대회에서 전패의 수모를 당하고 나서 나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었다. 주말이면 대략 아침 10시까지 침대에서 뒹구는 내가 아홉 시가 되기도 전부터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는 그런 치욕스런 참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뭔가를 해야했던 것이고 집에 탁구대를 들여다놓는 것은 그 전패 모면의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스티가(Stiga)’가 좋은 브랜드였는지는 그땐 알지 못했다. 스티가는 ‘나이키’라든가 ‘윌슨’처럼 내 귀에 익숙한 브랜드가 아니었다. 아니,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탁구를 치다보니 곳곳에서 스티가를 만나게 되었다. 탁구채, 탁구 라버, 탁구 네트, 그리고 탁구대까지. 그러니까 스티가는 탁구의 세계에서는 나이키였고 윌슨이었던 것이다. 

    피닉스 7번가의 어느 집 안에 탁구대가 놓여있었다. 그 탁구대 옆면에 쓰인 단어가 바로 스티가였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낸 탁구대를 보러가려고 전화를 했을 때 전화통에 대고 빨리 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애교스런 협박을 한 집 주인은 나를 반갑게 맞으며 거실 한쪽 구석에 놓인 탁구대로 나를 안내했다. 파란 탁구대였고 탁구대 옆면에 하얀색으로 ‘STIGA’라고 적혀 있었다. 첫 눈에 반했다는 말을 물건에 시용해도 무난할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 파란 색이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파란 탁구대는 첫 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겠다는 내 말을 듣고 집 주인은 탁구대를 반으로 접었다. 마치 종이처럼 뚝딱 반으로 접혀 세워진 탁구대를 벽 한쪽 구석으로 밀고 가면서 집 주인은 운반할 트럭이 있냐고 내게 물었다.

    “Truck?”

    나는 반문하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Well, then it will be delivered this afternoon. (그러면 오늘 오후에나 배달되겠군요)”

    집 주인도 트럭이 없었다. 옆집 사람의 트럭을 이용해야되는데 지금 당장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트럭을 부리는 옆집 사람은 나보다 한 술 더 떠고 있었다. 그 사람의 주말 기상시각이 나의 기상시각인 아침 10시를 한참이나 지나는 오후였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새색시 들이는 심정으로 탁구대가 들어앉을 거실 구석을 쓸고 닦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설쳐대 몸이 피로해져서인지 정오가 가까워 온 시각에 점심식사보다는 침대 생각이 먼저 났다. 침대로 기어들은 지 얼마가 지났을까.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을 때 나는 그것이 꿈결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녕 이승의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Sorry부터 외치고 있었다. 우리 집으로 배달되던 파란 탁구대가 트럭에서 추락했다는 것이다. 추락하면서 탁구대 어딘가가 망가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또 Sorry를 외치며 탁구대 주인은 전화를 끊었다. 탁구대가 들어앉을, 말끔히 단장된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오후에나 일어난다는 그 옆집 사람을 원망했다. 빌어먹을. 잠이 덜 깬 상태로 운전했나?   

    나는 다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때 내게 걸려든 것이 지금의 탁구대였다. 이번에는  초록색이었다. 그 탁구대를 처음 보는 순간 칠 만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집 안에 들여다 놓을 정도의 새색시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탁구대 두께가 너무 얇아 옆면에 브랜드 이름을 써 넣을 자리조차 없는 빈한 탁구대였다. 그러나 나는 배달을 부탁했고 아침 잠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깡마른 청년은 이번에는 추락사고없이 녹색 탁구대를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장소까지 무사히 배달해 주었다. 나와 이렇게 인연이 닿은 탁구대는 집 안이 아닌 바깥 패티오에 둥지를 털었다.

    비록 볼품없고, 싸구려고, 또한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이 아닌 녹색 탁구대였지만 나와 아내는 하루가 멀다하고 탁구대 위에서 볼을 똑딱거렸다. 교민 탁구 대회에서 전패를 당한 내 실력과 탁구채를 밥숟갈 떠듯이 위로 올리는 아내의 실력으로는 똑딱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빠른 ‘따닥 따닥’ 소리가 아닌, 느려터진 ‘똑 딱 똑 딱’ 소리. 그 소리일망정 아내와 딸이 인천행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는 계속 마당에서 울려 퍼졌었다.     

    일주일 사이에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탁구대를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집에 혼자 남겨진 시간. 이것은 내게 다가온 절호의 기회다. 나의 탁구 실력이 날개를 달고 비상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혼자 남은 집 안에서 빈둥빈둥 몸으로 바닥만 쓸지말고 아예 탁구대를 껴안고 살자. 탁구대에 탁구공 자국을 무수히 남기자. 싸구려니까 더 잘 된 일이다. 아낄 필요없다. 마구 남용하자. 치고 또 치자. 탁구대에 빵구가 날 때까지. 명명하여 ‘002(2주간) 프로젝트’.     

