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절대자는 원주민 노예를 도구삼아 청교도에게 추수감사절을 선물했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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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세트 부족에 옥수수, 콩 씨앗 값 변상
7월말경 존 빌링톤이라는 소년이 인근 숲속에서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된 소년은 나우세트 지역 원주민에 의해 구조된 후 부족들이 보호 중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어린 빌링톤을 보호중인 나우세트 원주민들은 청교도들이 1620년 메이플라워 정박 후 제1차 연안탐사 때 무단으로 약탈해간 나우세트 부족이 저장했던 옥수수와 콩의 정당한 값을 지불하여야만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스콴토의 중재로 나우세트 부족에게는 무단으로 약취해간 씨앗대신 칼이나 연장 등을 전달하고 나우세트 마을에서 지내던 빌링톤 소년을 구했다. 스콴토의 중재로 청교도들은 나우세트 지역 원주민과도 평화조약및 통상.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났다. 대추장 측은 대추장 오사메퀸과 그의 동생 콰데퀴나와 스콴토, 호위전사들이 그들과 앙숙인 인근 나라간세트 (Narragansett)부족의 코비탄트 (Corbltant)추장에게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청교도들은 양측간의 조약에 따라 포로가 된 추장과 그 일행에 대한 구출작전에 들어갔다. 민병대장 스탠디쉬 (Standish)대위가 즉시 10명의 소총수로 구성된 대원들을 지휘하여 나라간세트 부족 마을에 침투했다. 활과 화살로 무장한 코비탄트의 부하들은 자위대들의 화력에 적수가 되지못했다. 교전시작 얼마 후 스콴토는 격전장을 탈출했다. 또한 대추장도 탈출하여 자신의 전사들을 지휘했다. 코비탄트는 부하들이 자위대의 총격에 부상을 입자 재빠르게 탈출했다. 대추장과 자위대는 코비탄트를 체포하는데 실패했다. 대신 총상을 입은 적군을 정착촌에 후송하여 긴급수술 끝에 모두 목숨을 구했다. 이같은 소식은 바람처럼 인근 지역에 퍼졌다. 자연 청교도들의 뛰어난 무력과 적군의 생명을 구했다는 소문은 인근 마을에 퍼졌다. 이렇게 되자 적대시하던 코비탄트를 비롯한 인근 원주민 부족 추장들도 청교도 측과 상호 방위조약과 통상관계조약 맺기를 원했다. 물론 대추장 오사메퀸의 노력과 중재, 그리고 스콴토의 활약으로 1621년 9월 13일 인근 부족들은 대영제국 제임스 1세의 이름으로 된 조약안에 아래의 인사들은 서명 또는 표시를 했다. 대추장의 포카노케트 측은 대추장대신 동생 콰데키나가 서명했다. 서명 또는 참여하여 표시한 추장 9명은 아래와 같다.
Ohquamehud, Nattawahunt,
Quadaquina, Cawanacome,
Caunbatant, Huttmoiden, 
Obbatinnua, Chikkatabak, Apannow

죽은 생선 거름으로 비옥한 땅에 옥수수, 콩 파종 
“둥, 둥, 둥” 우람찬 북소리와 청아한 피리소리가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즈음 스콴토는 대추장 (마사소이트)에게 달려갔다. 유럽인들과 근 5년을 함께 생활한 후 절대자의 자비를 직접 체험하고 같은 절대자를 영접한 스콴토는 청교도들을 낯선 외지에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그대로 버려둔다면 해맑은 웃음을 보이던 어린이나 친절을 베풀던 청교도들은 수확기까지 살아남으리라고 보장할수 없었다. 이들에게 황야같은 낯선 땅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절대자가 자신에게 내린 명령이라고 생각했다. 스콴토는 대추장에게 달려가 청교도들이 낯선 외지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자신이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추장의 허가를 받은 스콴토는 서둘러 정착민 마을로 달려갔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정착민들에게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러 왔다고 말했다. 절기는 마침 파종시기였다. 3월 중순 돌보는 이 없어 황폐한 파투세트 지역은 청교도민들이 파종하려 갈아 엎은 모래투성이 들판만이 을시년스럽기만 했다.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나면서 가져온 밀이며, 보리 그리고 귀리는 파종을 한 지 한참이지만 싹을 트이지 못했다. 스콴토는 청교도민을 들판으로 불러 우선 땅을 비옥하게 해주어야만 옥수수며 콩 그리고 호박이 실하게 열매를 맺는다고 유창한 영어로 설명했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옥수수는 컬럼부스 이후 유럽에 소개되어 청교도들에게는 낯선 곡류였다. 스콴토는 낚시나 그물같은 고기잡이 도구없이 물고기를 쉽게 잡는 법을 청교도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고랑이 쳐진 들판에 죽은 청어를 묻었다. 그리고 고랑 양편을 두둑하게 높였다. 당시 원주민들은 옥수수, 콩 그리고 호박을 삼남매라고 부르며 세가지 작물을 함께 파종했다. 즉, 낮은 고랑에는 옥수수를, 고랑 양편에는 콩과 호박을 파종했다. 거름으로 비옥해진 파투세트 들판은 얼마 후 푸른 옥수수와 콩이 바람에 물결치는 녹색의 바다가 되었다.

