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플로리다 초대 총독 '디 나르바에즈'의 불운 (6)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총독 구출작전에 직접 뛰어든 총독 부인 마리아
마리아는 총독과 평생 교분을 나눈 스페인 거주 세발로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세발로스도 쾌히 응락했다. 마리아는 세발로스에게 수색동안 필요한 양식은 조달이 용이한 스페인 세빌에서 구하여 산티아고로 운송하도록했다. 선원과 수색대도 직접 고용했다. 총독 구출작업에 나선 세발로스도 근 반년을 탐파 베이 인근을 수색했으나 이미 플로리다를 떠난 총독과 그 일행은 찾을 수가 없었다. 수색을 포기한 세발로스는 마리아의 쌍 돛대 범선을 몰고 뉴 스페인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쌍돛대 범선을 처분하여 수색 기간중 사용한 경비를 충당하려했다. 남편을 찾지못한 마리아는 세발로스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최고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했다. 마리아의 처지를 동정하는 황실의 도움으로 결국 마리아가 승리하여 잃을뻔 했던 쌍돛대 배를 찾을 수가 있었다.
토착민에 납치되었던 오르티즈 11년만에 구출
한편 토착민에게 끌려갔던 오르티즈는 11년후 플로리다 총독에 임명된 소토(Hernando de Soto)가 구해냈다. 600여명의 병사와 탐험대를 이끌고 1539년 5월30일 플로리다에 상륙한 소토는 토착민 마을에서 짐승처럼 굴러다니는 오르티지를 구했다. 오르티지는 토착민들에게 잡혀있는 동안 짐승 이하의 학대를 받았다고 말했다. 토착민들이 광장에 모여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날이면 오르티즈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내내 너른 광장을 달려야했다. 오르티즈의 발걸음이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토착민들은 달리는 오르티즈에게 화살을 날렸다. 피를 흘리며 신음하며 달리는 오르티즈의 모습을 즐기며 토착민들은 먹고 마셨다. 어느 때는 오르티지의 사지를 결박하고 불구덩이에 던지고 오르티지의 비명을 즐겼다고했다. 소토가 오르티즈를 발견했을 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11년동안 부림을 당한 오르티즈는 대화를 나누니 사람이지 실제는 동물같은 모습이었다고 했다. 소토의 탐험대는 플로리다를 비롯한 인근 지역을 탐험하면서 150여명이 목숨을 잃고 450명만이 살아서 돌아갔다.
밀림을 탈출할 뗏목을 만들어라
천년의 정적이 새벽 안개처럼 가라앉은 바닷가 밀림은 아름드리 나무를 찍는 도끼 소리가 요란했다.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면서 잔가지가 땅을 치는소리, 나무둥치가 땅에 구르는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사나이들의 거친 숨소리, 고함소리가 밀림에 가득했다. 고요했던 밀림이 갑자기 시끄럽자 놀란 새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소리, 화들짝 놀란 멧돼지, 여우, 야생고양이들이 달아나는 소리가 한동안 메아리치면서 바다로 퍼졌다.
1528년 8월, 악어와 물뱀이 유유히 헤염치는 늪과 소택지 그리고 온갖 들짐승이 어슬렁대는 밀림을 총독과 대원들은 걷고 또 걸어 바닷가 작은 만에 이르렀다. 어깨를 기댄 동료가 맛있는 고기덩어리로 보일 만큼 대원들은 허기지고 지쳐있었다. 300명으로 출발한 육상탐험대는 고작 252명만 바닷가에 이르렀다. 근 4개월동안 밀림을 떠돌면서 48명이 질병과 영양실조 그리고 토착민의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기력을 다한 많은 대원이 말등에 얹혀 바닷가로 왔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지치고 병들기는 말들도 마찬가지. 80여 마리가 플로리다로 향하는 배에 올랐으나 30여마리 이상이 뱃길을 견디지 못했다. 사라토사 만에 도착한 말은 고작 40여마리. 탐험에 동원된 40여마리도 제대로 돌봄을 받지못해 갈비뼈가 훤히 들어날 정도로 야위였다. 총독도 이제는 수척한 몸에 기력이 다한 모습이었다.
300명 대원중 252명만이 바닷가에 도착
바닷가에 자리잡은 대원들은 우선 수정처럼 맑은 바닷물에 깔려있는 굴과 조개로 허기를 달랬다. 그리고 이제는 쓸모를 다한 말 한마리를 잡아 오랜만에 성찬을 즐겼다. 저녁나절 플로리다의 8월 바닷가는 쌀쌀했다. 화톳불에 둘러앉아 몸을 녹이던 대원 중 누군가가 지니고 있는 쇠붙이로 연장을 만들어 배를 만들자고했다. 밀림을 빠져나갈 수있는길은 이 방법밖에 없다고했다. 총독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 파도소리가 노래처럼 바닷가를 지났다.
