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폭도 진압과 투박 수비대 (1)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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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와 정착민 물러가라” 일제히 봉기
부하들 앞에서 켈러 (Ignacio Xavier Keller )신부로부터 심한 모욕을 받은 피마 보조군 상장군 루이스 디 사릭 (Luis de Saric)은 집안에 칩거하면서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러기를 한동안 꾀를 짜내던 루이스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부하중에서 재빠르고 영리한 부하들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루이스는 부하들에게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성한 땅을 무단으로 점거한 스페인 정착민들을 증오했다. 또한 자신들의 영혼을 하느님께 인도한다는 구실로 일상을 규제하는 스페인 황제의 앞잡이 사제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침략자들의 속박에서 벗어나자고 설파했다. 루이스와 같은 생각을 해온 전사들은 무조건 상장군 루이스를 따르기로 약속했다. 
1751년 11월 중순, 루이스는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 사릭 (Saric) 마을 깊은 협곡으로 그와 뜻을 함께하는 전사들을 불러 모았다. 53마일 거리의 델 박(DEL Bac)뿐만 아니라 34마일 거리의 투마카코리 (Tumacacori), 그리고 아리바카, 구에바비에서도 전사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루이스의 계획에 전적으로 찬동하고 오는 11월 20일 토요일 일제히 들고 일어날 것을 약속했다. 
루이스는 약속한 날인 11월 20일 구에바비 등 봉기를 약속한 전사들의 마을로 “땅거미가 지고 먼데서 북소리가 울리면 무조건 선교원을 습격하고 사제들과 선교원의 앞잡이들을 무조건 살해하라”는 전령을 보냈다. 어두움이 몰려오자 루이스의 명령을 받은 전사가 밤 하늘에 불화살을 날렸다. 기다렸다는 듯 먼데서 “둥, 둥”거리는 둔탁한 북소리가 개짓는 소리와 함께 울리면서 수백년 피마인들의 한은 끔직한 살육전으로 분출되었다.   루이스는 아파치들이 몰려온다는 거짓 소문을 낸 후 정착민과 네넨비그 신부의 시종 등 20여명을 자신의 초옥으로 유인 불사르게 한 후 불태워 죽였다. 화마와 연기를 피해 튀어나오는 정착민은 문을 지키던 폭도들의 몽둥이에 어이없게 죽어 넘어갔다. 루이스의 폭동과 살육은  선교원 집사와 인근 정착민과 부인과 어린 아이들인 4명의 성인과 4명의 젊은이 2명의 여인네, 9명의 어린이와 1명의 멕시코와 백인혼혈인과 야쿠이 인디안이 방망이에 맞아 무참히 살해되었다. 이같은 폭동은 카보르카를 비롯한 투부타마, 아리바카 등 사릭마을 주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일찌기 피마 인디안들의 저항은 1734년 7월 31일 수암카 (Suamca)에서 일어났다. 수암카 근방 토착민들은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선교원을  약탈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와같은  약탈은 근방 구에바비 (Guevavl)에서도 벌어졌다. 마침 선교원의 세게서르 (Segesser)신부가 박 (Bac)에서 용무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선교원은 인디안들의 약탈로 초토화되었다. 인디안들은 선교원의 목장에서 말이며 소같은 가축을 몰고 가버려 목장문은 열린 채 비어있었다. 또한 폭도들이 헤집고 간 사제관은 난장판이었다. 박 (Bac) 선교원은 세게서르 신부가 떠나고 마침 스티거 (Stiger) 신부도 외출 중이었다. 한떼의 인디안들이 선교원으로 몰려들어 사제관을 약탈했다. 인디안들은 총독이 스티거 신부에게 선물한 5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예복과 선교원의 온갖  성물을 약탈했다.
악덕 정착민, 헛소문으로 선교원과 인디안 이간질 
이 소식을 들은 근처 수비대의 디 안자 1세 (de Anza de Bautista: 샌프랜시스코에 수비대를 세운 디 안자의 아버지) 대위가 수비병을 이끌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스티거 신부를 비롯한 인근 선교원 사제들의 설득으로 인디안들은 각자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간 후였다. 인디안들은 수비대의 ‘디 안자’ 대위가 자신들을 몰살하려한다는 악덕 정착민이 퍼트린 유언비어에 놀라 선교원을 습격했다고 했다. 당시 일부 악덕 광산주와 농장주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숨기려 선교원과 피마 인디안 사이를 이같은 헛소문으로 이간질했다.