    나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주 전 내가 탁구대를 샀다는 얘기를 했을 때 그러면 시간날 때 전화하라는 K의 목소리가 어찌나 감미롭게 상기되던지. K는 지난 번 교민 탁구 대회에서 내가 전패를 당하는 동안 한번도 패함이 없이 전승을 하여 결승전까지 진출했었다. 또 다른 K가 버틴 결승전에서는 역부족이었지만 K가 내 스승이 되기는 충분했다.

    K는 우리 집을 세 번 다녀갔다. 비 오기가 쉽지 않은 아리조나에서 비가 내리던 날도 그는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수영장으로 떨어지던 겨울비 소리는 탁구대에서 흘러나오던 경쾌한 소리와 절묘한 화음을 이루며 마당을 가득 채워 나갔었다. 

    나는 또  다른 스승을 물색했다. M은 테니스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미국 오기 전 한국에서 연구소에 재직하는 동안 수년 간을 매일이다시피 탁구를 쳤다는 M의 말을 상기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와 테니스를 치던 중간중간 나누던 대화에서 가끔씩 그의 탁구 역사가 끼여들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그가 탁구채를 휘두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테니스를 치는 것만 봐도 그의 탁구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테니스를 치는 폼이 딱 탁구 폼이었던 것이다. 내가 탁구를 테니스 치듯 그는 테니스를 탁구 치듯 했다. 테니스채를 휘감지 않고 위로 쭉 뻗어올리는 M은 영락없이 탁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내 테니스 실력만큼이나 탁구 실력을 갖춘 것이 분명했다.

    M은 테니스장 대신 우리 집으로 차를 몰았다. M은 한동안 탁구채를 잡아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떡 주무르듯이, 요리사가 도마 위에서 야채 썰 듯이, 손쉽게 요리했다. 그 말인즉은 내 예상대로 M도 K처럼 나의 스승이 되는데 조금의 손색이 없었다는 것이다.

    “손을 너무 오른쪽으로 빼지 말아요.” K의 지적이었다.

    “상체를 좀 덜 움직여보세요.” 이번에는 M의 지적이었다. K나 M은 똑같이 내게, 테니스가 아닌 탁구를 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탁구는 탁구답게 치라는 것이지요?”

       스승의 부재 시간에도 나는 가만 있질 않았다. 탁구대 한쪽을 접어올렸다. 벽처럼 올려간 탁구대는 또 다른 스승이 되어 주었다. 두들겨도 두들겨도 벽을 맞고 되돌아오는 조그만 탁구공 앞에서 나는 혀를 길게 빼고 숨을 할딱거려야했다. 나는 그렇게 혼자 남겨진 시간을 탁구대와 함께 보냈다. 2주 동안, 글 쓰는 것도 잠시 잊은 채 탁구대 앞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내게 탁구를 탁구답게 치는 법을 일러준 셈이다. 어린 시절 즐겨쳤던 탁구를 손에서 놓고 테니스채를 휘두르던 지난 30년 동안 테니스 속으로 묻혀버린 나의 탁구를 어느 정도의 선으로 복원시켜준 셈이다. 그 시간은 또 탁구 뿐만 아니라 내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시간이기도 했다. 탁구를 탁구답게 쳐야하듯이 나는 나답게 그리고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야함을. 그래서 인생은 전혀 굴곡지지 않고 물 흐르듯 유유히 흘러가야함을.

    아마도 그물채로 건져 올린 세 개의 탁구공이 수영장에 빠진 마지막 공이 될 듯 하다. 아내와 딸이 한국에서 돌아오면 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또 다시 똑딱 똑딱 소리일테고 그 똑딱 소리로는 탁구공을 멀리 수영장까지 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똑딱 소리는 예전에 내 귀에 들려오던 똑딱 소리와는 다름이리라. 똑딱 똑딱이 ‘답게 답게’로 들려올 것만 같다. 

    탁구는 탁구답게. 테니스는 테니스답게, 글은 글답게…… 인간은 인간답게.                  

  •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요통(腰痛) 2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요통(腰痛)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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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허 요통(腎虛 腰痛) 

    요통은 전체 노동인구의 약 80%가 살아오면서 다소나마 아파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흔한 병증 중에  하나입니다. 허리가 아프면 흔히 “이거 혹시 디스크에 걸렸나?”하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허리가 아프다고 모두 디스크 병은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요통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사계절 중에 밤의 시간이 가장 긴 겨울철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인지, 방사과도(房事過度:과도한 성관계)나 만성적 지병으로 체력 소모의 과다로 인하여 많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신허요통이 있습니다. 신허 요통이란 말 그대로 신장(腎臟)의 기능이 허약해져서 나타나는 요통입니다.  

