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토착민 노예가 된 ‘디바카’와 오비도
“죽음의 섬” 갈베스톤과 텍사스 본토사이의 거친 해협을 헤엄쳐 건넌 ‘디바카’와 오비도는 잠시 숨을 고른 다음 토착민들을 피해 내륙인 북쪽으로 향했다. 일대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아는 ‘디바카’는 이렇게 근30내지 40마일을 내륙을 향해 걷다가 오이스터 크맄상류 중간지점에서 산버나도강을 멀리 두고 다시 남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잠시 몸을 의탁했던 차루코 부족의 촌락을 지났다. 그리고 도란테스 대위 일행처럼 바스트로프강과 브라조스강을 건넜다. ‘디바카와 오비도는 모두 4개의 큰 강을 지나고 다시 작은 강과 늪을 건넜다. ‘디바카’는 오비도가 수영을 하지 못하므로 도란테스와 달리 해변과 거리를 두고 내륙에 붙어 서쪽으로 향했다.
어느날 ‘디바카’는 거칠게 흐르는 강 제방을 따라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반대편제방에는 한 떼의 토착민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잠시후 이들은 재무관과 오비도쪽으로 강을 건너왔다. 그리고 이들은 당신들처럼 머리가 노랗고 피부가 하얀 3명의 유랑자가 살아있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유랑자들이 얼어 죽거나 굶어죽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중 어느 토착민은 ‘디바카’에게 3명의 유랑자들은 일부 토착민들이 재미 삼아죽였다고 실토했다.
도움을 주던 토착민 여인과 탈주한 오비도
‘디바카’와 오비도도 도란테스 일행처럼 쿠에베니스 토착민들의 노예가 되었다. 토착민 작은 소년도 성인 토착민들처럼 두 포로를 발로 차고 얼굴에 침을 뱉았다. 그리고 뺨을 때리거나 나무가지로 때리는 것은 예사였다. 토착민들은 두 사람을 나란히 세워놓고 두 사람을 겨냥해 활쏘기 연습을 하면서 두 사람의비명을 즐겼다.
오비도가 드디어 탈주하겠다고 말했다. ‘디바카’는 잠시 틈을 보아 함께 파누코로 가자고 설득했으나 그는 이들의 학대를 견디느니 차라리 탈주하다 죽는 것이오히려 낫다고 했다. 어느 달 밝은 밤, 오비도는 ‘디바카’를 힘껏 포옹한 후 그가 강을 건널 때 도움을 준 토착민 여인과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오비도와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진 토착민 여인과 오비도의 후일담은 전해지지 않는다.
페칸 열매가 있는 제방으로 ‘디바카’를 데려가다
날씨는 점점 단풍이 고운 만추로 접어들었다. 어느날 재무관 ‘디바카’는 쿠에베니스 토착민을 따라 페칸열매를 주우러 과다루페강과 산안토니오강이 흘러드는 산안토니오만 근방으로 갔다. 토착민들은 그곳에 당신과 닮은 3사람이 가을철이면 이곳으로 페칸열매를 주우러 온다고 했다. 과다루페강 하류와 산안토니오강 제방을 중심으로 사방 40야드에 이르는 계곡에는 페칸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잘 익은 페칸나무열매가 눈오듯 쏟아졌다. 히코리과에 속한 페칸나무는 멕시코 북부와 미시시피강 일대에 무성했다. 페칸열매는 단백질과 섬유질 그리고 지방질도 풍부하고 맛이 좋아 토착민들이 즐겨찾는 가을양식이었다. 페칸열매는 한 해씩 걸러가며 풍작을 이루었다. 금년이 풍작으로 이를 주으려고 인근 토착민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멀리 90마일 거리에 있는 토착민들까지 이 곳을 찾았다. 토착민들은 가을을 페칸열매로 해결하고 여름이면 가시투성이인 선인장 열매 피클리 피어를 찾아 100마일가량 서쪽으로이동한 후 근 3개월을 보냈다. 다시 페칸열매철인 가을이 오면 제방으로 모여들었다. 이같은 생활방식은 조상들이 이들에게 전해준 생존의 지혜였다.
