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절대자는 원주민 노예를 도구삼아 청교도에게 추수감사절을 선물했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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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예배에 사슴 5마리 들고 참석한 대추장 
1621년 10월 브루스터 장로의 집전으로 감사기도를 바치고 3일간의 축제를 갖기로 했다. 살아남은 50명의 정착민들은 마을 둔덕에 자리를 마련하고 절대자에게 바치는 감사기도를 드리고 절대자를 기리는 찬송가를 소리높여 불렀다. 그리고 축제에 앞서 이를 기념하는 축포를 하늘 높이 쏘아댔다. 
마침 왐파노아그 대추장은 그의 집이 있는 플리머스에서 8마일거리의 포카노켙을 출발하여 90여명의 전사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마침 산천을 뒤흔드는 영국인들의 총소리가 플리머스 일대에서 울렸다. ‘전쟁이 벌어졌다’고 직감한 대추장은 혹시나 동맹관계인 영국인들이 이웃 부족과 전쟁이 벌어졌나하고 긴장했다. 대추장은 부하들에게 총성의 원인을  알아보도록 명령했다. 이후 부하들은 정착민들은 감사기도 모임을 갖는 중에 축하의 축포를 쏘았다고 했다. 
대추장은 청교도들과 감사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로 했다. 대추장은 부하들이 사냥해온 사슴 5마리를 가지고 90여명의 전사들과 함께 감사기도 모임에 참석했다. 대추장과  전사 90여명은 땅바닥에 편히 앉아 구운 사슴과 찐 사슴고기, 바닷새와 구운 생선과 옥수수, 콩요리, 야생 칠면조를 비롯한 각종 물새요리를 즐겼다. 청교도들도 식탁에 자리하고 아침부터 준비한 요리를 맘껏 즐기며 담소했다. 이같은 축제는 3일간 계속되었다. 자리를 함께한 원주민과 청교도들은 함께 노래와 춤을 즐기고 씨름,  달리기 등으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청교도들도 오랜만에 양손을 허리에 대고 여자들은 스커트를 살짝 들어올리며 바이올린 연주소리에 맞추어 즐겁게 춤을 추었다. 
이로써 청교도와 웜파노아그 원주민간의 신뢰와 우정은 더욱 깊어졌다. 

35명 추가유입되어 주민은 모두 90명 
첫번째 감사기도모임을 가진 지 약 1개월 후인 1621년 11월말경, 35명의 이주자가 갑자기 플리머스 정착촌에 등장했다. 이들은 런던의 모험가 상인집단의 토마스 웨스턴 (Thomas Weston)과 그 동료들이 후원한 포츈 (Fortun)호로 대서양을 건너온 새로운 이주자들이었다. 이들은 메이플라워 호 이후 플리머스에 합류한 최초의 이주자들이었다. 이제 플리머스에는 모두 90여명의 이주자가 모여살게 되었다. 
포츈 호는 1621년 11월 9일 대구의 만에 정박했으나 11월 말경 플리머스 연안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포츈 호에는 플리머스 정착민을 지원하는 양식을 비롯한 일체의 물품이 실려있지 않았다. 대신 제한된 양식에 35개의 반갑지 않은 입만 추가되어 정착민을 불편하게 했다. 런던의 모험가 상인들은 돌아올 포츈 호 편에 이주시 약속대로 귀한 비버모피 등 진기한 신세계 상품을 보내라고 강요했다. 그들은 지난 4월 5일 귀국한 메이플라워에는 약속한 상품이 없었다고 불평했다. 
포츈 호는 2주 간 머문 후 1621년 12월 13일 영국으로 출항할 때는 당시 돈 500파운드에 달하는 비버모피와 목재 등 값진 신세계 상품을 가득 싣고 떠났다. 그러나 포츈 호는 이름값 대신 항로 측정기의 오류로 프랑스 남동쪽 연안을 표류하다 1622년1월 19일 프랑스 측에 나포되어 배에 실렸던 값비싼 상품을 모두 빼았겼다. 그리고 1622년 2월 17일 영국 테임스 강변에 도착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다음해인 1622년에는 축제를 겸한 감사예배는 갖지 않았다. 

철야기도 후  가뭄 끝 비가 내리다
1623년은 유난히 가물었다. 파종시기가 되자 청교도들은 너른 벌판에 죽은 청어로 넉넉하게 거름하고 옥수수며 콩 그리고 고랑사이에 호박 등 채소도 심었다. 그러나 찔금거리던 비는 5월 3째주부터 가뭄으로 바뀌었다. 근 2달간 비는 한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두달 이상 계속된 가뭄으로 대지는 벌겋게 불탔다. 검푸르던 잎사귀가 시든 채 늘어졌다. 청교도들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많은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바쳤다. 좀체 비가 내리지 않자 2년전 부족한 양식으로 죽어가던 한겨울의 악몽에 치를 떨며 청교도들은 일제히 해갈을 청하는 기도에 들어갔다. 
전 대원이 기도에 들어간 지 2개월여만에 정말 기적처럼 넉넉한 비가 플리머스 벌판을 흥건하게 적셨다. 늘어졌던 옥수수며, 콩, 호박은 쳐진 잎에 생기를 돋았다. 어른은 물론 어린이와 여인네까지 흠뻑 비를 맞으며 하늘을 우러러 감사를 외쳤다. 
반가운 소식은 이뿐이 아니었다. 본국에서 배 두척이 도착한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1623년7월10일140톤급 앤 (Anne)호와 그리고 이보다 10일후인 7월 20일 44톤급의 리틀 제임스 (Little James )호가 모두 90명의 건장한 이주자와 가족들을 동반하고 플리머스 해안에 정박했다. 이들과 함께 많은 양의 식량과 농사에 필요한 장비, 그리고 칼, 주전자 냄비 등 철제 생활용기도 함께 도착했다. 기다리던 양식과 이주자 그리고 많은 상품이 도착하자 정착촌에는 활기가 돌았다. 새로 도착한 90명의 이주자 중 60명은 런던의 금융회사 경비지원으로 대서양을 건넜다. 이들은 금융회사의 요구에 따라 지원금을 상환해야했다. 나머지 30명의 이주자는 자비로 대서양을 건넜기 때문에 임의로 직업을 택할 수있었다. 앤과 리틀 제임스의 도착으로 플리머스의 정착민은 모두 180명이 되었다. 이들에게는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정착민에게 1에이커의 땅이 배분되었다.   흡족한 비로 플리머스 정착촌은 풍작을 이루었다. 
윌리암 브래드포드 지사는 ‘대구의 만’ 정박 얼마후 부인 도로시가 사망하자 브래드포드 지사는 ‘앤’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네델란드 라이던 교회의 교우였던 ‘앨리스’ (Alice)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몇년전 애리스는 남편이 사망하여 홀몸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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