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비버모피는 원주민을 파멸시켰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더 많은 비버모피 확보하려 타부족 영토 침범
뉴펀드랜드를 찾은 유럽의 어부들에 의해 부드러운 황금 비버 모피는 급속도로 유럽사회에 퍼졌다. 부드럽고 고운 황금빛 모피는 특히 프랑스인들의 아낌을 받았다. 특히 귀족들이 좋아했다. 탐욕의 화신 유럽인들은 더 많은 비버모피가 있는 사냥터를 찾아 내륙으로 흘러들고 원주민들은 유럽인들과 더 많은 상품거래를 위해 해변으로 몰려들었다. 이제 순박함을 버리고 탐욕에 젖은 원주민들은 비버 모피를 찾아 타 부족의 영토를 침범하면서 원주민 사이에는 뺏고 빼앗기는 잔인한 살륙전이 끊이지않았다. 비버모피를 독차지하기위해 1628년부터 1701년까지 계속된 속칭 비버전쟁 (Beaber Wars)은 북미대륙의 원주민 생태계와 원주민들의 영토를 바꾸어놓을 정도로 잔인했다. 이후 사가들은 이 전쟁을 이로쿼이 전쟁, 또는 프랑스와 이로쿼이전쟁이라고 불렀다. 이 전쟁은 세인트 로렌스강 계곡과 온타리오의 5대호 인근지역에서 이로쿼이 부족이 휴론 (Huron)족과 북부지역 거주 알곤퀸 부족과 프랑스연맹에 대항해 벌어진 전쟁이다.
네델란드와 영국측과 프랑스측 부족 의 대결
이로쿼이 부족은 캐나다를 중심으로 북미주 일대에 거주하는 이로쿼이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집단이다. 이들은 카이유가(Cayuga), 체로키(Cherokee), 휴론(Huron), 모호크(Mohawk), 오네이다(Oneida), 세네카(Seneca), 투스카로라(Tuscarora)같은 소부족들의 연맹이다. 이로쿼이 연맹은 다섯 부족연합, 또는 여섯부족 연합이라고 한다. 연맹에 속한 다섯부족은 모호크 족. 원주민 말로 ‘부싯돌의 사람’이라는 카니엔카하카라고 부른다. 다음은 ‘세워진 돌같은 사람’이라는 유카족, 그리고 세네카족 등 5개부족연맹이다. 이후 ‘대마를 채집하는 사람들’이라는 투스카로라족이 6번째 동맹부족이 되었다. 비버전쟁은 유럽인들과 비버 등 신천지 물품교역을 독점하려는 이로쿼이족들과 이를 후원하는 영국과 네델란드가 한편이 된 소규모 국제전으로 거의 동족말살을 가져온 잔인한 전쟁이었다. 근 반세기에 걸친 전쟁으로 휴론부족, 웬다트, 에리, 모히칸 등 다수의 부족들이 패퇴하여 북부 알곤퀸 부족에 흡수되거나 스며들고 또 사망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로쿼이 부족들은 샹프렝 호수 동쪽 온타리오(Ontario) 연안을 따라 휴론(Huron) 강의 조오지 (George)호수와 세인트 로렌스 강어귀 근방에 살았다. 이로쿼이안 부족 연맹은 네델란드와 영국의 지원을 받아 이들과 깊은 교역관계를 맺는 반면 왐파노아그, 델라웨어, 나라간세트같이 알곤퀸 언어를 구사하는 부족들은 휴론 (*Huron 부족은 심코 <Simcoe>호수와 조오지안 만 동쪽과 휴론만과 온타리오 호수 근방에 사는 인구 30,000여명의 부족)부족과 함께 프랑스의 지원을 받으며 프랑스와 교역했다.