춘궁기 스콴토 도움으로 아사를 면한 청교도들
대구의 만에는 그물도 없이 대구를 건져 올릴만큼 대구가 천지였지만 청교도들은 그물이 없어 잡지못하고 굶어가면서도 구경만했다. 가을 추수철은 아직 멀었다. 자칫 살아남은 청교도들은 양식 없이 굶어죽을 판이었다. 그러나 스콴토는 청교도들에게 해안가에서 도구도 없이 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치고 숲속을 나다니는 사슴이나 노루, 토끼 등을 화살로 사냥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녀자에게는 바닷가에서 쉽게 조개를 줍거나 뱀장어를 잡는 법과 요리법을 가르쳤다. 또한 어린이에게는 먹을 수 있는 나무열매나 오디같은 열매 또는 야생 딸기류를 채취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청교도들에게는 두통이나 벌레물린데 효험이 있는 메이애플 식물, 상처나 앨러지, 그리고 뱀에 물린데 치료제로 쓰이는 페일 퍼어플 등 약초를 구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신천지에서 조심해야할 곤충이나 동물에 대해서도 세세히 알려주었다. 스콴토는 또한 인근 원주민들과 성공적으로 물품을 거래하는 방법도 실제로 보여주었다. 이렇게해서 청교도들은 파종한 옥수수나 곡물을 수확하려면 5, 6개월이 걸리는 기간에도 아사를 면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50여 주민  20에이커  땅에 옥수수, 콩을 파종
플리머스의 청교도들이 왐파노아그 부족과 평화협정을 맺을 당시 플리머스의 주민은 모두 50명이었다. 1620년 11월 상륙당시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태어나 모두 102명이 상륙했으나 1620년 12월 16일 플리머스 연안에 정착했을 때는 4명이 사망하여 99명만이 정착했다. (*출항전 누수로 인해 대서양 항해를 포기했던 스피드웰 호는 1621년 플리머스 해변에 이주자 20명을 하선시켰다는 일부 기록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님) 그러나 1620년 12월과 1621년 봄 사이 극심한 추위와 부족한 양식, 질병 등으로 45명이 사망하여 54명만 생존했으나 1621년 4월 5일 메이플라워 호가 런던으로 출항할 무렵 지사 존 카아버와 그의 부인등 4명이 사망하여 50명만이 봄을 맞았다. 
스콴토로부터 원주민들의 전래된 방식으로 옥수수와 콩, 그리고 야채인 호박을 기른 덕에 작황은 풍작을 이루었다. 20여 에이커에 파종한 옥수수와 콩은 그 너른 벌판을 녹색의 바다처럼 물결쳤다. 상큼한 바닷바람과 햇살을 머금고 익어간 옥수수와 콩은 황금빛으로 먹음직스럽게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기나긴 여름 정착민들은 모자란 양식은 나무열매와 산딸기, 그리고 강이나 연안에서 건지거나 잡은 뱀장어, 그리고 청어와 대구, 가재, 조개 등으로 그런대로 생명을 지켰다. 그리고 스콴토를 앞세워 원주민들이 탐을 내는 칼이나 주전자 , 냄비 등 철물과 옥수수 등 양식과 교환하여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이처럼 벌판은 익은 곡식이 물결치고 더 이상 아사자가 생기지 않자 청교도 지도자들은 이에 대한 감사 축제를 갖고 절대자에게 감사기도를 바치기로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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