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24세에 투박요새 사령관이 되다
마침 사릭 마을과 구에바비 그리고 투마카코리 일대의 선교원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살던 피마부족의 반란이 일었다. 이들의 대규모 저항에 맞서 1752년 산 이그나시오 투박 마을에 기마병과 보병 51명이 상주하는 투박 수비대가 세워졌다. 후앙 토마스 벨레데레인 사령관 (1718.12.20~1759.9.10)은 티부론 (Tiburon) 섬의 세리 부족과 전투중 세리 부족의 독화살을 맞고 1759년 9월10일 전사했다. 공석이 된 투박 요새 사령관직은 1760년 2월 10일 디 안자 2세가 대위로 진급하면서 디 안자는 24세 나이로 투박요새 사령관이 되었다. 본래 산타크루즈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황량한 소노라 평원에는 구에바비, 투마카코리, 그리고 투박같은 원주민 마을이 수천년간 자리했다. 조상 전래의 생활 풍습을 고집하는 원주민들은 외지에서 나타난 사제들에게 좀체 마음의 문을 여는데 인색했다. 다행히 바하캘리포니아에서 잠시 선교원을 개설했던 예수회 소속 에우제비오 키노 신부가 금단의 땅으로 알려진 소노라 일대에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1687년 발을 디디면서 서서히 굳게 잠긴 빗장을 거두었다. 소노라의 돌로레스에 처음 정착한 키노 신부는 이어 구에바비등 인근 마을에 선교원을 세우면서 점차 스페인의 정착마을도 주위에 자리잡았다.
금단의 땅 소노라에 키노신부가 선교원 세우다
(*소노라 지역: 이 지역은 1824년 멕시코에 의해 소노라 (Sonora)주가 되었다. 소노라 주는 주로 멕시코 북서부 지역을 지칭하며 면적은 179,355km2. 동쪽으로는 치와와의 거친 사막지대가 펼쳐져있고 북서쪽은 바하캘리포니아 반도 남쪽에 시나로아 지역, 서쪽은 캘리포니아 만, 북쪽지역은 미 연방의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주가 경계를 이룬다.)
산타 크루즈 강변을 끼고 농사짓는 피마 부족을 약탈하려 약탈을 주업으로 삼는 아파치들의 횡포는 끝이 없었다. 이들의 만행으로 좀체 스페인 이주민들은 정착촌을 형성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인근 지역에서 노다지가 하나, 둘 발견되면서 스페인 이주민들이 새로 생겨난 선교원을 중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키노 신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점차 원주민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 키노신부가 1687년부터 1711년 선종할 때까지 많은 원주민들이 하느님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교원을 중심으로 정착촌이 들어섰다. 그러나 키노 신부조차 콜로라도 강 건너 알타캘리포니아까지는 진출하지못했다. 다만 키노 신부는 ‘악마의 길’이라는 험로 디아블로를 통해 알타캘리포니아에 이르는 육로는 개척했다.
젊은 나이에 투박요새사령관이 된 디 안자는 전임 벨데레인 사령관의 저택을 구입했다. 벨데레인 전임 사령관의 유족으로는 이후 사제가 된 프란시스코와 그의 유복자로 1750년 태어난 후앙 펠립페 벨데레인과 딸과 미망인이 있었다. 이후 펠립페는 1771년 프론테라스 요새의 중위가 되었다.
어머니 별세 후 1761년 결혼하다
디 안자는 홀로 사는 어머니 마리아 로사를 투박수비대 근방에 있는 새로 구입한 자택으로 모셔왔다. 그러나 마리아 로사는 이사온 지 얼마 안되어 건강 악화로 1760년 10월 4일 63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별세로 심적 고통을 당한 디 안자는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1761년 상부로부터 결혼 허락을 받은 디 안자는 마침 소노라 일대에서 바스크 부족 출신 기업가로 명성을 날리던 기업가의 딸 마리아 페레즈 세라노 (Maria Perez Serrano)에게 마음을 두었다. 디 안자는 아리즈페 지역에서 사목중인 그녀의 오빠 조세프 마뉴엘 이아즈 델 까르피오 (del Carpio) 사제를 통해 세라노에게 청혼했다. 두 사람의 혼배성사는 1761년 6월24일 그에게 첫번째 영세를 준 카를로스 디 로하스 신부가 아리즈페 인근 성당에서 집전했다.
결혼 후에도 디 안자는 언제고 출몰하는 아파치를 따라 전방을 달렸다. 그는 병사들이 언제나 지치지않은 말을 탈 수있도록 인근 목장을 통해 좋은 말을 조달했다. 그가 투박수비대 사령관으로 복무하는 동안 투박요새의 기마병들은 인근 요새에서 가장 말을 잘달리는 기마병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디 안자는 또한 수비대 내의 매점에 인근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장병들에게 물건을 제공하여 병사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당시 그가 제공하는 물품가격은 도저히 주변에서는 따를 수 없었다. 디 안자는 또한 오파타 (Opata) 원주민으로 구성된 외인 부대를 세리부족이나 아파치 부족과 전투시 정찰과 작전에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그들의 공로가 작전에 주효했을 시는 칭찬과 포상도 아끼지않았다. 실제 이들의 공로를 감안하여 얼마후 외인부대의 보조병을 과감히 증원했다.
디 안자가 사령관으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소노라 일대의 지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때문이다. 1768년 젊은 투박사령관 임무로 마침 캘리포니아 만 일대 해안의 저항하는 원주민을 진압하려 도밍고 엘리존도 (Domingo Elizondo) 대령의 정규군과 합동작전을 폈다. 이때 도밍고 대령은 디 안자 사령관이 광활한 지역의 지형을 소상히 꾀뚫고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병사들과 함께 너른 평원을 말을 타고 달리며 아파치를 비롯한 저항하는 원주민을 추격하며 살아온 디 안자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