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북미주 지형을 바꾼 염장대구와 비버모피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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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6년 프랑스 측 루이지애너를 영토로 선포
이렇게 지원받은 화력으로 휴론 부족은 샹플렝 호수근처에서 이로쿼이 부족에게 대승했다. 이후 프랑스는 이로쿼이 부족의 원수가 되었다. 이로쿼이 부족은 아카디아 남쪽의 뉴잉글랜드 식민지에서 네델란드와 영국측과 동맹을 맺고  총과 화력을 지원받았다.
1676년 프랑스 탐험가 라 살레 (La Salle)는 동방으로 가는 길을 찾아 미시시피 강을 끼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라 살레는 중국대신 멕시코 만에 도착했다. 그는 미시시피 강 유역을 루이14세의 영토라고 선포하고 일대를 루이지애너라고 불렀다. 
프랑스 정부가 면허를 내준 모피거래협회에 가입하지 못한 불법 사냥꾼들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커누를 타고 숲속을 헤메며 비버사냥을 했다. 그리고 원주민 마을을 돌며 모피를 수집했다. 의외로 불법 사냥꾼 ‘숲속의 질주자’들의 수입은 좋았다. 많은 농촌의 청년들이 숲속의 질주자를 따라 곡괭이와 낫같은 농기구를 버리고 사냥길에 올랐다. 프랑스 정착민들은 일정한 장소에 머물면서 원주민들로부터 모피를 수집했다. 이들은 처음 세인트 로렌스 강변에서 서쪽으로는 위니펙 (Winnipeg)호수까지, 남으로는 미시시피 강변을 따라 교역소를 연결시켰다.

1774년 프랑스 사냥꾼 로키산맥에 진출
한편 영국측도 더 많은 모피수집에 혈안이 되었다. 프랑스 모피 수집상들은 1774년 마침내 로키산맥까지 진출해 인근 원주민들로부터 모피를 수집했다. 당시 교역에 참여한 사냥꾼들이 최초로 로키산맥에 발을 디딘 유럽인이다.
1628년 모피전매권을 국왕으로부터 받은 전매회사는 뉴프랑스에 400명의 정착민을 이주시키려 프랑스를 떠나 퀴벡으로 향했다. 프랑스 측 선박이 세인트 로렌스 만에 들어서자 영국의 데이비드 커크 형제들이 지휘하는 영국측 함선이 프랑스 측 선박과 이주자들을 납치했다. 이듬해 커크 형제는 퀴벡측에 항복을 권유하자 샹플렝 총독은 영국측에 항복했다. 영국 측은 3년간 퀴벡을 통치했다. 
1660년경부터 퀴벡은 뉴프랑스의 중심도시로 성장했다. 1700년 퀴벡의 인구는 무려 2,000명이 되었다. 세인트  로렌스 강이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언덕에 자리한 성당의 뾰족한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마을에 골고루 퍼졌다. 또한 번화한 길 양편에는 웅장한 관공서가 자리잡았다. 건물 후면에는 도시를 방어하는 성채가 늘어섰고 해안가 부두에는 창고, 상점, 민간인 가옥이 줄지어섰다. 항구에는 프랑스 경비정이 정박해 있고 그 사이로 어선이며 커누들이 부지런히 오갔다.
저지대 마을에는 노동자, 기술공 특히 목수나 석공, 대장장이, 정원사, 재봉사, 하인들이 모여살았다. 하층 계급의 가옥은 이 지역 특산인 검은 돌로 지었다. 지붕은 짚으로 가렸다. 이곳에서는 화재예방을 위해 정기적으로 굴뚝을 청소했다. 그리고 건초와 마른 사료는 집안에 두지못하게 법령으로 규제했다. 
몬트리올은 본래 원주민들에게 가톨릭을 전교하기위해 마련된 마을이었다. 뉴 프랑스 초기에는 이로쿼이 족의 공격에  대비하여 통나무로 겹겹히 울타리를 둘렀다. 그러나 모피교역이 서쪽으로 확장해 오대호까지 이르자 몬트리얼은 자연 모피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영국에 허드슨 만 모피교역을 권유한 프랑스 상인 
헨리 허드슨이 뉴욕만을 찾았을 무렵 라디송 (Pierr Esprit Radisson)은 세인트 로렌스 만을 떠나 허드슨 만으로 향했다. 
프랑스 본토 태생인 라디송은 15세때 뉴프랑스에 정착했다. 그는 뉴프랑스 정착 다음 해 이로쿼이 부족의 포로가 되어 2년간 이들과 어울려 생활하며 친분을 나누었다. 뉴프랑스로 돌아온 라디송은 손위처남 그로세이예르와 함께 그간 친분을 맺은 이로쿼이 부족을 찾아 모피교역에 나섰다. 당시 뉴프랑스는 이로쿼이 부족의 공격으로 사실상 원주민과 모피교역은 중단된 상태였다. 라디송과 그의 처남이 엄청난 양의 모피를 가지고 마을에 나타나자 그는 일약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뉴프랑스 총독은 면허없이 모피교역을 했다고 모피를 전량 압수하고 두사람을 옥에 가두었다. 얼마 후 옥에서 풀려난 라디송은 프랑스의 적인 영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영국 국왕인 제임스 1세에게 허드슨 만 일대의 모피교역 현황을 알리고 영국을 위해 모피교역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제임스 1세의 도움으로 거상을 소개받은 라디송은 거상과 함께 허드슨 만에 나타났다. 얼마후 라디송과 거상은 많은 양의 모피를 싣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이에 영향을 받은 많은 상인들이 모피교역을 위해 허드슨 베이 컴퍼니(Hudson Bay Company)를 결성했다. 제임스 1세는 허드슨 만으로 유입되는 강 유역의 모피전매권을 허드슨 베이회사에 주었다. 당시 프랑스는 주로 내륙에서 원주민과 모피교역을 하는 반면 영국은 교역소를 중심으로 원주민과 교역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영국측도 모피를 찾아 내륙을 누볐다.
1600년대가 시작되면서 대영제국을 비롯한 프랑스 등 유럽의 열강들은 북미주에 경쟁적으로 식민지 건설에 나섰다. 프랑스 측은 세인트 로렌스만과 아카디아, 카리브 해에 식민지를 세웠다. 대영제국은 1585년 버어지니아에 식민지를 건설하려했으나 월터 랠레이 (Walter Raleigh)경은 혹한과 원주민 저항으로 실패했다. 1607년 영국은 버어지니아에 제임스타운이라는 식민지를 건설하고 원주민으로부터 담배재배법을 배운 선장 존 스미스 (John Smith)에 의해 담배를 재배하여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수출했다.                    

<다음호에 계속>CE07-Lee Bum Yon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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