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탐험을 끝내고 140일만에 투박에 들어서다, 산 가브리엘 선교원에 도착후 양식 구하려 산디에이고로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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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일 월요일부터 5월9일 월요일까지 (투박 출발 115일부터 122일까지)
5월 1일 디 안자 사령관은 산가브리엘 선교원에 다시 돌아왔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디아즈 신부는 병중에 있는 누에바 가리시아의 페레즈 함장으로부터 그가 싣고온 화물의 6분지1을 확보하려 산디에이고에 가있었다. 마침 신부는 병중이었다. 하루를 휴식한 다음 디 안자와 17명의 대원은 5월 3일 길을 떠나 산가브리엘 선교원에서 동쪽으로 15마일 거리의 곰이 나오는 오리나무 숲 근방의 계곡에서 야영했다. 3주전 가르세 신부도 이곳에서 야영했다. 디 안자는 남쪽으로 달려 산타아나 강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부터 가르세 신부 뒤를 바짝 추격했다. 마침 길도 메말라 하얗게 거위가 덮은 부카레리 호수까지 15마일 거리는 달리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다음날 일행이 산카를로스 길을 따라 달릴 때 마침 덤플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말 세 마리가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병사들이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말을 달려 이중 4명의 원주민을 생포했다. 생포한 원주민을 사형시키겠다고 위협하고 매질한 후 모두 방면했다. 이후 디 안자는 가르세 신부도 같은 장소인 산타카타리나에서 원주민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곳에서는 자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수비대 측에서도 알고었었다. 파저스 몬트레이 수비대장은 (*Pedro Fages: 1734-1794. 가스퍼 포톨라가 캘리포니아 지사 때 부지사를 지냄. 1782-1791년까지 제5대 캘리포니아지사 역임) 이미 병사들에게 이곳 원주민의 저항을 진압하도록  명령했었다고 한다. 5월 7일 토요일 디 안자 일행은 33마일을 달린 후 산세바스티안에 도착했다. 장차 닥쳐올 고난을 예견한 듯 일행은 8일 어둠이 채 가시기 전 가르세의 발자취를 따라 늘어선 모래둔덕을 지날때까지 계속 말을 달렸다. 일행은 황폐한 사막을 지나 한밤중 우물이 있는 라스 안구스티아스 마을에 도착했다. 갈증을 챙긴 후 일행은 하루내내 51마일을 또 달렸다. 그러나 지나는 곳마다 말들이 뜯을 목초지는 메말랐다. 한밤중 일행은 15마일을 더 달려 새벽 무렵 산타오라야에 도착했다. 일행은 하루 24시간 쉬지않고 달려 근 60마일을 달렸다. 산타오라야에서 일요일 하루내내 휴식을 취한 일행은 오후 동쪽을 향해 다시 말을 달렸다. 12마일을 계속 달리자 “병사들이여, 사령관이여, 친구들이여, 주군의 병사들이여”라고 외치는 유마인들이 일행을 반겼다. 유마인들의 소동으로 일행은 늦으막한 한밤중 야영장을 차렸다. 그리고 가르세 신부 일행이 2주전 이 근방에서 머물렀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디 안자 사령관 일행이 달려온다는 소식에 팔마 추장은 디 안자 사령관의 도착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1774년 5월 10일 화요일 (투박 출발 123일) 
12시 경 디 안자 사령관과 일행은 콜로라도 강과 힐라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잠시후 디 안자 일행의 무사 귀환을 환영하는 팔마 추장이 호위전사들과 함께 도착하자 두 사람을 반갑게 마주했다. 팔마 추장은 어려운 탐험 여행을 끝내고 별다른 사고없이 돌아온 디 안자 사령관과의 재회를 진심으로 기뻐했다. 팔마 추장은 디 안자 사령관을 자신의 친족처럼 사랑하고 자신의 분신처럼 아꼈다. 팔마 추장은 또한 디 안자가 먼 길을 떠나면서 자신에게 위탁했던 가축과 자신을 돌보려 남겼던 3명의 과묵한 병사와 통역, 그리고 시종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리고 가르세 신부가 자신의 부족들에게 넘겨준 양식과 16두의 젖소 등 가축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했다. 팔마 추장은 또한 자신의 부족들에게 디 안자 일행이 강을 건널 뗏목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12시 넘어 뗏목이 완성되자 디 안자 사령관과 디아즈 신부, 그리고 일행은 뗏목에 올랐다. 100 여명의 유마인들이 강물에 뛰어들어 일부는 뗏목을 밀고 일부는 매어있는 밧줄을 끌어 6백여 야드 거리의 건너편 제방에 뗏목을 대었다. 팔마 추장의 부하들은 콜로라도와 힐라 강의 제방 전후에 보초를 세워 만약의 경우에 대비했다. 가르세 신부가 1774년 3월25일 양식을 구하러 산디에이고로 출발한 이후 두 사람은 근 66일만에 마주했다.
1774년 5월 11일 수요일부터 12일 목요일까지 (투박 출발 124일부터 125일까지)
디 안자 일행과 미리 도착했던 가르세  신부일행은 잠시 담소 후 휴식을 취했다.  가르세 신부는 디 안자 사령관과 재회하기 전 이미 모든 탐험일정과 탐험 기록을 알타(Alta) 수비대를 경유하여 부카렐리 지사에게 보낸 후였다. 디 안자는 가르세 신부와 재회한 사실을 알리는 전령을 다시 알타 수비대에 급파했다. 당시 가르세 신부는 디 안자 사령관이 어떤 길을 택해 투박으로 돌아갈지 알지못했다. 가르세 신부는 자신이 요청한 양식이 알타 수비대를 통해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다. 가르세 신부가 지사에게 요청한 양식은 디 안자 일행이 투박에 도착할 때까지 지사는 보내지않았다. 디 안자는 힐라 강 줄기를 타고 투박으로 향했다. 가르세 신부는 알타 수비대에 전령 2명을 보내 이같은 사실을 전하는 소동을  벌였다. 이날 몬트레이 사령관 페이저스 (Fages)는 디 안자 사령관이 안전하게 힐라 강에 도착할 때까지 안내해줄 지역 안내인을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전령을 통해 전해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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