8월4일 대원들은 지니고있는 쇠붙이를 모았다. 말의 발굽에서는 편자가 벗겨지고 말 안장에서는 박차가 떨어졌다. 기마병들의 군장에 붙은 쇠붙이도 떼어지고 석궁도, 그리고 화승총도 모아졌다. 늪지에서 흙을 퍼다가 엉성하게 쇠붙이를 녹일 노를 만들었다. 불길을 세게 잡기위해 사슴가죽으로 풀무도 만들었다. 노에서 도끼날이 나오고 망치, 못이 나왔다. 또 대원들은 나무를 켤 톱도 만들었다. 기력이 남아있는 비교적 건강한 대원들이 바닷가를 끼고있는 울창한 나무숲으로 들어가 아름드리 나무를 베기시작했다.
석궁 화승총 말굽 군장을 녹여 도끼, 톱을 만들다
목공과 조선 경험이 있는 포르투칼 출신 알바로 페르난데즈가 작업을 지휘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물에 잘뜨는 고무나무, 참나무, 버드나무를 베어냈다. 250여명이 나누어 타고 갈 뗏목 5척을 만들기로 하고 모두 150여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베어졌다. 갑판용으로는 나무 밀도가 높은 소나무, 삼나무가 베어졌다. 대원들은 넘어진 나무에 달려들어 가지를 쳤다. 또한 갑판용과 바다물에 직접 닿는 밑판도 다듬었다. 뗏목 작업에 동원되지 않은 대원들은 양식 조달에 나섰다. 틈틈이 바닷가에 나가 굴이나 조개를 따는가하면 밀림에 들어가 먹을 수있는 작은 종려나무 열매를 주웠다. 그리고 때로는 토끼나 사슴같은 작은 동물도 사냥해왔다. 일부 대원은 아우트 부족 촌락에 잠입하여 옥수수나 콩, 호박을 약탈해왔다. 뗏목을 만드는 동안 대원들은 모두 4차례나 식량 조달작전을 벌려 무려 100부셀 이상의 옥수수와 콩을 조달했다.
탐험대가 바닷가에 머무는 동안 토착민들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토착민들은 슾지 주변의 갈대 숲이나 나무사이에 숨어있다가 화살을 쏘아댔다. 엄폐물이 전혀없는 바닷가에서 굴을 따던 대원이 토착민들의 화살을 맞고 사망했다. 이들의 활솜씨는 무척 정교하고 화살은 강력했다. 병사들의 가죽 갑옷도 뚫을 정도였다. 두차례의 토착민 공격으로 모두 8명의 대원이 뗏목을 타지못했다.
33피트 길이 뗏목 5척을 완성
뗏목의 길이는 30내지 32피트로 설계되었다. 잡아먹은 말의 꼬리나 갈기를 질긴 나무껍질과 섞어 꼬운 가는 밧줄로 나무 판자 19쪽을 연결하여 갑판을 만들었다. 물이 흘러들지않도록 연결부분은 종려나무를 짛이겨 멧밥을 만들어 메웠다. 그리고 그리스 출신 도로테오 테오도로(Doroteo Teodero)의 제안으로 소나무 진으로 역청을 만들어 발랐다.
이렇게 만든 배의 무게는 15톤. 뗏목 한척에 50명의 대원과 식량과 식수, 옷가지등 5톤을 실으면 양편 뱃전에 약 반 피트가 물밖으로 나왔다. 대원들은 입고있던 셔츠를연결하여 돛을 만들어 돛대에 달았다. 닻줄은 말꼬리와 갈기 그리고 나무껍질로 만들었다. 이 지역에서 보기힘든 커다란 돌은 바닷가 자갈 밭에서 어렵사리 구하여 자갈을 더 보태 닻으로 삼았다.식수를 담을 옹기를 구울 점토는 인근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 근처에 있는 토질은 모두 모래가 섞여있어 옹기를 굽기에는적합하지 않았다. 대원들은 잡아먹은 말의 다리가죽으로 물주머니를 만들었다.
셔츠로 돛을 만들고 ,말다리가죽은 물주머니
뗏목을 만들기 시작한 지 47일만인 9월20일 5척의 뗏목이 완성되었다. 다음날 총독은 물살이 깊은 바닷가로 뗏목을 옮겼다. 5척의 뗏목에는 식수를 넣은 말가죽 주머니, 옥수수와 콩,그리고 약간의 마른 말고기를 실었다. 대원들은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말들의 넋을 기려 뗏목을 만들고 말을 희생했던 작은 바닷가 만을 “말들의 만”이라 이름짓고 추념했다. 항해사는 이곳은 총독이 처음 상륙했던 사라토사 만의 임시 정착지 “십자가”에서 약 280 리그 즉 840마일 거리라고 추산했다. 11년 후 플로리다 총독이 된 헤르난도 소토(Hernando Soto)는 이곳에서 불타다만 숫덩이,바닷물에 탈색된 말의 두개골, 불길에 끄른 돌덩이를 발견했다.
(필자 주: 1리그는 3마일 거리)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