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범 작가 문학칼럼] 젊음의 한가운데 서서 10

진우의 몸이 아파트 현관의 왼쪽 벽으로 휘청거렸다. 갑자기 지진이라도 일어나 건물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기우는 듯한 그런 형상이었다. 그러나 그를 뒤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는 나의 몸은 전혀 요동이 없는 걸로 봐선 지진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히 지진이 일어날 리 만무다. 지진이 가끔씩, 예고도 없이 출현한다는 캘리포니아의 북쪽도 아닌 동부의 이곳은 지진 안전지대인 것이다. 나는 휘청거리는 그의 몸을 얼떨결에 뒤에서 잡았다.
“괜찮아요?”
뒤돌아보는 진우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것은 괜찮다는 표식일 텐데 왠지 그의 얼굴에 설핏 어두운 그늘이 옅게 드리워지는 것을 간파한 것은 단순한 나의 착시 현상이었을까.
우리들 앞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집 안에 풍기는 맛있는 음식냄새가 아니더라도 그녀는 누가봐도 음식을 만들고 있던 중이었다. 노란 티셔츠를 입은 그녀의 허리에는 분홍빛 장미가 한 송이 크게 그려진 하얀 에이프런이 둘러져 있었다. 에이프런을 두런 모습으로 음식 솜씨를 가늠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얼토당토않는 말이지만 나는 하얀 에이프런이 썩 잘 어울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음식 솜씨가 탁월할 것임을 예감했다. 그런 예감때문인지 몇 끼니를 굶은 사람처럼 허기가 거센 파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제일 앞장 서 집 안으로 들어가던 민호가 그 여자 옆에 섰다.
“이 분은 나 대신 영훈씨께 공항에서 학교까지 라이더를 주신 분.”
민호가 진우를 소개하자 아, 그 분, 하며 인사를 건네는 여자 친구를 민호는 “자기 여자 친구 이선희”라고 우리에게 소개했다.
“노래를 잘 하시겠어요?”
내가 농을 건넸다.
“이름만 이선희에요.”
그녀는 성격이 활달한 듯 했다. 목소리가 밝고 경쾌했다. 이선희란 이름에 걸맞게 노래를 잘 부를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날 민호씨 대신 고생많으셨죠?”
그녀가 진우에게 말을 건네자 진우는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기도 했고 몸이 석고처럼 굳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가, 만나서 반가워요, 할 때도 진우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인 줄은 진작 알았으나 여자 앞에서 저렇게 쩔쩔 맬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여자 앞에서 석고가 되는 사람이 여기 있었네요.”
쩔쩔매는 진우가 안쓰러워 나는 농을 건넸는데 다행히 진우가 그 농을 받아주었다.
“제가 아기처럼 여자 앞에서 낯가림을 많이 합니다. 아직 많이 자라야할 몸이지요.”
그 말을 듣고 웃음짓던 그녀가 한마디 했을 때 진우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개졌다.
“순수해보여 좋아요.”
나는 음악을 틀어놓은 기숙사 방에서 진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기숙사 방 문을 노크했을 때 나는 당연히 진우일 거라고 생각했다.
“들어오세요.”
잠그지 않은 문을 열고 빼곡히 얼굴을 들이민 사람은 그러나 진우가 아닌 민호였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내 얼굴에 쓰여있는 양 안으로 들어선 민호는 대뜸 불청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부터 했다.
“불청객이라뇨? 제 방은 언제든지 민호씨를 환영합니다.”
“그렇다면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그리고 민호는 저녁 식사 얘기를 꺼냈다. 그녀의 여자 친구가 나를 오늘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기숙사에서 도보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 아파트에 입주했다는 그녀는 같은 학교 학생이라, 그리고 기숙사 생활도 해 본 터라 방학이면 식당문이 닫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건너온지 얼마되지 않은 내가 당연히 식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민호가 그녀에게 공항에서 나와 엇갈린 얘기를 들려주었던 터라 내심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민호가 저녁 식사의 이유를 설명했다. 굳이 그런 이유가 없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초대한다는 것에 나는 고마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진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이유가 진우와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한 때문이었다.
진우에게 전화가 걸려온 때는 대략 다섯 시경,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해가 마지막 남은 기력으로 뿜어내는 햇빛이 비스듬히 창문을 타고 넘어 들어올 무렵이었다. 나는 그때, 한국 가게에서 만난 단발머리 여학생과 피자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들어와 마음이 조금 들떠 있었다. 언제 또 그녀를 만날까. 나는 침대에 누워 다음의 만날 날을 머릿속에서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의 전화번호는 미세한 바람에조차 날아가지 못하도록 내 머리 속에 못 박듯이 쾅쾅 박아놓은 상태였다. 내일은 가게에서 일하는 첫 날이니까 첫 날 기념으로 시원하게 맥주나 한잔 하자고 할까? 그러다가 나는 픽 웃고 말았다. 아르바이트 첫 날을 기념한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대기업같은 대단한 아르바이트도 아닌, 조금만 가게에서 심부름꾼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이라고 기념까지 해, 하는 생각이 들었던 때문인데 그러나 한편으론 하찮은 일의 기념일망정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저 밑 구석에서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걸려온 것이 진우의 전화였다.