    요통을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한의학에서는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요통유십(腰痛有十)’이라 해서 그 발병 원인과 성질에 따라 요통 10가지로 분류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빈발하는 것 중 하나가 신기(腎氣)의 허쇠(虛衰)나 만성적인 피로로 인해 발병하는 ‘신허(腎虛)요통’ 입니다. 이는 인체의 근본적인 에너지를 담은 기관인 신장(腎臟)의 기운이 떨어져서, 이 신장의 기운을 근거로 해 활동하는 허리 역시 약해져 나타나는 것입니다. 신을 허하게 하는 요인은 과음, 흡연, 장시간 운전, 지나친 운동, 부족한 수면시간, 스트레스, 지나친 성생활 등 입니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이나 의학입문(醫學入門) 등의 한의학 의서(醫書)를 보면, “腰僞腎府 轉搖不能 腎將憊矣”(허리는 신장의 부로서 허리를 움직이고 흔들지 못하는 것은 신의 고달픔에 기인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腰者 腎之外候 一身所持 以轉移開闔者也”(허리는 신의 외후로서 일신이 허리의 힘에 의지해서 움직이며 행동과 굴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허요통에 대해서는 “脈大者 腎虛腰痛也 …..房慾傷腎 精血不足養筋…..”(진맥에 대맥은 신허요통이다…..과도한 성관계로 정혈이 근육을 배양하기에 부족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신허요통의 초기 증상은 만성적인 피로로 인한 몸의 무거움, 고단함, 아침에 기상의 어려움과 함께 허리부위의 통증이 심하지 않으나 오래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잘 낫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특이한 증상은 휴일 갈은 날에 피곤하여 오래 잠을 자거나, 누워있으면 편안해야 할 허리가 더 아파서 누워있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늘 기력이 없으며 잠시 누워서 쉬면 증상의 호전이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허요통이 더욱  진행되면 허리뿐만 아니라 걷거나 서  있을 때 다리쪽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듭니다. 또 신장(腎臟)이 주관하는 소변의 배설 기능저하와 부부관계에서 정력과 성욕(性慾)의 감퇴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증상들에 대해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러다 좀 쉬면 좋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방치해 치료를 받지 않고 병을 더 키워 각종 근골격계의 퇴행성 변화뿐만 아니라, 내분비 장애로 인한 전신 증상으로 발전하게 되어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허요통은 대부분  만성적인 피로로 힘들어하는 중장년  남성들에게 자주 나타나며, 최근에는 성장기의  청소년층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대부분 잘못된 자세를 취하며 과도한 학업량으로 인해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잘못된 습관들을 조기에 바로잡지 못하면 성장의 불균형, 체력 저하, 발육 장애, 만성 요통 등으로 학업에도 막대한 지장을 줄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신허요통의 치료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먼저 생활습관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과음, 흡연, 장시간 운전, 지나친 운동, 부족한 수면시간, 스트레스, 지나친 성생활 등을 피하거나 억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허리근육 강화운동 및 신전운동(스트레칭 체조)을 꾸준히 하면 요통이 서서히 사라집니다. 두번째로 한의학적인 치료입니다. 여기에는 침, 추나, 뜸, 부항, 한방물리치료, 한약치료 등이 있습니다. 급성 요통이나 염좌(捻挫)는 침, 뜸 등으로 치유가 쉽게 되지만, 신허요통은 발병 요인 자체가 인체의 에너지를 담는 신(腎)이 허약해진 것이어서 한약치료를 통해 병의 근원인 신허(腎虛)를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처방으로는 육미지황원(六味地黃元), 팔미원(八味元), 청아원(靑娥元) 등이 있으며, 신허요통에 하체가 허냉(虛冷)하여 소변을 조금씩 자주 보면 국방안신원(局方安腎元)을 응용하며, 신허요통에 뼈속이 시린 느낌이 있으면 보수단(補髓丹), 신허요통에 눈이 어둡고 침침하며 귀가 잘 안들려지면 가미안신환(加味安腎丸)을 처방합니다. 증상에 따라 이런 처방에 기혈 순환과 정(精)을 보강 시켜 주는 녹용(鹿茸), 목과(木瓜), 속단(續斷) 등의 약재들은 환자 체질에 맞게 감별해 처방한 한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이런 치료를 통해 요통의 사라짐과 만성적인 피로감 및 활기찬 부부생활 개선에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경보당 한의원 (480) 314-0701 

