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가져온 식량도 거의 바닥이 났다.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어 세 사람은 산 마르셀로 디 소노이타 (San Marcelo de Sonoita)로 돌아왔다. 살바티에라 신부는 바하 캘리포니아의 굶주림에 허덕이는 가련한 어린 양들이 걱정스러워 서둘러 쿠쿠르페를 거쳐 야퀴이 강에서 바하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배를 타러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근 한달 후 살바티에라 신부는 어린 양들이 목놓아 기다리는 로레토 선교원에 도착했다.
10월에 접어들면서 키노 신부는 다시 콜로라도 강 삼각지에서 캘리포니아 대륙을 통해 바하 캘리포니아로 통하는 육상의 길을 찾아나섰다. 세 사람은 지난번 탐험 때 추후 바하로 가는 지상의 길을 찾기로 약속했다. 키노 신부는 서둘러 황실로부터 탐험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만히와 살바티에라에게는 참가할 수 없는 난제가 생겼다. 살바티에라 신부는 탐험에 필요한 말을 구할 수 없어 이번 탐험에는 참가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 또한 그의 신변 경호원이기도 한 후앙 마테오 만히는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 본래 키노 신부를 존경하고 적극 후원하던 히론자 (Domingo Jironza Petriz de Cruzate)장군은 황제로부터 소노라 지역 기동수비대의 대장 지위를 종신으로 임명받았다. 1680년 50명의 사병을 이끌고 스페인 카디즈 항을 떠나는 배를 타고 뉴스페인에 발을 디딘 히론자는 1683년부터 1686년까지 뉴멕시코 총독을 역임했다. 이후 병사들을 데리고 소노라 지역에 진출한 히론자 장군은 소노라 변방 기동수비대를 조직한 후 황실의 수비대가 없던 소노라 지역에서 약탈을 일삼던 아파치, 야노, 호콤을 제압하여 정착민 보호에 앞장섰다. 그의 조카 만히 (Juan Mateo Manje)는 1692년 뉴스페엔에 도착하여 중위로 임관된 후 키노 신부를 아버지처럼 모시면서 탐험하는 키노 신부의 신변을 보호했다. 그러나 소노라지역 군 최고책임자가 된 푸엔살다나 (Jacinto Fuensaldana)는 발라도리드 (Valladolid )에서 온 광산업자의 모함을 듣고 히론자 장군을 기동수비대 대장직에서 해임했다. 또한 만히도 현지인을 살해했다는 주술사의 모함으로 기동수비대에서 면직되어 더 이상 키노 신부를 보좌할 수 없게 되었다. 살바티에라 신부와 만히가 탐험에 불참하자 키노 신부는 단독으로 탐험에 나섰다.
키노 신부 홀로 육상탐험길에 나서다
소노라 일대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철새들도 고향을 찾아 줄을 지어 차가운 창공을 열을 지어 북으로 날았다. 키노 신부는 11월 3일 몇 명의 토착민 보조원과 그리고 양식과 일용품을 실은 몇 마리 노새와 소노이타 목장에서 키울 말 몇 마리를 몰고 탐험길에 나섰다. 소노이타 목장에는 젖소와 소, 양같은 가축은 있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목장에서 키울 말 몇 마리를 몰이꾼들이 몰고갔다. 탐험길에 오른 키노 신부는 기필코 바하 캘리포니아 가는 길을 걸어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키노 신부는 코코스포라를 통해 구에바비 (Guebavi)가 있는 북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노갈레스 (Nogales)를 거쳐 남쪽으로 돌아 시보다 (Siboda) 그리고 부사닉(Busanic)을 지나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파파궤리아 (Papa gueria)를 지났다.
몰이꾼들이 모는 말이나 짐을 실은 노새들은 낯선 길을 가면서도 몰이꾼의 말을 잘 따랐다. 어느덧 황량한 사막에 이르렀다. 그러나 안내인은 이제 물웅덩이는 없다고 겁을 주었다. 키노 신부는 안내인에게 선물을 건네면서 달랬다. 그러자 겁을 주던 안내인은 한밤중 넉넉하게 물이 고인 물웅덩이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러나 그곳은 깊은 협곡이었다. 가축을 포함한 일행은 협곡을 빠져나오는데 애를 먹기도했다. 협곡을 어렵사리 빠져나온 일행은 계속 소노이타로 향해 전진했다.
일행은 오우트캄(Ootcam), 산타 사비나(Santa Sabina)를 지나 산 마아틴 (San Martin)을 거쳐 드디어 소노이타에 도착했다.
진주 알과 진주조개를 선물하는 현지인들
이제 낯익은 소노이타 주민들은 말까지 몰고온 검은 망토의 키노 신부를 열렬히 환영했다. 특히 유마인들의 이웃 퀴키마스(Quiguimas) 인디안들은 키노 신부에게 7개의 영롱한 진주알과 아름답고 푸른 진주조개를 선물했다.
소노이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키노 신부는 마을 주민들에게 몰고온 말을 기르는 법을 가르친 후 산페드로로 향했다. 이번에도 ‘악마의 길’을 탔다. ‘악마의 길’에 들어서자 지난번 여행 때처럼 산비탈 바위사이에서 튀어나온 멧돼지며, 산토기, 긴 뿔을 가진 산양들이 길을 막고 피하지도 않았다. 키노 신부는 엘 까리잘(El Carrizal), 아구아 에스칸디라 (Agua Escandida)와 라 티나자 (La Tinaza)를 지나 산페드로 마을 근방 힐 라강변에 도착했다. 산페드로 마을에 발빠른 보조원을 보내 자신의 도착을 알렸다. 소노이타를 떠난 지 4일만인 11월 16일 많은 마을 주민들이 몰려와 또다시 산페드로 마을을 찾은 키노 신부를 기쁘게 맞았다. 다음날 키노 신부는 힐 라강 물이 유마 부족의 땅으로 휘돌아 도착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말잔등에 올라 거친 물살을 헤치고 힐라강을 건너 반대편 땅을 향해 물살을 거스르며 앞서 나아갔다. 전진하는 키노 신부를 따라 200여명의 유마인들과 산페드로에서 따라온 100여명의 피마인들이 뒤따랐다. 장수를 따르는 병사들처럼. 마치 전쟁터로 진군하는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땅거미가 질무렵 한 떼의 유마인과 피마인들은 말을 타고 앞장선 키노 신부를 따라 힐라강과 콜로라도강의 갈래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산 디오니시오(San Dionisio)마을에 도착했다. 산 디오니시오 주민들은 “말로만 듣던 마법의 사나이가 다시 왔다”고 반기었다. ‘유마’ 라는 도시는 이후 이곳에 자리잡았다. 이 마을에서 하루를 보낸 키노 신부는 11월 18일 힐라강을 다시 건너 콜로라도강 하류인 캘리포니아 만의 최상단 알타캘리포니아의 퀴키마스 (Quiquimas) 부족 마을을 찾아 남서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