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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김 원장 라이프칼럼] 가을이 온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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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온단다. 가을이. 꿀맛같은 가을이. 창 밖이 이상스럽게 환하게 비쳐서 웬 달빛인가 하고 창을 열어 보니 싸늘한 달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려다 보고 있다. 아, 그렇게도 세 자리수 온도가 싫어서 목매어 가을을 기다렸다고 해도 여름이 너무 서운해 하지는 않을런지. 저 싸늘한 달빛이 가을이 오고 있으니 이제는 괜찮다고 어깨를 다독여 주는 듯 위로해 준다. 

역시 가을은 사유(思惟)의 계절이라 하지 않았던가. 가을이 오고 있음을 상징하는 억새풀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어느 잡지의 사진을 보고 억새풀이 저렇게 멋있었던가 하고 새삼스레 놀랬다. 가을하면 떠 오르는 코스모스는 어떤가. 가느다랗고 길게 뽑은 줄기 위에 장미처럼 요염하고 풍성하지는 않아도 겨우 꽃잎을 유지하면서 세찬 바람이 불어도 힘차게도 하늘거리며 서 있다. 겨우 여덟개의 꽃잎을 피우기 위해 그리도 강한 바람과 맞섰던가. 


좀 있으면 또 서정주(徐廷柱 1915-2000) 선생의 살아 있는 국화꽃을 연상케하는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읊어지고 싶어지겠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중략-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우리에게도 가을의 초입이라는 말을 써도 될까하고 두려워진다. 피닉스지역의 끔찍했던 여름도 물러 갈 때도 있는가 싶게 역시 알게 모르게 가을은 다가 오고 있는가 보다. 한 여름에는 자동차의 바퀴도 뜨거운 땅 열기에 아파할 것 같아 자동차 여행을 삼가고 싶었다. 시원한 계절이 오면 떠나도 될 것을 구태어 피닉스의 한 여름에는 여행도 싫어지는 계절이다. 이래저래 미루어 오던 콜로라도의 가을이 우거진 모습이 보고 싶어 기차여행을 계획했다가도 우리의 시원한 계절은 그들에게는 겨울이 오는 계절이라 기차여행 시즌은 끝난단다. 번번히 놓치는 그 기차 여행을 금년에도 놓지고 말았다. 아리랑 축제 행사준비로 그런 호사를 누려보는 것조차 나에게는 허락이 안되는가 보다. 

  

적어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간이역에서 뚜- 하는 기적소리를 들으면서 녹음속으로 달려 보는 기차를 타고 가을을 맛보고 싶은데 어찌 이리 어려운가. 간단한 가방 챙기고 어린이들 소풍가는 기분으로 마음이 한껏 들떠서 홀가분하게 떠나 가을 냄새를 맡고 싶은 기차 여행. 어렵지 않은 일이 꽤도 어럽게 운명의 장난 인양 번번히 무산되고 만다. 찌들어진 삶의 구속에서 훌훌 버리고 떠나겠다는데 뭐 이리도 제약이 많을까. 

  

지난 주간 단 며칠이긴 해도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제 우리에게도 코스모스 향기처럼 싱그러운 가을을 맛보게 하려는가 보다. 잊고 지낸 사색과 추억의 계절, 가을이 온다는데 이제는 옷 매무새도 가꾸고 아름답고 그윽한 향기나는 가을의 여인으로 변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조금은 순수하고 조금은 지성적인 짙은 사색의 가을을 다시 찾아 떠나고 싶다.  사람들에 부대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모습에 때로는 이것이 추해지는 모습이 아닐까 자책도 해본다. 때로는 우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만하면 행복한 것 아닌가 위로도 해 보고, 언젠가는 외로움에 휘말리고, 또 그러다가 고독에 한껏 빠져 보기도 했다.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아 그나마 실낫처럼 잃어져가는 지성을 되찾고 싶어 방황할 때도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겨울이 온다고 하지. 그래서 낙엽들이, 은행잎들이 자기 할 일을 다 했노라고 줄줄이 떨어지는 계절이 오겠지. 나는 지금 너무 빨리 계절을 앞서 가는 것이 아닌가. 가을 초입에 낙엽 떨어지는 생각을 하고, 겨울을 재촉해 보는 생각 , 역시 생각하는 계절 가을이 온다는데 나는 외로움부터 타는가 보다. 


10. 10.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