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에는 이유없이 짜증도 나고, 괜히 화도 나고, 흔히들 쓰는말로 뚜껑이 열린다고 하던데 바로 이런 증상인가보다. 다가오는 아리랑축제 때문에 컴퓨터 앞에 꼬박 앉아서 일하려니 잠자는 시간도, 먹는 시간도, 쉬는 시간도 모두 엉망이 되었다. 감정만 민감해져서 확 뚜껑이 열린다는 말이 지금 이런 때 딱 맞는 것 같다. 따끈한 커피가 아니면 마시지 않는 사람이 금새 만들어 놓은 커피도 다 잊어버리고 컴퓨터만 찰칵 찰칵 눌러 댄다. 또 커피가 다 식었네!!
한동안 축제준비에 열중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고 허둥대고 살았던가 보다. 무심코 달력에 빨간 표시가 9월 12일이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 한국에서는 구정이건 추석이건 온나라가 시끄럽게 즐기는 명절이니 비켜갈 수는 없지만 미국에서는 바쁘다는 핑게로 구정도, 추석도 잊고 지내는 것이 너무 당연시 되어 보인다. 옛날의 그리운 추석의 정겨웠던 모습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쌀가루를 빻아 와야 저녁에 모두 둘러 앉아 송편을 빚어야 하니 쌀부터 빻아 오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이것은 꼭 나 아니면 내 바로 위의 언니 차례다. 늘 폼잡고 다니는 언니 위의 오빠는 안되고, 내 밑으로는 어린 두 남동생이라 시키지 못하고, 그러니 엄마는 고등학생 언니와 중학생인 나만 늘 방앗간을 드나들게 만드셨다. 그것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줄을 길게 늘어 섰기 때문에 언니와 나는 돌아가면서 교대를 했다.
저녁이 되면 결혼한 오빠와 새언니가 같이 와서 빈대떡이며, 잡채, 고기전, 생선전 등 고소한 맛이 풍기는 맛있는 음식들 준비에 모두들 바빴다. 방앗간에는 그렇게 심부름을 잘도 시키시던 엄마는 음식을 만들 때만은 나를 포함시키지 않으셨다. 송편을 만들어 보니 언니는 조그맣고 내가 봐도 정말 예쁘게 빚어 놓는데 나의 송편은 창피하게도 둥글넙적하게 나오니 그 송편을 누가 먹겠는가고 밀어 내셨다.
그래서 나는 새언니가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맛있게 먹으며 돌아다녔다. 추석 전날 밤이면 그동안 조금씩 준비해 놓은 음식에 마지막으로 손님상에 올라 갈 음식까지 다 마쳐놓으니 높이 뜬 추석 보름달이 환하게 비쳐준다.
그렇게 즐거운 날이었지만 엄마는 늘 새로 들어 온 며느리 때문에 마음을 많이 쓰시는 것을 놓지지 않고 보았다. 엄마는 새언니가 조금이라도 불편해 할까봐 염려하는 눈치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월은 많이 변했어도 고부간의 감정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한번은 학교에서 돌아 오는데 집에 계셔야 할 엄마는 부지런히 어디를 가시는 모습이었다. 한 손에는 꽃다발과 케익상자를, 다른 한 손에는 선물을 들고 오빠네 집에 가신다고 하였다. 학교교사였던 새언니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언니의 생일선물을 들고 가시는 중이었다.
딸은 출가외인이 될 사람이지만 새애기는 우리집에 들어 온 자식이라고 정성을 기울이시던 엄마. 자식들 키우느라 노심초사 하시던 엄마는 이제 새 며느리를 들여 놓고 또 노심초사. 며느리가 시집에 불평하기 시작하면 그 피해가 아들에게 간다는 것이 엄마의 공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엄마를 생각하니 왜 이리도 눈물이 날까.
어느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여인이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서 이혼을 했다고 한다. 한국의 시집살이라는 굴레가 싫어서 외국인과 결혼했는데 완전히 당했다고 하소연이다. 10만여명의 한국 여성이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갔다. 모두가 한국의 시집살이가 싫어서였을까?
그래도 추석 명절이면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도 빚고, 빈대떡도 부치고, 자주 보지 못했던 친척들도 만나고, 땀 흘리며 함께 수고하는 가족들의 끈끈한 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누리는 행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혼나면서도 집어먹던 전이며 나물들이 어찌 그리도 맛있던지 8월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고향의 추석 명절이나 곱씹으며그리워해야 할 것같다.
9. 5.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