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감사기도에 절대자는 ‘풍요의 땅’ 신천지로 응답했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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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전 절대자에게 감사기도 바치다 
플리머스항을 출항한 지 66일만에 메이플라워 호는 육지를 지났다. 그간 거친 파도에 시달리던 승객들은 마침내 순풍에 고요한 바다를 지나며 선실에서 편안한 새벽잠을 즐겼다. 벌써 11월의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메이플라워는 시속 2마일로 북미대륙 오늘의 메사추세츠 만 인근 ‘대구의 만’ (Cape Cod 에 이르렀다. 갑판을 지키던 선원이 “육지다!”하고 외치는 소리에 선실에서 새벽잠을 즐기던 이주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침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바다며 희미하게 보이는 육지며 모든 것이 붉게 물들었다. 근 2개월이상 파도와 폭풍우에 시달리며 항로를 이탈했던 메이플라워의 102명의 승객과 30여명의 선원들은 예정보다 늦은 66일만에 3,200마일의 대서양을 건너 신천지 육지를 바라보며 환호했다. 잠시후 35명의 청교도와 67명이 이방인, 그리고 30여명의 선원들은 지도자 윌리암 브루스터의 인도로 선실에 모여 무사히 너른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까지 인도해 주신 절대자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이들은 특히 “비록 시속 2마일의 낡은 화물선이지만 이주자들을 무사히 대서양 건너 신대륙까지 인도한 메이플라워 호를 주심에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돛대가 부러지고 갑판이 파손되었어도 침몰하지 않고 무사히 대서양을 건너게 해주심”을 감사했다. 또한 이들은 폭풍우에 2사람의 인명피해가 있었지만 새생명 1명이 태어났음도 감사했다. 그리고 “침몰직전의 위기에도 절대자에 의지한 채 아무도 되돌아가자”고 주장한 사람이 없었음”에도 감사했다.

메이플라워 계약서 작성한 후 ‘대구의 만’에 정착
‘대구의 만’을 지나 메이플라워 호는 이미 출항전 정착허가를 받은 288마일 거리의 허드슨 (Hudson)강 하구로 선수를 돌렸다. 그러나 ‘대구의 만’과 낸터 컷 섬사이는 수심이 너무 낮아 운항이 불가능했다. 근 2일간 메이플라워는 허드슨 강하구로 운항하려 애썼지만 마침 불어오는 북서풍으로 더 이상 운항은 불가했다.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차가웠다.  브루스터와 블래드포드 등 몇몇 지도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메사추세츠의 ‘대구의 ‘만에 있는 갈고리처럼 튀어나온 프로빈스타운에 정착하기로했다. 일부 청교도들은 정착허가도 없이 상륙하는 것을 두려워했으나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 상륙전 승객 41명은 선실에 모여 ‘메이플라워 계약’으로 알려진 헌장을 작성했다. 윌리암 블래드포드가 기초한 200자 분량의 ‘메이플라워 계약’을 토의한 후 41명 전원이 서명했다. 당시 여성은 투표권이 없었다. 모든 정착촌의 의사결정은 다수결 투표로 정하고 지도자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기로 의결했다. 정착촌의 초대 지도자인 거버너어 (Governor)로 존 카아버(John Carver: c1576- 1621.4.5)가 선출됐다. 존 카아버는 일찌기 영국을 탈출하여 네델란드 라이던에서 생활하며 망명온 영국의 청교도인들을 지도했다.
그러나 초대 지도자 존 카아버는 신천지의 혹심한 겨울을 나며 그 후유증으로 다음해 4월 4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프리머스 정착촌 포트힐 (Fort Hill)에 마련된 공동묘지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윌리암 블래드포드 (c1590-1657.4.)가 2대 지도자로 선임됐다. 그러나 메이플라워 호가 닻을 내리기 전 윌리암과 수산나 화이트 부부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의 이름을 필그림의 라틴 말인 페레그린 (Peregrine)이라고 지었다. 
마침 11월 10일은 일요일이었다. 일행은 선실에서 다시 한번 절대자에게 바치는 감사예배를 드린 후 배에서 하루를 보냈다. 정착허가증이 없는 일부 승객들은 상륙을 두려워했다. 청교도들은11월 11일 정착지를 찾아 연안일대를 탐사키로했다. 탐사를 위해 우선 영국을 출항할 때 분해한 후 싣고 온  보우트 2척을 조립하기위해 연안에 상륙했다.

탐사용 보우트 2척 조립위해 상륙
연안에 상륙한 이주자들은 감격에 겨워 바닷속의 모래를 한웅큼 집어들어 공중에 던지며 기쁨에 겨워 울부짖었다. 어느 이주자는 바닷가 작은 바위앞에서 무릎을 꿇고 무사히 신대륙에 도착하게 해주신 절대자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아직 인근에 원주민은 눈에 뜨이지않고 바닷바람에 실려온 산야의 냄새는 싱그러웠다. 상륙한 일부 이주자들은 보우트를 조립하는 한편 나머지 이주자들은 프로빈스타운의 연안 서쪽 끝자락 내지에 임시거처를 마련했다. 그리고 여인네와 어린이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선실에 남아있었다.
닻을 내린 지 4일 후인 11월 15일 이주자들은 처음으로 인근해역 탐사에 나섰다. 근 3개월만의 지리한 항해끝에 싱그러운 육지를 밟은 지도 4일이 지났다. 청교도가 아닌 ‘이방인’ 소속이며 영국 퇴역 군인인 마일즈 스탠디쉬 (Myles Standish: c 1584 -1656.10.3)는 기력을 회복한 젊고 건장한 젊은이 16명으로 탐사대를 조직하고 연안일대 탐사에 나섰다. 화승총과 권총, 그리고 단도나 긴 칼로 무장한 대원들은 만약의 원주민 공격에 대비하여 긴장한 채 연안을  비롯한 인근 내륙을 살폈다.
탐사대원들이 해안너머 내륙으로 잘자란 수풀을 헤치며 얼마간  들어갔다. 원주민들의 경작지와 이미 폐허가 된 원주민 정착지가 보였다. 그리고 정착지를 얼만큼 지나자 무성한 수풀이 보이고 수풀속에 몸을 가린 채 탐사대를 지켜보는 한무리의 원주민들이 보였다. 얼마후 원주민들은 더이상 보이지않자 탐사대는 원주민들이 사라졌을만한 방향을 따라 조심스레 뒤따랐다. 한참을 전진해도 사라진 원주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무성했던 수풀은 사라지고 넓고 평평한 평지가 나왔다. 그리고 몇개의 작은 무덤이 보였다. 반쯤 매장된 무덤에는 성인 백인과 원주민 어린아이의 시신이 보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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