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북미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탐욕자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newbeom.JPG

전능하신 절대자의 섭리는 정교했다. 땅끝마다 복음을 전하려는 절대자의 의지는 볼품없는 원주민을 노예로 도구삼아 멀고 먼 대서양 건너 땅 끝자락 미지의 땅에 복음을 꽃피웠다. 절대자는 강인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활용하여 신세계 버어지니아 땅끝 마을에 새로운 정착지를 개척한 이후 물고기가 지천인 플리머스 해안에 절대자의 종 청교도들의 생활터전을 마련했다. 한겨울 모든 정착민이 아사의 문턱에서 허우적댈 때 절대자는 일찍이 노예로 선택한 원주민 스콴토를 청교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자신의 정교한 섭리를 펴게했다. 이처럼 절대자는 도구로 삼은  원주민 노예를 통해 땅끝자락 신세계에 복음을 꽃피운 청교도들은 후대에게 귀한 추수감사절을 전해주었다. 오늘도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통해 절대자에게 감사기도를 올린다.

대구의 만 일대 원주민 4만 5천여명 전염병으로 사망
종교의 자유를 찾는 청교도와  일확천금을 꿈꾸는 탐욕스런 모험가 102명이 마사추세트의 물고기 대구가 지천인 ‘대구의 만’에 닻을 내리기 3년전인 1616년부터 1618년까지 대구의 만 연안일대 파투세트(Patuxet)를 비롯한 나우세트 (Nauxet)지역에는 알 수 없는 역병이 돌았다. 하늘이 열린 이래 오늘의 플리머스인 대구의 만 일대에 둥지를 틀고 살아온 왐파노아그 (Wampanoag)부족은 전체 부족 7만여명 중 3분지 2인 4만5천여명이 역병으로 사망하는 참사를 겪었다.
메이플라워 호를 프로빈스타운에 정박한 후 청교도들은 영구적인 정착지를 찾아 인근 연안 탐험에 나섰다. 이후 플리머스 정착촌의 민병대장이 된 모험가 마일즈 스탠디쉬는 16명의 대원과 함께 연안을 탐사하며 돌보는 이 없어 버려진 농경지와 수많은 무덤을 보았다. 이처럼 황폐한 농경지와 무덤은 몇년전 이 지역을 휩쓸고 간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에 의한 전염병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의 만 일대를 휩쓴 전염병으로 67개 부락을 통치하던 왐파노아그 연합부족 국가는 전체 주민 70,000여명중 25,000여 명만이 살아남았다. 이처럼 전사들이 줄어들자 왐파노아그 부족 연합체는 평소 적대시하던 나라가네트 (Narraganett) 부족의 위협을 받게되었다. 상대적으로 더욱 강해진 나라가네트 부족은 왐파노아그의 오사메퀸 대추장 마사소이트 (*Massoit: c1581-1661. 마사소이트는 이름이 아니라 대추장을 이르는 말)에게 조공을 바치고 부하의 예를 갖추라고 위협했다. 나라가네트 부족은 왐파노아그 부족과 닢먹 (Nipmuck), 큐아복(Quabocg), 나사네이(Nashanay)와 함께  알곤퀸(*Algonquin :북미대륙에서 원주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 이 언어를 사용하는 원주민은 대서양 연안과 캐나다의 세인트 로우렌스 강 일대의 내륙과 대 호수 주변에 살았다. 이들은 주로  사냥이나 물고기잡이, 그리고 콩, 옥수수, 호박을 재배했다.) 언어를 사용하는 용맹스럽고 사나운  부족이었다.

