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아리조나'지명을 전 미국에 알린 '디 안자'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2천여 반란병, 패전후 산 정상으로 퇴각
결박된 2명의 포로들은 이미 포박된 채 한편에서 감시를 받고있는 포로들과 함께 수용되었다. 날이 완전히 밝자 반란의 수괴 돈 루이스 오아시피카기구아 (Oacpicagigua)는 피메리아 알타의 피티퀴토 (Ptiquito) 마을출신 돈 루이스 총대장의 아들 시프리아노 (Cipriano)와 2천여 반란군도 산등성이로 황급히 퇴각했다. 민병대장 우레아와 폰테스 정규군 중위는 피마인들과 소통이 자유로운 모라가와 함께 하산한 반란병의 수괴 루이스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마주했다. 그리고 두사람은 반란의 수괴 루이스에게 황제의 이름으로 훈계하고 자애로운 황제의 이름으로 평화롭게 후퇴하면 사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반란군의 수괴 루이스는 우레아가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하며 이미 투부타마 강변의 너른 들판은 이미 스페인 정착민이 차지하여 자신들은 농사지을 땅을 모두 잃었다고 하산을 거부했다. 우레아 일행은 철수하는 길에 미리 매복했던 피마 반란군과 다시 교전했다. 이번에도 화승총으로 무장한 우레아와 폰테스의 정규군에게 반란군측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후퇴했다. 이번 교전에서 반란군 수괴 루이스의 아들 시프리아노와 다른 두 고급 간부 등 3명의 지휘관을 잃었다. 반란군측은 이들 지휘관들의 전사를 애통해하고 7마리의 말과 침구 등 많은 장비를 남겨둔 채 서둘러 후퇴했다. 우레아와 폰테스의 진압군은 이들이 남기고 간 말과 전리품을 수습하고 50 리이그나 되는 먼 거리를 서둘러 행진했다. 그리고 1월6일 시쿠리수타 (Sicurisuta)를 지나 출전 9일만인 1월11일 출발했던 산이그나시오로 돌아왔다.
‘샘’이 있는 마을에 목장을 개설한 우레아
고향땅으로 돌아온 베르나르도 우레아는 얼마후 오늘의 노갈레스와 구에바비에서 15마일 그리고 투마카코리에서 남서쪽으로 40마일 지점에 아리조나라는 이름의 목장을 세웠다. 그 무렵 디 안자 사령관은 병사들과 함께 아피치들과 연일 전쟁을 치뤘다. 디 안자는 틈틈이 짬을 내어 구에바비, 산 마테오, 시쿠리수타와 소포리 지역에 직접 목장을 세우고 운영했다. 사막이나 들에서 사냥이 주업인 파파고 인들은 우레아가 목장을 세운 마을을 ‘작은 샘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ALeh-zon’, 또는 ‘Ali-Shonak’이라고 불렀다. 우레아는 이같은 파파고 인디안들의 말에 따라 목장 입구에 아리조나 목장 (Arizona ranch)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1736년 우레아가 목장을 세운지 1년정도 지나서 우레아의 목장에서 약 15마일 정도 거리의 야산에서 은괴가 우연히 발견됐다. 야퀴이 (Yaqui) 인디안 안토니오 시라무네아 (Siramunea)는 본래 땅을 뒤져 일확천금을 노리던 원주민이었다. 시라무네아는 그날도 곡괭이 한자루만 어깨에 둘러메고 우레아의 목장 주변 야산을 뒤졌다. 10월말 아리조나 일대의 해는 짧았다. 그날도 빈손으로 힘겹게 터벅거리며 하산하던 시라무네아는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힘없이 옷에 묻은 흙을 털던 야퀴이인은 그의 발걸음을 잡은 물체를 내려다보다 깜작 놀랐다. 땅에 조금 모습을 들어낸 큼지막한 돌덩이는 저녁 햇살에 돌덩이 일부가 번쩍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은괴였다. 서둘러 흙에 묻힌 거대한 은괴를 힘겹게 들고 마을에 이르자 이같은 은괴사건은 당장 온 동네에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미친듯 산등성이로 몰려들었다.
아리조나 목장 야산에서 은괴가 발견
날이 새기 무섭게 온 마을 사람들,아니 먼지방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어떤 노다지꾼은 무려 2,500파운드나 되는 은괴를 파내기도했다.이같은 은괴소동은 곧 행정당국에까지 전해졌다.
프론테라스 수비대사령관겸 사법권을 행사하는 시장을 겸한 디안자 1세는 20여명의 병사를 대동하고 곧 소문의 진원지인 구에바비 선교원 인근에 있는 아리조나 목장 근방 프란차스 디 플라타 (Planchas de Plata) 은괴소동의 현장으로 달려왔다.디 안자는 현장을 보존하기위해 주위를 병사들이로 하여금 둘러싼 후 소지한 은괴를 일단 압수했다.그리고 이미 집에 보관한 은괴도 압수했다.정확히 누구의 소유인가가 판명될 때 까지 현장에서 발견된 은괴는 모두 압류했다. 스페인 법률에 따르면 지하에 매장된 광물은 황제의 소유였다.그리고 혹시 이곳에서 발굴한 은괴가 불법으로 채굴한 후 이곳 산등성이에 숨겨놓았을 수있다고 보고 모든 의문이 해소될 때까지 채굴한 은괴를 압류했다. 그후 3년간의 재판끝에 야퀴인 시라메네아등 노다지꾼이 발굴한 은괴는 모두 발굴자의 몫으로 확인되었다.
<다음호에 게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