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첫달의 시작인데 조용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을 수양하듯 새해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하고 싶다. 나를 다듬으면서 남을 배려하고 이웃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고 더 많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도울 수 있는 길이 어떤것이 있을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다. 새해가 되면 모두들 예년에 하던 습관대로 실천해야 할 목록을 만들어 놓지만 3일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부디 지금의 이마음 그대로 일년을 잘 간직할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세상이 변해서인지 모두가 나를 먼저 내 세우고, 보고 들은대로 가릴 줄 모르고 한마디씩 다 해야되는 세상이니,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줄 아는 분별력 있는 사람이 귀해 졌다. 오죽 했으면 은퇴한 어느 노기자(老記者)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정확히 아는 이를 만나는 게 동쪽으로 가서 귀인 (貴人)을 만나는 것보다 더 어려워졌다.” 고 했을까.
19세기의 미국시인 롱펠로우도 이미 그런 사회를 경험했던것이 그의 시(詩) 에 묻어 나온다. “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을/오늘 만나고 싶다/결코 화려하지도 투박하지도 않으면서/ 소박 한 삶의 모습으로/오늘 제 삶의 갈 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 하나/ 고이 간직하고 싶다.”
왜 사는 모습들이 모두 바쁜 모습일까?
도대체 누구하나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걱정없이 사는 사람이 없는 것 처럼 또 다 바쁘게 산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도 결국 가는 곳은 한 곳 뿐인데. 훌훌 떨치고 도착하는 인생의 종착역. 바쁘다고 한다, 걱정도 많다고 한다, 부족한 것은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힘겹게 인생을 살아 가고 있다. 어느 교수의 말처럼 아령을 달고 고해를 건너는 것이 인생이라 했거늘 정녕
신(神)의 뜻은 어디에 있기에 인간에게 이처럼 힘든 인생을 맡기셨을까.
지난 토요일, 피닉스에 온 이래로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던 중국사회 리더의 장례식에 다녀 왔다. 3년여를 암과 싸우면서 힘든 인생의 막을 내렸다. 항상 볼 때 마다 건강하고 쾌활하고 의욕이 넘치는 그는 암과의 전쟁에서 힘없이 넘어지고 말았다. 그 많은 할 일들을 남겨둔채 어떻게 떠났을까? 장례식에는 그의 도움을 받은 많은 중국인들, 그리고 정부및 타단체 관계자 들이 참석했다. 중국사회에 그만한 일꾼 을 찾기 힘든데 아까운 리더를 잃었다.
어느 이민사회나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는 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리더를 찾아 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우리보다 훨씬 큰 중국사회도 몇 안되는 리더가 항상 앞서 왔는데 그 중의 한명을 암으로 잃었으니 리더 한 사람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진정 아까운 일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지난 6개월사이에 두명의 중국사회 리더 겸 친구를 잃었다. 말없이 떠났지만 추모하며 모인 사람들 은 그들이 반듯하게 살아 왔기에 그리워 하며 아쉬워했다. 훌륭한 일들을 하고 좋은 모습으로 기억 되는 것이 자랑 스럽기도 했다.
또 한명은 한국친구 처럼 가깝게 지내 던 중국신문사의 여성 발행인으로 활약 하던 여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누구 보다도 나는 그녀를 잃은 것이 너무 슬퍼서 소식을 듣고는 침대에 누워 엉엉 울고 말았다. 만날 날을 약속해 놓고는 기다리고 있던 때 였다. 단정하고, 사리 분명하고, 같은 여성으로서 이민사회의 고충을 서로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정을 나누던 그녀였다. 어찌 이렇게 창창하고 무한한 미래를 가꾸던 친구들 이 뜻밖에도 쓰러져 가는지 가슴이 찔리는 듯 아프다. 경허선사의 경어록을 읽은 내용이 모두 맞는 말로 귀에 쟁쟁하다.
잘난 청춘도 못난 청춘도
스쳐가는 바람 앞에 머물지 못하며
못난 인생도 저 잘난 인생도
흘러가는 저 구름과 같을 진데
어느날 세상 스쳐가다가
또 그 어느날 홀연히
사라져 가는 생을 두고
무엇이 청춘이고 무엇이 인생이라고
따로 말을 하리까 우리네 인생도
바람과 구름과 다를 바 없는 것을
두 사람의 아까운 친구를 잃고 나니 허전하다기 보다는 앞일도 장담 못해 주는 치사한 인생, ‘네 마음대로 가라’고 했다. 이런 인생 끝나고 나면 어떤 모습 으로 기억이 될까 궁금해 졌다. 지금까지 살아 온 모습들, 지금까지 해 온 일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귀한데.
나의 조국과 미국사회, 그리고 한인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서 살고 싶었다는 나의 뜻이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기억에 남으려나?
1월16일 2012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