이로쿼이 연맹은 몇몇 규모가 큰 모히칸같은 부족과 온타리오, 캐나다, 뉴욕주의 서쪽과 북동쪽 오하이오에 사는 프랑스가 중립지대 부족이라고 부르는 부족을 비롯하여 에리 (Erie), 서스퀘하나녹 부족과 북부 알곤퀸족을 전 부족을 말살할 정도로 사나웠다. 이로쿼이 부족연맹은 점령한 지역을 새로운 사냥터로 사용했다. 이로써 북미대륙에 사는 원주민 분포도는 새로 그려야 했다. 이로쿼이는 부족간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뉴잉글랜드 지역을 비롯하여 오하이오 강 유역의 너른 땅을 사냥터로 얻게되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으로 이로쿼이 연맹뿐만 아니라 알곤퀸 부족연맹도 큰 손실을 입었다.
1664년 영국 맨해턴의 뉴암스텔담 점령
1664년 영국이 암스텔담 요새와 맨해턴 섬에 있는 뉴 암스텔담을 점령하면서 이로쿼이는 그간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교역을 하던 네델란드를 잃었다. 프랑스는 전쟁중 이로쿼이부족과 새로운 동맹관계를 맺으려 노력했으나 이로쿼이는 프랑스의 유혹을 과감히 거절하고 18세기까지 영국편에 서서 프랑스에 맞섰다.
프랑스가 1754년 북아메리카에서 영국에 의해 완전 추방되자 이로쿼이 부족은 영국측과 함께 이를 지켜보고 기뻐했다. 지리한 근 80여년에 걸친 살육전이 끝나자 남은 것은 엄청나게 줄어든 비버의 개체수와 황폐화된 비버의 생활터전이었다. 비버와 마찬가지로 원주민도 많은 생명을 잃었다. 그리고 비버들의 생활터전인 댐이나 강, 호수가 원형을 잃으면서 자연환경에도 심한 영향을 가져와 일부지역에는 가뭄까지 들었다.
프랑스가 지원하는 알곤퀸 부족의 패망
뉴펀드랜드 연안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은 처음 마주한 캐나다 원주민들인 퍼스트네이션과 세인트 로렌스 강변에서 비버모피와 물고기와 유럽인들이 들고온 금속제칼이나 도끼 등 공작품과 물물교환을 했다. 까르띠에는 로렌스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이로쿼이 부족과도 상면하고 몇개 마을을 점령한 후 요새화하고 살아가는 스타다코나와 호첼라가 (Hochelaga)부족도 만났다. 그리고 그는 부족간의 전투에도 참여하여 화승총의 위력을 처음으로 원주민에게 보였다. 그러나 유럽의 혼돈으로 프랑스의 캐나다 식민지화는 퀴벡에 정착지를 마련한 1608년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지못했다.
프랑스가 다시 세인트 로렌스 강에 나타났을 때 스타다코나와 호첼라가는 전쟁으로 완전 황폐화되어 있었다. 아무도 살지않는 빈 땅은 일부 이로쿼이족과 휴론족의 사냥터로 변해있었다. 이곳을 찾은 프랑스의 탐험가들은 모호크 족들이 로렌스 강변에 사는 이로쿼이 부족을 내몰았을 것으로 추측했다.
1603년 생프렝이 이로쿼이족에 대항하여 동맹을 이루기 전에는 프랑스는 이들에게 화승총을 제공하는데는 별다른 제한이 없었다. 당시 북부지역 원주민들은 유럽 측과 값 비싼 모피를 활발하게 교환했다. 대신 이로쿼이 부족은 북부지역 원주민의 교역을 방해했다.
1609년 샹프렝과 동맹관계인 휴론과 알곤퀸 족은 샹프렝 호수근방에서 모호크 족과 전투를 벌였다. 이때 샹프렝은 화승총을 정조준하여 가느다란 나무토막을 정교하게 엮은 갑옷으로 무장한 모호크 족 추장 2명을 단 한방으로 즉사시켰다. 이에 놀란 모호크 족들은 부산하게 도망쳤다.
1610년 샹프렝은 프랑스 동료들과 알곤퀸과 휴론 부족들을 도와 공격해오는 대규모 이로쿼이 부족을 맞아 이를 격파했다. 또한 1615년에는 휴론 족과 연합하여 오늘의 뉴욕의 온타리오 호수의 오논다가 한 가운데에 있는 이로쿼이 마을을 점거했다. 그러나 이로쿼이 족의 반격으로 결국 실패하고 이 전투에서 샹플렝도 부상을 입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