페칸열매를 줍는 도란테스와 3년반 만에 재회한 ‘디바카’
‘디바카’를 제방으로 데리고 간 토착민은 한참만에 페칸열매를 줍는 토착민 사이에서 벌거벗고 페칸열매를 줍는 도란테스를 찾아냈다. 도란테스는 그간 죽었다고 생각한 ‘디바카’를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유령을 보듯 여위어서 움푹 들어간 눈을 한참 굴리더니 와락 재무관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재회의 기쁨을 진한 사나이의 눈물로 대신했다. 마지막으로 헤어진 지 실로 3년반 만의 만남이었다. “죽음의섬” 갈베스톤에서’카포퀴’ 부족과 ‘한’ 부족의 노예가 되어 각기 갈라선 이후 이들은 1528년과1529년 초 그 혹심한 겨울추위 이후 서로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1532년가을, 실로 3년반만의 페칸열매의 제방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비록 미천한 야만인 토착민들의 노예가 되었지만 두 사람은 살아있음을 천주께 감사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곳 제방에는 까스티요 대위와 자신의 무어족 출신 노예인 에스테 바니코가 페칸을 줍고 있다고 했다. 야성의 땅 텍사스의 외진 강변에서 살아서 만난 4사람은 그간 목숨을 지키려 모질게 살아온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리고 토착민 부족을 탈주하여 기독교인들이 모여사는 스페인의 정착지 파누코를 찾아가자고 다짐했다. ‘디바카’와 도란테스 등 4명의 조난자들은 살아서 만나게해 준 페칸나무가 무성한 강을 “나무열매의 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수영이 서툰 까스티요 대위와 에스테바니코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혹시나 무지비한 토착민들에게 잡히는 순간이 죽음이기 때문이었다. ‘디바카’와 도란테스의 설득으로 두 사람도 탈주에 동의했다. 그리고 내년 가을 페칸열매를 주으러 올때 함께 탈주하자고 약속했다.
약간의 페칸열매에 타부족에게 팔려간’디바카’
그러나 4사람은 각기 다른 토착민 부족의 소유였다. ‘디바카’는 쿠에바니스 토착민이 소유하고 까스티요와 에스테바니코는 이구아시 토착민의 소유였다. 또한 도란테스의 주인은 마리에임 토착민이었다. 그러나 쿠에바니스 부족은 쓸모가 별로인 ‘디바카’를 얼마간의 페칸열매로 마리에임 부족에게 넘겼다. 4인의 조난자들은 페칸나무열매 수확기인 1533년 가을 다시 재회할 때 탈주를 결행하자고 약속하고 각기 주인을 따라 헤어졌다.
벌써 오랜 기간 마리에임 부족의 노예가 된 도란테스는 마리에임 부족과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었다. 그는 ‘디바카’의 훌륭한 조언자가 되었다. 200여 명정도의 마리에임 부족은 40여개의 이동식 거처를 가지고 한 곳에서 2일내지 3일간 생활하는 유목민족이었다. 이동한 곳에서 물고기나 식물뿌리, 그리고 나무열매로 연명하고 이따금 사슴을 잡기도 했다. 그리고 들판에 어슬렁거리는 털이 길고 뿔이 짧은 들소를 발견하면 전 부족이 활을 들고 하루내내 들소를 따라다니며 어렵사리 운이 없는 들소에게 달려들어 잡았다.
활에만 의지하여 들소를 잡기란 정말힘드는 사냥이었다. 키가 6피트, 그리고 무게가 1톤이 넘는 들소는 전 부족이 먹고도 남았다 . ‘디바카’가 먹어본 들소의 고기맛은 쇠고기보다 맛있고 부드러웠다고 회상했다.
활 1개 화살 2개와 타부족 여인 1명과 바꾸다
열매를 따거나 들판에서 먹을만한 뿌리를 캐거나, 그리고 땔감을 주워오는 일이나 식수를 받아오는 일 같은 허접스러운 일은 모두 여인네의 몫이었다. 마리에임 부족은 타부족과 싸움이 벌어지면 가능한한 많은 여인네를 생포했다. 그리고 여인 한명당 활 1개, 화살 2개를 보상으로 적에게 건넸다. 이제 마리에임부족이 된 여인네는 마리에임 부족의 아이를 낳고 키우고 마리에임 부족을 따라다니며 온갖 잡일을 했다. 그리고 부족들은 먹을 거리가 시원치 않으면 거미, 도마뱀, 도룡용이나 뱀 등 닥치는대로 잡아먹고 살았다.
‘디바카’와 도란테스는 언제나 배가 고프고 잡일에 허덕였다. 부족이 이동하는여름철이면 유난히 모기가 많고 날아다니는 벌레들이 모여 들었다. 두노예는 한 밤 모깃불을 피우고 불이 사이지 않게 계속 화목을 챙겨야했다. 혹시 잠이라도 들었다가 부족에게 발견되면 무자비한 매질을 당해야 했다.
1533년 마리에임 부족과 까스티요 대위와 에스테 바니코의 주인 이구아시 부족은 선인장 열매가 지천으로 깔려있는 남쪽으로 서서히 이동해 갔다. ‘열매의 강’에서 근 100여 마일거리인 누에세스강 하류인 오늘의 코르푸스 크리스티만 근방에는 가시가 많은 선인장 프리클리피어 즉 선인장 열매가 지천이었다. 말을 탄 사람의 키만큼 자란 선인장에는 맛이 단 열매가 풍성하게 달렸다. 열매를 먹으면서 토착민 부족들은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페칸나무 열매 수확기인 가을을 기다려 다시 100마일을 걸어 조상들이 살아가던대로 다시 페칸열매가있는 ‘열매의 강’을 찾아갔다. 선인장 열매가 있는 이곳에서 파누코까지는 그만큼거리가 가까워 탈주가 용이했다. 선인장들에서 다시 만난 4인의 노예들은 파누코를 향해 탈주하기로 약속했다. 날짜는 9월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로 정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