  • [윤원환 목사 기독칼럼] 한국교회 형성 이야기 2

    [윤원환 목사 기독칼럼] 한국교회 형성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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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교회 형성 이야기중에 우리는 고대로부터 통용된 소위 ‘실크로드’가 대략 세가지 경로로 운영된 것을 언급하였다. 그것은 북방루트, 남방루트, 그리고 해양루트 등이다. 앞의 북방 및 남방루트는 주후 13-14세기 때 몽골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장악하면서 인류 최초의 지구촌적 안전하고 일사분란한 관리와 통제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이후 해양루트의 발전으로 북방 및 남방루트의 사용은 서서히 쇠퇴하게 되었다. 실크로드의 시작이며 끝은 중국으로서 서력기원경  한나라로부터 시작하여 주후 7세기의 당나라 때는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당나라 수도 시안에서 한반도의 북방루트와 해양루트를 통하여 당시 통일신라 경주에도 국제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통일신라가 서역과 교역한 물품중에는 유리제품과 더불어 알로에도 포함된다. 

    주후 1세기 이후 이와 같은 동서 실크로드는 경제적 교통의 통로만이 아니라 기독교 복음의 동방전래 통로이기도 하였다. 혹자는 인도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사도 도마가 해양루트를 따라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반도까지 방문하였다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전개한다. 굳이 사도 도마 자신이 아니라도 그를 추종한 여러 제자들이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동북아시아까지 흘러 들어와 복음을 전했을 개연성은 없지 않다. 하지만 주후 7세기경에서 9세기까지 중국 당나라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네스토리안 교회(경교)와  주당 통일신라시대 방문자들 혹은 유학생들과의 다양한 조우는 상당히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 기록에는 그 당시 당나라에서 유행하던 경교의 도를 신라국에서는 접촉하거나 도입해서는 안 될 것으로 조정에 주청하는 내용도 언급된 것으로 봐서 그 당대 통일신라인들이 중국 당나라까지 전래된 경교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든지 인식했다는 역사적 증거가 된다. 

    주후 6세기 이후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 발전된 네스토리안 교회의 역사중에는 이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조우한 타종교들, 특히 불교와 경교 성직자들이 여러 면에서 협력한 사료들이 나타난다. 그 중에 재미있는 일화는 페르시아에서 온 경교 성직자들이 불교 수도승들과 함께 불경이나 성경의 내용을 중앙아시아인들의 언어들인 투르크어, 몽골어, 위굴어 그리고 중국어 등으로 번역함에 있어서 서로 도와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경교 성직자들이 성경이나 성경주해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불교나 도교의 용어들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음이다. 또한 중국 당나라 시안에 세워진 경교기념비의 상단부에는 기독교적 상징인 십자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상징인 연꽃과 도교상징인 구름이 함께 장식된 것으로 보아 그 당대 종교간의 우호적 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속에 주후 7세기 이후 중국을 경유한 경교의 여러 가지 흔적들이 당대 한반도의 통일신라로 유입되었으리라는 추정은 무리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미 필자는 아시아 교회 형성 이야기에서 언급한대로 한반도에서의 경교적 흔적은 금강산 장안사에서 출토된 석제 십자가상, 불국사에서 출토된 마리아상 그리고 석등에 새겨진 십자가 문양등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소승불교에서는 없는 미륵불, 즉 미래불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문양, 전국 여러 사찰 등이나 암반에서 보여지는 삼불상 등은 어떤 식으로든 중국과 한반도에서 불교와 경교가 조우하고 상호교합의 과정이 있었던 것을 추론케 한다.     

    만약 당나라 때 중국에서 활발했던 경교가 그 이후에도 계속 존속하고 더구나 주후 13-14세기 때 몽골제국의 짧은 시절에 큰 지원을  받은 경교가 그 이후에도 계속 존속되었다면 경교 형태의 기독교가 한반도에서도 더욱 선명하게 그 존재를 각인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과 더불어 아쉬움을 토로하게 된다. 

    분명히 중국까지 전래되고 상당한 기간 존속된 경교형태의 기독교회가 한반도에서 각인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전개된  그 이후의 종교적 박해일 것이고 또한 다른 한가지는 이미 중국과  한반도에서 뿌리를 내린 타종교들의 강한 견제가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든 익명의 형태로라도 경교는 한반도 주민들과 조우한 것은 사실이고 이것은 그 이후에 전개되는 한국민의 열렬한 종교성의 또 다른 기저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지난 날 주후 7세기 이후 14세기까지 중국에 전래되고 존속된 경교형태의 기독교회와 한반도와의 상호교감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재발굴하는 지난한 노력들이 앞으로 많이 일어나야 할 것이며 단지 확실한 역사적 사실들에만 매달려 한반도에서의 기독교회의 전래는 주후 18세기 천주교 그리고 19세기 개신교 선교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는 단정적이고도 단선적인 사관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