전염병과 납치로 원주민 외지인 배척
전염병으로 반 이상의 부족을 잃은 마사소이트 추장은 메이플라워 호가 연안에 정박하자 주술사의 영적인 힘을 빌어 메이플라워와 외지인을  물리치려했다. 그러나 주술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추장 마사소이트는 청교도들과 동맹을 맺어 위협하는 나라가네트 부족을 제압하기로 했다. 당시 청교도들이 정착한 대구의 만 연안 파투세트와 나우세트 지역 주민의 대부분은 이따금 출몰하는 유럽의 외지인을 극도로 혐오했다. 왐파노아그 부족 원주민들은 몇년전 온 부족을 휩쓸고 간 역병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때문이라고 믿었다. 또한 이따금 연안에 나타나 원주민들을 납치해 먼 바다로 나가자 졸지에 가족과 생이별을 한 원주민들은 극도로 외지인들을 저주했다. 실제 청교도들에게 추수감사절을 개최할 수 있게 농작물 재배법을 전수한 원주민 스콴토(Squanto)도 1614년 영국 상선에 의해 납치되어 노예로 전전하다 천행으로 고향에 돌아온 노예였다. 어느  원주민 노파는 아들 3형제가 1614년 영국 상선에  의해 노예로 납치되면서 생이별했다고 울부짖었다. 청교도들이 정착지를  찾아  제2차 탐사에 나섰을 때  나우세트 지역 원주민들이 청교도 탐사대를  공격한 것도 유럽인들의 나우세트 지역 원주민들의 납치와 유럽인들이 전한 역병으로 이웃을 잃은데다 외지인들이 무단으로 저장한 옥수수 씨앗을 도둑질한 때문이었다.
플리머스에 정착촌을 마련한 청교도들과 왐파노아그 (Wampanoag ) 원주민과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주선한 사모세트(Samoset: c1585-1622)는 원래 오늘의 메인 주인 동부 아베나키 (Abenaki) 작은 지역의 추장이었다. 아베나키 부족은 알론퀸 말을 사용하는 부족으로 주로 캐나다 산림지대와 북미대륙의 동부와 동북부 지역인 오늘의 뉴욕 주, 메인 주, 버어몬트, 그리고 뉴햄프셔 지역에 흩어져 살았다. 사모세트가 사는 동부 아베나키 해안에는 물고기를 잡는 유럽의 어선들이 떼로 몰려와 고기를 잡았다. 특히 새로운 해양국가로 발돋움한 영국의 어선들은 연안에 정박하고 어부와 선원들은 인근 해안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며 그물을 던졌다.

어부로부터 영어를 익힌 사모세트 추장
천성이 낙천적인 사모세트 추장은 영국인 어부나 상선의 야영숙소를 드나들며 영국인들이 권하는 맥주도 얻어마시고 영국인들이 건네는 빵이며 통조림을 함께 먹으며 친교를 나누었다. 점차 방문 회수가 늘어나면서 사모세트 추장은 영국인들로부터 배운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몇년간 영국인 숙소를 드나들며 배운 영어는 메이플라워 호가 플리머스에 상륙할 무렵 사모세트의 영어소통 능력은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사모세트의 이같은 영어소통 실력은 인근 원주민들에게 전해졌다.
마침 플리머스의 파투세트 연안에 정박한 메이플라워 선박이 철수하지않고 청교도들이 정착촌을 마련하자 대 추장 마사소이트 (c1580-1661)는 이들과 평화협정을 맺고 공격하는 나라간세트 부족에 대항하기로했다. 이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물을 수소문하여 아바나키 마을로 사모세트를 방문하고 그를 마을로 초빙했다. 한편 이주민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원주민은 사모세트 이외에 1614년 영국상선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1619년 천행으로 고향을 찾은 스콴토가 있었다. 이들 두 사람중에서 오사메퀸 (Ousamequin) 대추장 (마사소이트)은 사모세트와 대전사 호바목(Hobbamock) 등 모두 5명의 전사를 청교도들의 정착촌에 보내 상호 평화조약체결을 타진했다. (*사모세트 추장은 마사소이트 대추장에게 납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다음호에 계속>

CE07-Lee Bum Yong.jpg

More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