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4년 2월17일 목요일 (출발 41일째)
날이 밝자 서서히 서광이 보이는 듯했다. 비록 갈증과 기아로 7마리의 가축을 잃었지만 살아남은 가축은 점차 생기를 되찾았다. 중간 우물에서 디 안자 사령관은 둘로 나누었던 대원들을 다시 하나로 꾸렸다. 가축들도 넉넉한 식수와 잘 자란 목초를 마음껏 뜯는 사이 병사들은 다시 몇마일 더 전진했다. 일부 대원들은 다시 중간샘을 떠난 후 가축이나 말, 노새가 죽어버리면 어쩌나하고 두려워했지만 디 안자는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날도 디 안자는 가축 한 마리를 잃었다.
1774년 2월18일 금요일부터 2월19일 토요일 (출발 42일부터 43일)
남겨두고 온 화물을 되찾기위해 엘 카리잘(El Carrizal)에서 엘 로사리오 (El Rosario)의 우물까지 되돌아갔다. 토요일 디 안자와 가르세 신부가 포함된 제 1진은 떠난 지 일주일 후, 콜로라도 강을 건넌 지 10일만에 알타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그간 온갖 풍상에 시달리며 군안생활을 한 디 안자는 이러한 시련쯤은 극복할 수있었다.
1774년 2월20일부터 3월1일까지 1774년 2월20일 일요일부터 2월21일 월요일까지 (출발 44일에서 45일까지)
되돌아온 탐험대원들이 궁금해서인 지 유마인들이 야영장으로 몰려들었다. 하루전 디 안자 사령관은 인편을 보내 팔마 추장을 청했다. 마침 팔마 추장이 출타중이라 부추장이 대신 찾았다. 디 안자는 부추장에게 노새 두 마리를 잃었다고 알렸다. 부추장은 그중 한 마리를 찾아주었다. 그리고 찾지못한 노새는 퀴퀴마 (Quiquima)부족들이 잡아먹었다고 말했다. (* Quiquima 원주민들은 콜로라도 강 하류에 사는 원주민들) 퀴퀴마 부족은 노새를 잡아먹으려 흠쳤음이 분명했다. 젊은 부추장은 이들을 상대로 범인을 잡아들이기는 불가능했다. 대신 부추장은 범인으로 지목된 원주민의 부인을 처형했다. 디 안자는 다시한번 문명세계와 야만인 세계를 체험했다.
1774년 2월22일 화요일부터 2월24일 목요일까지 (투박 출발 46일부터 48일까지)
이틀간 라스 안구시타스에 머문 후 노새 등에 다시 화물을 실었다. 산타오라야에 머물면서 말과 노새는 눈에 띄게 생기를 얻었다. 3일 후 팔마 추장이 다수의 전사들 호위를 받으며 찾아왔다. 디 안자와 팔마 추장은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그리고 팔마 추장은 도난당했던 두 마리 노새의 이야기를 듣고 몹시 분개했다. 그리고 탐험대가 사막과 황야를 헤맸다는 이야기를 듣고 몹시 아쉬워했다. 날이 어둡자 두 사람은 모닥불 옆에 앉아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디 안자는 팔마 추장에게 먼 길을 돌아올 때 다시 찾겠다고 말했다. 잠시 일행이 산타오라야에 머무는 동안 가르세 신부는 콜로라도 강 하류를 살펴보겠다고 식량을 실은 노새 몇마리를 끌고 길을 나섰다. 디 안자는 가르세 신부에게 5일간의 시간을 주었다.
1774년 2월25일 금요일부터 3월1일 화요일까지 (출발 49일부터 53일까지)
탐험대는 식수가 넉넉하고 목초가 무성한 산타오라야에 5일간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노새나 말, 가축들은 맑은 물과 잘 자란 목초를 즐기며 잃었던 원기를 충전했다. 대원들이 여유롭게 지내는 동안 수백명의 인근 유마인과 코하트족, 퀴퀴마스족들이 마을을 찾았다. 대원들은 이들과 어울려 여흥을 즐기고 담배를 나누어 피우고 어울려 춤을 추었다. 3명의 원주민과 함께 콜로라도 강 하류를 찾은 가르세 신부는 처음 찾은 원주민들에게 담배와 유리구슬을 나누어주었다. 떠나던 날 가르세 신부는 9마일을 지났다. 가르세 신부는 원주민들과 접촉하며 혹시나 산제로니모 (San Geronimo)의 물웅덩이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다. 그리고 가르세 신부는 노 추장과 콩요리를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 가르세 신부는 뗏목을 타고 동쪽에 있는 제방에 도착했다.
산타 로사 (Santa Rosa)에서 발걸음을 멈춘 가르세 신부를 퀴퀴마스 원주민들이 환영했다. 이보다 먼저 가르세 신부는 코하트 부족을 방문했었다. 가르세 신부는 풍년을 이룬 밀밭을 지나 규모가 제법 큰 원주민 이동 마을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가르세 신부는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다. 그리고 3월1일 산타오라야로 돌아왔다.
가르세 신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디 안자는 9명의 병사와 몇마리의 말과 노새 그리고 화물을 유마 마을에 남겨두고 산 제로니모를 향해 남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디 안자의 이같은 처사에 가 르세 신부는 반대했다. 그러나 디 안자에게 산 제로니모까지 가는 동안 어디에서 식수를 구할 수있느냐하는 어떤 정보도 없었다. 가르세 신부는 디 안자가 돌아올 때는 전 대원이 갈증과 기아로 모두가 탈진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장에는 팔마 추장을 비롯해 3명의 병사와 3명의 노새 몰아꾼과 디 안자의 시동 1명, 2명의 통역이 남았다. 현장의 병사와 떠나는 병사들은 어떻게 서로 연락하며 지낼 수 있나하는 등 제반 문제를 세세히 상의했다. 그리고 비상시 대처할 수 있는 방안도 협의했다. 팔마 추장을 무한 신임하는 디 안자 사령관은 일부 병사들의 거친 행동에 대비해 과묵한 병사를 선발하여 팔마 추장 곁에 남겨두기로 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