1745년 초 켈러 (Keller) 신부는 가루초 (Joseph Garrucho)신부와 함께 구에바비로 말을 몰았다. 그리고 구에바비의 신자들에게 새로 부임하는 가루초 신부를 소개했다. 루이스가 폭동을 준비할 무렵 투부타마 인디안 사이에는 루이스의 폭동음모가 흘러나왔다. 투부타마 선교원의 마토비트 (Ignacio Matovit)는 인디안들이 선교원을 약탈하고 사제와 신자를 살해한려한다는 음모를 전해들었다. 마토비트는 한시가 급하게 이웃 선교원에 이같은 위급상황을 알려 사제와 신자들의 목숨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토비트는 이같은 끔직한 소문을 투부타마의 세델마이어 신부에게 전했다. 당시 피메리아 알타 일대에는 소수의 정착민이 살고 있었다. 루이스는 이중 완전무장을 하고 자체 방어할 수 있는 정착민은 소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규모가 크다는 산타 아나(Santa Ana)의 정착민이래야 혼혈인 메스티조를 포함, 1백명이 채 안되고 근처의 테레나테 (Terrenate) 수비대와 전방초소조차 적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수비대의 병사들도 인근 전방초소에 파견나가 있을뿐만 아니라 잔류 병력도 전염병에 감염되어 작전에 참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루이스는 이러한 상황을 꿰뚫어보듯  알고 있었다. 
토착민 신자 귀띰으로 사지에서 탈출한 사제 
투부타마의 세델마이어 (Jacobo Sedelmayar)신부는 즉시 선교원 인근에 거주하는 토착민 신자와 정착민과 파견나온 병사 2명을 사제관에 피신시키고 함께 방어에 나섰다. 그리고 사제관 내에 이동식 대포을 배치하고 피신한 14명을 소총으로 무장시켰다. 세델마이어 신부는 폭동의 음모지 사릭 (Saric) 마을의 공소에 나가있는 넨트비그 (Nentvig) 신부에게 위급함을 알리기로 했다. 턱밑까지 다가온 죽음을 까맣게 모르는 넨트비그 신부에게 세델마이어 신부는 충직한 마토비트에게 위험을 알리는 편지를 전하는 중임을 부탁했다. 투부타마에서 사릭 (Saric)까지는 약 21마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세델마이어 신부는 마토비트에게 피마인들을 경계하고 한시바삐 투부타마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마토비트 손에 쥐어주었다. 마토비트는 피마인들의 눈을 피해 이날 밤 늦게 폭동의 진원지 사릭에 있는 넨트비그 신부를 찾았다. 루이스 사릭의 음모를 전혀 모르던 넨트비그 신부는 세델마이어 신부의 편지를 보고 놀랐다. 주위가 눈치채지 못하게 마을 밖까지 말을 몰고온 넨트비그 신부는 마을 밖에서 말에 올라 저녁내내 투부타마로 말을 몰았다. 그날 밤 자정무렵 사제관에 도착한 넨트비그 신부는 완전무장한 주민들과 함께 소총을 들고 방어에 들어갔다. 
사제탈출에 분노한 루이스, 인근 신자살해
루이스는 넨트비그 신부의 감쪽같은 탈출 소식을 얼마후 알았다. 넨트비그 신부를 살해하러 갔던 폭도들로부터 신부의 탈출 소식을 전해들은 루이스는 크게 화를 내고 이어 폭도들과 함께 추격에 나섰다. 그러나 어두운 밤 말을 타고 달아난 넨트비그 신부를 추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얼마후 폭도들은 신부가 이미 자신들의 추격권 밖에 있음을 확인했을 때 다행이 사릭 선교원의 집사인 로레아노의 집을 발견했다. 이때 로레아노는 자신의 가족은 하느님의 자비에 맡긴 채 피신한 후였다. 어린 자녀들과 부인은 잠시후 들어닥친 폭도들에 무참히 희생되었다. 이날밤 25명의 무고한 주민이 폭도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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