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검은 물이 흐르는 땅 ‘투박’ 수비대장 독화살에 전사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newbeom.JPG

티부론 섬에서 세리 부족과 전투 중 독화살에 부상
벨다레인 사령관은 소노라 일대의 아파치나 피마인들의 동향을 세밀히 정탐하고 또한 인디안 정찰병으로 이들을 정찰하게 한 후 파리라 지사에게 보고하여 소노라 일대의 치안안정에 공헌했다. 벨다레인은 행정과 사법을 함께 관장하는 중령계급의 시장 가브리엘의 딸 마리아 테레사 사이에 딸과 아들을 각각 두었다. 
1750년에 태어난 아들 펠리페는 디 안자 보우티스타를 대부로 하여 영세를 받았다. 1753년 태어난 아들이 사망하고 1759년에는 8살 딸을 잃었다. 그러나 벨다레인 아들중 한 명은 프란시스칸 교단의 투산 선교원에서 사제 생활했다고한다. 
1759년 벨다레인 사령관은 투박 수비대 병사들을 지휘하여 캘리포니아 연안 티부론 (Tibulon) 섬에서 사제들의 선교활동을 방해하는 세리 (Seri)부족 진압에 출동했다. 완강하게 저항하는 세리 부족들과 수비대 병사와 인디안 보조군 연합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수비대 병사들은 낯선 지형에다 식수도 부족하여 얼마간 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세한 화기앞에 세리 전사들은 급기야 많은 전사자를 남기고 후퇴했다. 
한편 숲속에 몸을 가리고 후퇴하던 병사가 날린 화살에 벨다레인 사령관은 부상을 입었다. 부상당한 채 구에바비로 급송한 벨다레인 사령관은 얼마간 쾌차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화살독은 전신으로 퍼지면서 1759년 9월7일 벨다레인 사령관은 혼미속에 전사했다. 향년 40이 채 못된 나이로 소노라 최북단 변방을 달리된 역전의 용사는 세리 부족의 독화살에 어이없게 이승을 하직하고 구에바비 선교원에 영원히 잠들었다. 
벨다레인 사령관의 어이없는 전사로 프런테라스 수비대의 당년 25세의 중위 디 안자 보우티스타 2세가 투박 수비대의 임시사령관으로 1760년 2월 19일 부임했다. 신임 투박 수비대 사령관 디 안자 2세의 아버지 디안자 1세 는 프런테라스 수비대의 사령관 자격으로 소노라에서 알타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을 개척하는 탐험대의 보급품  운송로를 사전 답사하고 돌아는 도중 아파치의 습격으로 수암카 (Santa Maria Suamca)의 노상에서 전사했다. 디 안자 1세가 사망한 곳에는 이후 테레나테 수비대가 세워졌다. 그가 사망할 당시 4살이던 디 안자 2세는 20년 후 투박 수비대의 사령관 자격으로 240명의 정착민을 이끌고 그의 아버지가 개척하려던 캘리포니아로 가는 ‘황제의 길’을 따라 바다 안개 자욱한 샌프란시스코 만 둔덕에 사상 처음으로 스페인 황제의 깃발을 세워 오늘의 캘리포니아를 이루는 초석을 놓았다. 
                       

<다음호에 계속>

CE07-Lee Bum Yong.jpg

More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