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북미주 지형을 바꾼 염장대구와 비버모피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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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허드슨, 1609년 허드슨 만을 발견
헨리 허드슨 (c1565-1611.6.23 실종)은 원래 영국태생이다. 그는 네델란드 동인도회사의 요청으로 1609년 4월6일 동인도회사 소속 ‘반 달 (* Half Moon, 네델란드어로는 ‘할베 마인’)’호를 지휘하여 1524년 이탈리아 항해사 지오바니 다 베라자노(Giovanni da Verrazzano)가 어퍼 (Upper) 뉴욕만을 지났다는 허드슨만을 거쳐 태평양에 이르는 뱃길찾기에 나섰다. 그는 그린랜드를 거쳐 대서양 서안을 탐색한 후 뉴저지 주의 케이프 코드 (Cape Cod)를 발견하고 다시 북상하여 허드슨 강 입구에 들어섰다. 이어 허드슨은 강줄기를 타고 북상하다 다시 내려와 뉴잉글랜드 일대를 탐색했다. 유럽의 옛 중세인들은 이같은 뱃길을 통해 향신료의 땅 아시아에 도착하려 했으나 태평양으로 빠지는 강줄기를 찾는데 실패했다. 그는 허드슨 만에서 150마일 거리에 있는 강을 통해 태평양으로 빠지려고 거대한 하구가 있는 뉴욕의 알바니 (Albany)에 이르렀다. 그러나 허드슨은 태평양으로 빠지는 강을 발견하는데 실패하고 영국을 거쳐 네델란드로 돌아왔다. 그의 뉴욕만 발견이후 허드슨의 이름을 딴 허드슨 만, 허드슨 강, 허드슨 해협이 생겼다. 그러나 1610년 4월17일 허드슨은 디스커버리 호를 타고 다시 북극 뱃길탐험에 나섰다. 이번 탐사에는 영국의 무스커비회사와 5명의 귀족과 13명의 상인들이 후원했다. 특히 무스커비회사는 300파운드의 거금을 후원했다. 출항 2개월이 조금 지나 허드슨과 선원간에는 사소한 식사문제로 불화를 겪었다. 선상반란을 일으킨 선원 11명은 1611년 6월23일 허드슨을 포함하여 몇명의 고위직 선원을 보우트에 강제로 태운 후 망망대해에 버렸다. 이후 그의 생사는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몇 년 후 그의 행적을 쫒던 인사들은 아마도 허드슨 일행이 머물렀을 풍상에 허물어진 낡은 초막을 발견했다. 한편 선상반란을 일으켰던 주모자와 이에 동조했던 선원들은 에스키모인들에 의해 모두 살해당했다고 한다. 
“활 만드는 좋은 나무를 거두는 언덕”은 맨해턴
허드슨 만이 유럽에 소개된 이후 해상무역을 장악한 네델란드인들은 뉴욕의 맨해턴 섬 주변에 모여들어 비버모피 수집에 나섰다. 점차 비버 모피수요가 늘자 네델란드는 재빨리 맨해턴 섬이 있는 뉴욕만에 1624년 서인도회사를 설립했다. 맨해턴은 허드슨에 의해 유럽에 알려졌다. 허드슨은 동인도회사에 보낸 보고서에서 ‘맨해턴 (Manhattan) 섬은 푸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좋은 항만과 아열대성 기후로 농경지로 사용할 너른 땅’이 있다고 했다. 맨해턴 인근의 레나페 (Lenape)부족들은 폭 2.3마일, 길이 13.4마일에 총면적 47만 스퀘어마일의 푸른 섬을 맨해턴이라고 불렀다. 레나페 부족이 부르는 맨해턴의 의미는 이들이 사용하는 알곤퀸어로 ‘활 만들기에 좋은 나무를 구할 수 있는 언덕 ‘이라는 뜻이다. 허드슨 만을 처음 발견한 허드슨의 ‘반 달’호는 1610년 1월 비버모피를 비롯한 신대륙의 특산물을 가득 싣고 돌아왔다.
뉴욕시티에 처음 정착한 백인은 후앙 로드리게스 (Juan Rodriguez). 한겨울  로드리게즈는 산토 도밍고 (*Santo Domingo: 도미니카의 수도)를 떠나 맨해턴에 도착한 후 뉴욕부근에 정착했다. 그는 손수 덫을 놓아 비버를 잡아 모피를 생산하고 원주민들로부터 모피를 거두어 상인들에게 넘겼다.
당시 유럽은 세계 최강국이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쇠퇴하고 해상무역을 독점한 네델란드가 강국으로 떠올랐다. 네델란드 정부는 1618년 허드슨의 보고에 따라 북미대륙 동북부 해안에 함대를 보내 마땅한 정착지를 모색했다. 그리고 맨해턴 일대를 식민지로 가꿀 회사를 모집했다. 많은 회사들이 참여의사를 밝혔지만 니우네델를트 (네델란드식 발음_ New Netherland)회사가 낙점됐다. 그러나 낙점된 니우네델를트 회사는 투자금과 사업의 위험 등을 고려하여 사업을 포기했다. 정부는 대신 서인도회사에 북위 40도와 45도 사이의 북미대륙에 대한 사업권을 주고 뉴네델란드 식민지 건설을 서둘렀다. 서인도회사는 1624년 뉴욕을 중심으로 뉴암스텔담을 세우고 뉴욕주, 뉴저지주, 델라웨어주, 커네티컷주 등을 아우르는 뉴네델란드를 세웠다.
단돈 24달러 가치의 물품을 주고 맨해턴 섬을 사다
1626년 뉴네델란드 초대총독에 부임한 페터 마누이트 (Peter Manuit)는 맨해턴 남단에 해군 포병부대가 상주하는 포트 암스텔담을 세웠다. 그리고 당시 60길더인 2달러에 해당하는 유리구슬, 모포, 주전자, 망치 등 물품을 주고 레나페 원주민들로부터 섬 전체를 사들였다. 토지소유 개념이 유럽인과 전혀 다른 레나페 원주민들은 인간이면 누구든 마음대로 딛고 살아가는 땅을 특정인이 차지한다는 백인들의 소유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백인들이 제시하는 단도, 주전자, 도끼, 유리구슬, 옷감 등 오늘의 1,000달러에 해당하는 물품에 현혹되어 너른 땅을 백인들에게 넘겼다. (*길더 (Guilder)는 17세기 네델란드에서 통용되던 금화로 네델란드어로는 휠런을 영어로는 길더라고 불렀다. 휠런은 100센트에 해당. 당시 24달러는  오늘의 화폐가치로는 1,000달러 에 해당한다.)
뉴암스텔담에 월스트리트가 지난다
월 스트리트 (Wall Street)는 뉴욕시 맨해턴 남부를 지나는 거리이다. 금융기관과 마천루가 늘어선 이 지역은 본래 네델란드와 영국의 식민지 시절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성벽의 네델란드 말인 “Wel” 즉 벽에서 연유한 ‘월 스트리트”라고 불렀다. 월 스트리트는 브로드웨이 (Broadway)의 내리막길에서 금융행정구역과 옛 행정중심가를 지나 사우스까지 이어진다. 월 스트리트는 뉴욕증권거래소가 있는 중심지로서 시간이 가면서 인근 지역까지 아우르는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영향력있는 금융세력을 말할 때 “월 스트리트”라는 말을 사용한다. 실제 NASDAQ, NYSE, AMEX, NYBOT같은 미국의 여러 증권및 기타 거래소는 지금도 맨해턴의 금융행정구역내 월 스트리트에 본사를 두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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