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방기독교회역사와 서방유럽국가 형성사에서 로마황제 콘스탄틴과 테오도시우스 1세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콘스탄틴 황제는 다신론적 이교주의로 그동안 풍미한 로마제국의 풍토속에서 일신론의 기독교가 로마의 국가종교로 채택되는 기초석을 놓았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후 십자가문양을 그의 군대에 도입하게 하였고 그의 주화에도 십자가문양이 들어가게 하였다. 그는 로마제국과 교회가 하나로 몰입되어가는 전단계 과정을 만든 인물인데 심지어 교회의 신학적 논쟁에도 관여하게 되었고 어떤 경우는 비정통교리를 주장하는 신자들에게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한 일도 일어났다. 그는 로마제국내 여러 대형교회를 세우기도 하였고 심지어 그의 라테란 궁정을 로마교회 감독에게 희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황제의 선심성 미미한 행동이 후일 로마 가톨릭교회가 라테란 궁정을 기점으로 서방 유럽 국가권력위에 군림하는 정치-종교적 힘의 원천이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콘스탄틴황제는 교회 성직자에게 여러가지 혜택을 부여했는데 군역과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 성직자 우대정책은 교회안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계급적 구분현상을 부채질하게 되었고 국가가 교회내 일에 깊숙히 관여하는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황제는 로마법을 기독교적 가치에 근거하여 개정하였고 간음, 축첩제도, 그리고 성매매의 성적 범죄들을 엄격하게 다루게 하였다.
황제의 친 기독교적 정책은 기독교에 좋은 공헌도 했지만 반면에 국가권력의 교회간섭, 성직자와 평신도의 계급적 격차현상, 정치사회적 위상을 높이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교회로 들어오게 된 일, 그리고 공인된 교리이외의 다른 주장을 공권력으로 진압하는 악영향도 일어나게 되었다. 어느 사가는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개종은 서방유럽사회를 국가와 교회가 일치된 기독교적 왕국으로 진입하게 만든 설계가로서 그의 등장은 바로 중세시대의 서막을 연 것으로서 콘스탄틴 황제 한 사람 때문에 서방기독교회와 서방세계는 그 이전과 그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대역사적 전환점을 이루었다.
하지만 콘스탄틴과 그의 아들들의 친 기독교적 정책이 마냥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고 콘스탄틴 황제의 조카 줄리안이 황제에 등극했을 때 상황은 역전되어 숙부 콘스탄틴황제의 기독교 개종 이전의 다신론적 이교주의로 환원하게 되었다. 기독교 성직자에게 부여했던 국가적 혜택을 폐지하고 기독교적 문양을 폐지시켰다. 그대신 로마제국내에서 이전에 횡행했던 온갖 이교적 신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제사장들을 세우며 제사를 지내게 했다. 하지만 그의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갑작스런 죽음은 다시 로마제국으로 하여금 친기독교적 정책을 추진하게 하였고 동서로마를 모두 장악한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때는 명실공히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가종교로 선포되었다.
이때로부터 서방유럽은 국가와 교회가 일치된 기독교적 왕국체제로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 중세 천년의 역사는 국가와 교회가 일치된 체제가 그 긍정적인 면과 더불어 부정적인 요소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시간들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국가와 더불어 교회를 창제하신 주님이시며 국가와 교회를 공히 영적으로 통치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교회에게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정치적 권력을 부여하시지는 않으셨다. 국가와 교회는 일정부분 긴장상태속에서 서로에게 보완적 위치에 머물러야 양자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국가의 공권력을 존중하고 공복들이 평화롭게 통치하도록 격려하고 기도하는 반면 국가는 교회의 올바른 충고와 제언을 받아들이고 국민을 섬기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 건강한 긴장관계가 깨어지면 국가는 교회를 노예상태로 만들어 교회에 의한 혁명적 체제전복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고 정반대로 교회가 국가위에 군림하여 결국 중세교회가 보여준 바대로 교회가 권력과 돈맛을 알아 타락하는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주후 16세기 교회개혁운동은 국가와 교회의 본래의 제자리로 되돌리는 부흥운동의 성격이 있다. 서방 교회가 국가의 공권력을 업고 일신론으로 무장하여 제3세계 선교경영에 나섰을 때 그것은 자발적인 회심이라기 보다 주입과 강요의 모습을 띄었고 이런 강압적 선교정책에 반발하는 토착민들은 가차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전락하는 비인륜적이고 비성경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오늘 우리는 각자가 믿는 바를 강요할 수 없는 종교다원주의적 사회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끊임없이 겸손과 부드러움과 설득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의 주님이심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인들이 자발적으로 기독교의 일신론을 받아들이도록 힘써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