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 말라가 시내를 떠돌던 스콴토는 스페인에 머물던 뉴 펀드랜드의 재무관 존 스랜니 (John Slaney)와 연을 맺었다. 존 스랜니를 따라 영국에 건너온 스콴토는 존 스랜니 집에 머물며 영어를 읽혔다. 1610년부터 뉴 펀드랜드의 큐퍼스 코브 (Cuper’s Cove)지역에 정착한 존 스랜니는 장차 마사추세트(*마사추세트는 보스턴 인근 지역에 정착한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다) 인근 원주민이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리고 존 스랜니는 총명한 스콴토를 자신의 통역겸 북 대서양일대 자원개발을 조언할 수 있는 보조원으로 고용했다.
얼마후 스콴토는 뉴 펀드랜드의 지사겸 선장인 존 메이슨에게 파견되었다. 스콴토는 뉴 펀드랜드에서 존 메이슨 선장겸 지사를 보좌하면서 그의 생애를 결정지어주는 존 메이슨의 탐험 선단을 지휘하는 토마스 데르메르 (Thomas Dermer: c1590-1622 여름)를 만났다. 토마스 데르메르 선장은 뉴잉글랜드 회사에 고용되어 마사츄세트 일대의 원주민과 비버모피 교역을 했다. 그러나 당시 원주민 납치사건으로 파투세트와 나우세트 일대의 원주민들은 영국 상선의 접근을 막았다. 토마스 데르메르 선장은 파투세트 출신 스콴토는 파투세트 원주민과 영국인 양측간 평화를 회복하고 교역을 늘리는데 적합한 인물이라고 뉴 펀드랜드 회사에 보고했다.
스콴토 5년만에 황폐한 고향 땅에 도착
데르메르 선장은 뉴잉글랜드 일대의 선박제조업자며 거상인 페르디난도 고르지스 Ferdinando Gorges)에게 뉴잉글랜드 일대를 식민지하려면 현지인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이 지역 출신으로 현지언어가 능숙하고 현지사정에 밝은 스콴토를 추천했다. 뉴잉글랜드 일대 탐험선단의 최고 지휘자가 된 데르메르 선장은 자신의 통역겸 노다지 등 자원개발전문 보좌역이 된 스콴토와 함께 1619년 5월 오늘의 메인주 몬헤간 (Monhegan)에 도착했다. 그리고 데르메르와 스콴토는 5톤 크기의 작은 쌍돛대 배를 몰고 한달 후인 6월 파투세트 연안에 도착했다. 이미 파투세트 일대는 몇년전 휩쓴 역병으로 황페화되어 있었다. 인적이 끊긴 들판에는 대충 매장한 무덤만이 즐비하고 흉흉한 바닷바람만이 스쳐지나갔다. 이곳은 이미 어린이고 어른이고 인간의 언어가 실종된 죽음의 땅이 되었다. 죽음처럼 정적이 지배하는 황폐한 대지에는 미처 매장하지못해 흰 백골이 드러난 사체들 위로 먼 바다를 달려온 바닷바람만이 괴성처럼 스쳐갔다.
데르메르 선장과 스콴토는 참혹한 광경에 몸을 떨며 뒤따르는 일행과 함께 파투세트 지역을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갔다. 괴기스럽기는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일행은 다시 파투세트를 지나 노다지를 찾아가며 보스턴 (Boston)일대를 지났다. 1619년 6월 중순 데르메르 선장과 선원들은 몬헤간으로 돌아갔다. 스콴토는 오늘의 메인주 사코 (Saco)에서 살아남은 옛 친구들과 해후한 후 데르메르 선장과 헤어졌다. 데르메르 선장과 스콴토는 1620년 5월 제임스타운을 떠나 맨해탄에서 네델란드 상선이 경계를 침범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데르메르 선장은 스콴토를 데리고 잉글랜드로 향한 후 존 스미스 선장이 작성한 지도에 플리머스라고 표시된 곳을 경작하기 알맞은 곳이라고 쓴 1620년 6월30일자 편지를 남겼다. 그리고 6개월 후 102명의 청교도들이 모두가 떠나버린 황폐한 플리머스 연안의 파투세트에 정착했다.
1620년 6월 데르메르 선장은 스콴토를 대동하고 버어지니아로 향하던 중 서쪽으로 길게 면한 카파오크 (Capaock) 섬 연안에 기항했다. 마침 연안에는 많은 원주민들이 물품 교환차 몰려들었다.
호의적이던 원주민들이 갑자기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공격으로 많은 선원들이 현장에서 살해되었다. 누군가가 배에 올랐다. 그러나 그도 배의 취사실에서 살해되었다. 존 스미스의 기록에 의하면 데르메르 선장은 심한 부상을 입은 몸으로 (*일부 기록에 의하면 그는 전신에 14개의 상처를 입었다고했다) 천행으로 살아남아 버어지니아로 탈출했다. 그후 그는 상처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살육의 현장에서 스콴토가 어떻게 살아남았는 지는 기록에 없다.
60여 전사 호위받으며 대추장 정착촌 방문
플리머스 연안에 줄지어 늘어선 바닷가 소나무의 잔가지가 먼 바다를 달려온 소금기 어린 바닷바람에 떨었다. 3월의 따사로운 햇살사이로 “둥-, 둥-” 울리는 북소리와 “삘릴리-” 나무숲을 지나는 피리소리와 우람한 전사들의 노래소리가 희미한 아지랑이 사이로 새어나왔다. 사모세트와 스콴토가 흥분된 어조로 대추장과 그의 수행원이 가까이 왔다고 청교도들에게 전했다. 그리고 1시간여가 지났을 즈음 “둥-둥” 북소리가 울리더니 높다란 요새의 언덕 (Fort Hill) 맞은편 컬 (Cole’s Hill)언덕 정상에 화려한 색깔로 치장한 한 무리의 전사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활과 전투용 몽둥이로 무장한 60여명의 전사들은 아름다운 황색 깃털로 머리를 장식한 우람한 체구의 대추장 오세메퀸 (Ousemequin)과 대추장의 동생 콰데퀴나 (Quadequina)를 호위하고 있었다.
마사츄세트의 대구의 만 연안일대와 메인, 그리고 로드아일랜드 일대의 67지역 방을 다스리는 왐파노아그 부족의 대추장 (*Massoit)는 포카노케트 ( Pokanoket)지역을 근거지로 하고 그 일대를 다스렸다. 대추장과 그를 호위하는 완전무장한 전사들이 모습을 나타내자 정착촌의 청교도들은 아연 긴장했다. 자위대장 대위 마일리쉬 스탠리쉬는 소총으로 무장한 자위대원을 요소에 배치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언덕의 대포진지에서도 부지런히 대포에 화약을 준비했다. 맨 먼저 대추장 일행의 방문을 전했던 사모세트와 스콴토가 달려가 대추장 일행을 맞았다. 잠시후 청교도 측에 달려온 사모세트와 스콴토는 대추장 측에서 우선 대표 한명을 불모로 보내야만 하산하고 청교측과 대면하겠다는 대추장 측의 의사를 전했다. 그리고 대추장은 청교도 측과 평화를 논의하고 상호 안전한 교역을 원한다고 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