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4년 3월 2일부터 3월 22일까지
3월 2일 수요일 (투박 출발 후 54일째)
3월 2일 팔마 추장과 그의 경호 전사들은 디 안자 사령관이 남겨놓은 통역과 병사 등 9명의 잔류 요원과 노새, 말 등 가축을 몰고 콜로라도 강을 향해 떠났다. 오후가 되자 디 안자는 24명의 병사와 원기를 회복한 말과 노새를 몰고 코하트 안내인을 따라 남서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가르세 신부는 디 안자가 가는 곳에대해 일체의 정보도 없었다. 디 안자 사령관은 얼마 전 자신이 몰고온 노새를 완전히 탈진시켰던 사막의 모래둔덕을 피해가면서 혹시나 물 웅덩이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근처 산자락을 더듬었다. 강줄기를 따라 서쪽으로 전진하면서 일행은 비옥한 들판을 지나 포풀라 나무와 버드나무, 몇년 전 내린 비로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제방을 걸었다. 일행은 마을을 지나고 정보도 수집하면서 그날밤 12마일을 걸었다. 그리고 그날밤 건조해서 옥수수가 흉작을 이룬 옥수수밭 근처에서 야영했다. 콜로라도 강 상류와 비교해보면 근처 들판은 비옥해서인지 주민도 제법 많았다. 디 안자는 이곳 주민은 코하트 부족이나 유마 부족처럼 외양이 비슷한데 놀랐다. 심지어 사용하는 언어조차 유사했다. 또한 마을사람들의 체격도 비슷했고 재배하는 곡물도 비슷했다. 그러나 이들은 왜 낯선 부족을 대하듯 싸우고 증오할까 디 안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마을사람들은 지나는 외지인들을 호기심어린 눈길로 궁금해했다. 디 안자는 마을 주민들에게 유마인들과 평화롭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디 안자는 이곳 마을을 ‘설교하는 연못’ 즉 Laguna del Predicator라고 이름지었다.
1774년 2월 3일 목요일부터 3월 6일 일요일까지 (투박 출발 55일부터 58일까지)
일행은 다음날 아침까지 남서쪽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임시거처가 있는 연못 근처까지 왔으나 연못에는 물이 전혀없는 말라버린 연못이었다. 가르세 신부는 주민들에게 ‘이 연못은 언제부터 물이 말랐나’하고 설명해줄 주민을 찾았다. 그리고 주민들로부터 근처 바위투성이 산에 있는 연못에서 바다생선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디 안자 일행은 지금 라구나 살라다(Laguna Salada)라는 바다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와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코하트 부족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디 안자는 사막을 가로질러 바닷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일행은 서-서북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마침 마을에는 수정처럼 맑은 우물이 있고 주민 20여명이 모여살았다. 이제 일행은 산 하컴을 벗어났다. 그리고 한밤중이 되자 안내인은 야영을 권했지만 일행은 말먹이와 물을 찾아 계속 전진했다. 날이 밝자 산타 오라야와는 전혀 풍경이 다른 곳을 지나 북서쪽을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왼편에는 산 제로니모 (San Geronimo)산 줄기가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보였다. 한편에는 끝도없는 광활한 사막에 모래둔덕만이 군데군데 늘어서 있었다. 일행은 그곳에서 30여마일을 서쪽으로 전진했다. 아마도 일행은 옛날 바닷물이 말라버린 내포를 지났다고 생각했다. 강 하구까지는 90여 마일 정도로 보였다. 옛 사람들은 아마도 이 근처에서 물고기를 낚았을 것이다. 일행은 다시 이곳에서 말라버린 제방을 타고 6마일 정도 지났다. 그리고 그 반대편 제방을 산 에우제비오 (San Eusebio)라고 이름지었다.
1774년 3월 6일 일요일 (투박 출발 후 58일째)
날이 밝고 일행은 코하트 부족 출신 안내인 2명이 밤새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적들의 땅에 들어왔다고 근심하던 코하트 부족이었다. 그들이 잠자던 자리에서 평소 그들이 지녔던 무기가 발견되었다. 또 한 몇마리 가축도 보이지않았다. 아마도 사라진 가축은 인근 들판에서 물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으로 보였다. 산 에우제비오의 짠 바닷물이 갈증의 주범 같았다. 얼마 후 가축과 노새가 죽어나갔다. 날씨는 건조하고 대원이나 가축들이 탈진과 갈증으로 죽어났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일부 대원들이 물을 찾아나섰다. 오후 2시 가축과 전대원은 서-서북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18마일 가량 전진한 후 앞서가던 대원이 산자락에서 물을 찾는 어린 소년을 보았다. 일행은 소년을 데리고 다시 남서쪽으로 12마일 가량 전진했다. 그리고 앞서 출발한 대원들은 작은 연못가에서 목을 축이는 중이었다. 얼마 후 한 무리의 원주민들이 나타나 연못을 안내했던 어린 소년을 내놓으라고 했다. 다시 일단의 원주민들이 나타났다. 어린 소년을 그 가족에게 돌려주었다. 디 안자 일행은 이 작은 연못은 마을에 있는 5개의 우물에 맑고 투명한 물을 대주고 있음을 알았다. 주위에는 또한 질좋은 목초가 넉넉했다. 디 안자는 이 연못이 대원들을 지켜주었다하여 산토 토마스 (Santo Tomas)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곳은 타라발조차 전혀 모르는 곳이라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디 안자는 주위를 꼼꼼히 경계했다.
1774년 3월 7일 월요일부터 3월 8일 화요일 (투박 출발 59일부터 60일까지)
날이 밝자 디 안자는 수색조 6명을 선발하여 북쪽으로 보냈다. 나머지 대원들은 먼저 출발한 수색조를 뒤따랐다. 낯선 길을 지나다 혹시나 이상스런 부족을 만날까해서 였다. 12마일 정도 전진하자 먼 지평선 끝자락에 한 무리의 원주민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들 원주민들은 먼저 출발한 6명의 수색조에게 물을 나누어주고 다음 마실 물자리까지 안내해 주었다. 뒤따르던 대원을 본 원주민들은 두려움때문인지 달아나려했다. 디 안자가 웃음띈 얼굴로 유리구슬 등 선물을 보이며 다가가도 막무가내로 달아나려 했다. 마침 디 안자는 근처에서 식수가 고인 물웅덩이와 목초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근처에 또 다른 물웅덩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침 서서히 어둠이 몰려왔다. 야영장이 들어선 황량한 벌판에 저녁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날이 밝자 일행은 다시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전진했다. 이제 갈증과 탈진으로 노새가 죽어가던 지겹던 사막의 모래둔덕은 더 이상 보이지않았다. 대신 그곳에는 풍성하게 자란 짐승들의 먹이와 목을 채워줄 식수들이 즐비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긴장의 끈을 놓지않고 대신 가축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었다. 어느덧 산타 오라야에서 이틀 거리인 근 50여 마일지점으로 근방에 유난히 돌덩이가 많이 굴러다녀 이곳을 산타 로사 드 라스 라하스 (Santa Rosa de las Lajas)라고 지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