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치동조자 추장의 부인에게 주전자 선물
추장 로사수스가 앞장서고 포카혼타스는 로사수스의 부인과 나란히 로사수스 를 뒤따랐다. 추장의 부인은 이번에 닻을 내린 배에는 먼 나라의 진기한 상품이 많다고 포카혼타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괴물처럼 엄청 큰 배에 로사수스 추장이 올랐다. 로사수스 추장의 부인은 망설이는 포카혼타스에게 배에 오르도록 권했다. 계속 포카혼타스가 배에 오르기를 거부하자 추장의 부인이 먼저 배에 오른 후 계속 권했다. 얼마 후 포카혼타스도 추장의 부인을 뒤따라 배에 올랐다. 사무엘 아르갈 선장이 일행을 환영했다. 그리고 일행에게 진기한 과자와 진기한 음식을 대접했다. 과연 상선은 자신들의 커누에 비하면 규모도 크고 진기한 물품도 많았다. 날이 어둡자 3사람의 내방객은 대포를 다루는 포수의 방에서 잠을 청했다. 날이 밝자 포카혼타스는 로사수스와 그의 부인을 따라 하선하려했다. 그러나 사무엘 아르갈 선장은 포카혼타스의 하선을 막았다. 대신 하선하는 로사수스의 부인에게는 철제 주전자를 선물했다.
포카혼타스가 강제 구금된 사무엘 아르갈 선장의 상선은 일단 제임스타운으로 이동했다. 포카혼타스는 다시 오늘의 리치몬드 (Richmond)근방 작은 마을 헨리코 (Henriko)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포카혼타스는 이 지방 목사 알렉산더 휘타커 (Alexander Whitaker)로부터 영어를 배우고 또한 하느님 말씀과 영국의 풍습을 배웠다. 그리고 얼마 후 포카혼타스는 하느님을 영접하고 레베카 (Rebecca)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받았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포카혼타스는 제임스타운에서 담배농장으로 거부가 된 존 롤프와 결혼했다.(* 물론 결혼전 포카혼타스는 남편과 이혼했다.) 이들의 결혼식에는 포카혼타스의 삼촌이 참석하여 이들의 결혼을 축하했다. 포카혼타스의 납치에 분개했던 포카혼타스의 부친은 제임스타운에서 요구하는 포로가 된 영국인 석방과 더많은 양식 교환 등을 수용하여 오랜만에 양측간에는 긴장을 풀고 화해했다.
원주민 스콴토 납치되어 스페인 노예시장을 떠돌다
당시 뉴 잉글랜드 지역에서 영국의 상선이나 어선들이 원주민을 납치한 후 노예로 매매하여 부를 이루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북미해안을 드나들던 상선들은 상품교역보다 쉽고 편한 노예거래에 더 열중했다. 노예상인 중에서도 제임스타운의 목사아들인 토마스 헌트 (Thomas Hunt: 1598-1655)의 악행은 유명하다. 헌트는 14세때 가족과 함께 제임스타운에 정착했다. 청년 헌트는 그의 아버지 로버트 헌트 목사와 제임스타운에서 군인, 탐험가로, 지도자로 활약하던 존 스미스 (1580.1.6- 1631.6.21)의 친교 덕분으로 20세 때 존 스미스가 운영하는 탐험대의 선박 1척을 지휘하는 선장이 되었다. 존 스미스는 1614년 메인 (Maine)일대와 마사추세트 만 일대를 뉴잉글랜드라고 명명하고 고기잡이와 광물채취에 전념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는 경비와 인력이 많이 소요되었다. 대신 그는 인근 연안을 탐험하며 원주민으로부터 물고기나 비버가죽, 그리고 진기한 물품을 교환하는데 열중했다. 존 스미스는 수달과 비버가죽 11,000개를 장총200여자루와 교환하기도했다.
존 스미스는 배에 상품을 가득 싣고 영국으로 향하면서 친구의 아들 토마스 헌트에게 계속해서 물고기와 비버가죽등 진기한 토속상품을 원주민들로부터 수집하여 선박을 가득 채우라고 당부했다. 스미스 선장이 떠나고 난 후 헌트는 마음을 바꾸어 번잡한 워주민과의 거래대신 당시 뱃사람들에게 인기였던 노예 거래에 마음을 두었다. ‘대구의 만 (Cape Cod)’ 연안을 지나던 헌트 선장은 파투셑 (Patuxet)부족의 마을 연안에 정박했다. 선원들과 헌트 선장은 원주민들이 탐을 내는 도끼나 단도, 그리고 냄비나 주전자같은 조리기구를 보여주며 유혹했다. 그리고 모여든 원주민들에게 갑판에 오르면 더 많은 상품이 있다고 유혹했다. 약 20여명의 호기심 많은 파투셑지역 원주민들이 갑판에 오르자 헌트는 무작정 배를 바다 한가운데로 몰았다. 다시 배가 대구의 만 초입에 이르자 나우셑 (Nauxet)부락에 들어가 같은 방법으로 7명을 더 생포했다. 헌트의 탐욕에 노예가 된 27명의 원주민 중에는 이후 청교도들을 기아에서 구원해준 스콴토 (* 영어로는 Squanto로 불리나 원주민어로는 Tisquantum라고 불림)도 포함되었다. 원주민 27명을 실은 헌트의 배는 스페인의 마랑가(Malanga)항구에 기항했다. 그리고 27명의 케이프 커드 인근 원주민들은 노예시장에서 처분되어 새 주인 밑에서 구차하게 생활했다. 스콴토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생활하던 중 어느 작은 성당 신부의 눈에 띄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실려온 노예임을 알아차린 이 사제는 어렵사리 스콴토를 사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