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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악마의 길 250마일은 죽음의 길이었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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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선 찾던 탐험대 이후 근 200년 만에 찾은 키노 신부
2월 22일 유마 토착민들의 땅에서 아침을 맞은 키노 신부 일행은 멀리서 도도히 흘러가는 콜로라도 강을 볼 수 있었다. 일행은 무려 3마일 정도 너른 강폭에 우선 놀랐다. 콜로라도 강물은 수심이 깊어서인지 흐르는 강물소리도 없이 묵묵히 흐를뿐이었다. 흐릿한 새벽 안개 사이로 물살을 차는 몇마리 새들의 모습이 키노 신부와 일행의 시야에 흐릿하게 들어왔다. 강물은 북쪽을 향해 흘렀다. 키노 신부 일행이 아직까지 ‘큰 강’ 즉 ‘리오 그란데’라고 알고있던 ‘힐라 강 (Gila)’은 이번에 바라본 콜로라도 강에는 비할 바가 못되었다.
키노 신부 보다 먼저 콜로라도 강을  찾은 외지인은 1500년 일곱개의 황금도시를 찾아나섰던 바스퀘즈 코로나도(Vasquez  Coronado)의 부하 멜치 오르  디아즈 (Melchior Diaz). 그는 탐험대를 뒤따라 연안을 끼고 출항한 보급선을 찾아 콜로라도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강변에 사는 퀘찬 (Quechan)부족 즉 오늘의 유마 인디안들이 난방용으로 피운 연기가 안개처럼 강 주위에 깔리자 이곳을 ‘연기 (Fume)’라고 불렀다. 세월이 흘러 스페인 정착자들은 콜로라도 강변을 부르던 ‘흄’ 즉 ‘연기’라는 말은 오늘날 근처의 인디안을 ‘유마 인디안’이라고  불렀다.
다시 10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뉴멕시코 개척자 후앙 오나테(Juan Onate)는 1604년 부하 30여명과 함께 뉴멕시코를 떠나 무작정 서쪽으로 말을 달렸다. 오나테 일행은 주니 (Zuni)부족과 모쿠이 (Moqui) 부족 즉 오늘의 호피 부족 마을과 아리조나의 빌 윌리암스 포어크 (Bill William Fork)를 지나 콜로라도 강에 도착했다. 오나테 일행은 콜로라도 강변을 돌아보고 이후 캘리포니아 만에 이르렀다. 당시 오나테 일행이 만났던 콜로라도 강변 주민의 자손이 현재 키노 신부 일행이 마주한 주민이다.
오나테를 수행했던 에스코바르 (Escobar)신부는 강변에서 접촉했던 토착민 추장 오타 (Otta)와의 일화를 기록으로 남겼다. (* 에스코바 신부가 남긴 ‘오나테의 캘리포니아 탐험기’를 만히 대위가 구해 읽었다.) 에스코바 신부의 기록에 의하면 오나테는 근처 모하비 마을을 에스코바 신부와 함께 방문했다. 근방에는 바하케차 (Bahacecha) 부족이 살았다. 그곳 추장은 오타 (Otta). 대단한 허풍장이였다. 그러나 이 허풍장이 추장은 의외로 영악했다. 살아온 경험으로 대부분 이곳을 찾는 외지인은 산호나 금, 은같은 희귀한 금속을 찾는다는 사실을 조상들로부터 전해들었다. 오타는 오나테 일행도 노란 금부치를 찾는다고 생각하고 마음껏 희롱하기로 했다.

오나테 일행을 마음껏 회롱하는 토착민 추장
오타는 우선 콜로라도 강과 바다사이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괴물같이 생겼다고 입에서 나오는대로 둘러댔다. 그는 에스코바 신부가 내미는 종이에 생각나는 대로 괴물을 그렸다. 오타는 또한 땅에 끌리는 엄청나게 큰 귀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있다고 했다. 또한 근처에는 발이 하나인 외발 부족이 산다고했다. 이들은 모두 호수의 물속에서 물고기처럼 사는데 잠은 제방에서 잔다고했다. 그리고 이들 부족은 손목에 쇠부치로 만든 수갑을 차고 또 어떤 토착민은 노란 금속 팔찌를 찬 채 나무 위에서 잔다고 말했다. 이유는 짐승이나 벌레가 무서워 나무 위에서 생활한다고했다. 오타의 이같은 허풍에 대해 오나테와 에스코바 신부는 특별히 비난하지 않고 말하는대로 기록했다. 에스코바 신부의 기록을 읽어 본 만히는 오나테의 방문을 확인하기로했다. 키노 신부와 만히는 우선 마을의 원로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을 찾았다. 그리고 조상 중에 말을 탄 이방인 대장과 병사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전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하고 물었다. 그 노인은 분명 말을 탄 이방인들이 ‘바닷가까지 갔다가 다시 동쪽으로 되돌아 왔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한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고 했다. 키노 신부와 만히대위는 귀금속에 관해 다시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푸른 옷에 십자가를 든 부활한 여인의 전설
그러나 나이든 노인네는 ‘푸른 옷을 입고 십자가를 든 백인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노인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희고 푸른 옷을 두른 아름다운 여인이 십자가를 들고 하늘을 날아왔다. 그 여인은 머리를 베일로 가리고 투명하게 맑은 발을 가졌다. 그러나 아름다운 여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며칠이고 늘어놓고 때로는 큰 소리로 외쳤다. 푸른 옷의 여인에게 놀란 콜로라도 강변의 전사들이 여인에게 화살을 날렸다. 화살을 맞은 여인은 두차례나 죽었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여인은 다시 살아나 하늘을 날아 멀리 사라졌다”고 그 때를 회상하며 노인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노인은 계속해서 “그 여인은 몇차례 더 이 마을을 찾아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키노 신부는 이곳에 오기전 소노이타를 방문했을 때 이와 같은 이야기를 소노이타의 마을 주민들로부터 들은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뉴멕시코를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부족사이에 비슷한 이야기가 떠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푸른 옷의 아름다운 여인이 ‘혹시 성모 마리아의 현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키노 신부와 만히는 계속해서 마을의 노인에게 또 다른 백인에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는가하고 물었다. 이에 대해 노인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가면 당신들처럼 옷을 입은 피부가 하얀 사람들이 화승총으로 무장한 채 모여사는 마을이 있었다”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노인은 계속해서 “이들은 무장한 채 콜로라도 강을 거슬러 올라와 가지고온 진기한 물건과 현지인의 사슴가죽같은 모피와 교환했다”고 전해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키노 신부는 “혹시 이들은 총독의 명령으로 신대륙을 탐험하던 대원들이 배가 난파하자 부서진 갑판에 의지해 해안가에 상륙했다가 현지인들과 물물교환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대원들은 뉴스페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현지에서 현지인 여인과 결혼한 후 한동안 살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노인이 전하는 이야기는 사실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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