“중국 음식 제대로 하는 집을 알고 있는데 거기가서 저녁 식사나 같이 할까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진우의 목소리에 향이 진한 중국 음식 냄새가 베어있는 듯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오래전부터 중국 음식을 벼르고 왔던 사람처럼 나는 군소리없이 동의했다.
나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여섯 시가 조금 넘고 있었다. 진우가 여섯 시까지 오겠다고 했으니 언제라도 문에서 노크소리가 날 것이었다.
“초대한 저녁 식사에 꼭 참석하고 싶은데 선약이 있어서 어쩌죠? 중국 음식점에 가기로 했거든요.”
침대에 걸터 앉아있는 민호를 향해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을때 문에서 똑똑 소리가 났다. 조금 늦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진우를 민호에게 소개했다.
“이 분과의 저녁 식사 선약이었어요?”
선약이 있다는 나의 대답에 약간의 실망의 빛을 보이던 민호의 얼굴이 환해졌다.
“잘 됐어요. 이 분한테 내가 신세진 것도 있고 하니까 같이 저녁 식사하러 가요. 모르긴해도 제 여자 친구의 음식이 중국 음식보다 나을 걸요?”
진우도 싫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둘이 먹는 식사보다 넷이하는 식사가 훨씬 재미있고 풍요로울 테니까.
진우는 처음 아파트 문을 들어설 때 보다 훨씬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적어도 석고나 대리석의 뻣뻣한 모습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아기처럼 여자 앞에서 낯가림을 한다는 사람이 저 정도나마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은, 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에는 젓가락을 가져가는둥 마는둥 하며 연신 맥주캔만 들어올린 덕분이긴 하겠지만 그러나 그녀가 음식이 맛이 없어요? 하고 물을 때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아닙니다. 맛이 아주 좋아요, 하고 대답하는 진우는 또 맥주캔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여기 있는 음식들, 제가 하나도 남겨 놓지 않을 테니까요.”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은 진우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입 안 가득한 음식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나는 젓가락을 또 음식으로 가져가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넉넉히 차려진 음식이었는데 내 배는 그 많은 음식을 다 채우고도 남을 기세였다. 나는 그렇게 한국 음식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하긴 거의 2주 동안 햄버거만 줄기차게 받아들인 내 배가 흥분으로 요동을 치지 않고 점잖게 있으면 그거야말로 정상이 아닐 것이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쉼없이 들락날락하는 나의 입과는 달리 진우의 입은 파리만 날리는 가게처럼 숟가락, 젓가락의 방문은 도통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가끔씩 벌어지는 입으로는 맥주만이 꿀꺽꿀꺽 넘어갈 뿐이었다.
조용하던 진우가 입을 연 것은 얼굴이 벌개지도록 마신 맥주 탓이었을까. 진우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음식 솜씨가 대단해요. 어느 음식점보다 맛있어요. 혹시 명동에 있는 YMCA에서 요리 강습을 받으시지 않으셨어요?”
진우가 음식 솜씨를 극찬한 것은 차린 음식에 손을 많이 가져가지 않은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라 짐작되었는데, 그런데 뜬금없이 YWCA 요리 강습이라니. 나는 진우가 할 말이 없으니까 그냥 넘겨짚었으려니 했다. 그런데 선희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이번 여름방학 두 달 동안 한국에 가 있는 동안 YWCA다녔어요. 집에서 빈둥대지말고 요리라도 배우라는 엄마의 성화가 여간했어야죠. 그런데 진우씨는 쪽집게세요. 신기하게 그걸 맞추네요.”
진우 자신도 선희의 대답이 뜻밖이라는 듯 그녀의 얼굴만 쳐다볼 뿐 선뜻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진우가 눈길을 돌리지 않고 선희의 얼굴을 쳐다본 것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것 역시 술의 힘이 아니었을까.
“한국에서 누군가의 집에서 먹은 음식이 이 맛이었어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맛. 그런데 맛있다는 느낌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그런 맛이었어요. 그 분 말이 YWCA에서 요리 강습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놀랍게도 들어맞은 우연의 일치였다. 가끔씩 세상은 이렇게 사소한 일로 나를 놀라게한다.
“아까 진우씨가 별로 드시지도 않으면서 맛있다고 하시길래 빈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진심이었네요. 고마워요.”
그녀의 말에 진우의 얼굴이 아까처럼 잘 익은 홍시가 될 법도 한데 그의 얼굴은 취기로 이미 벌개져있어 별 표시가 나지 않았다. 어쨌든 조용하던 진우까지 가세된 우리의 대화는 식탁을 돌고돌아 좀 더 화기애애하고 다양해져갔다.
그러던 중에 나온 것이 여행얘기였다. 세 달간의 긴 여름 방학도 끝나가는 마당에 어디라도 한번 다녀오자고 말을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민호였다. 민호는 여름의 무더위를 학교와 기숙사 방에서 견뎌낸 듯 했다. 무슨 일로인지 그의 여자친구가 한국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그는 기숙사에 머물렀다. 학교 일이 바빴을 거라고 짐작은 갔지만 그 바쁜 학교일이 무엇인지는 알 길 없었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태평양을 건너온지 얼마되지 않은 시간에, 겨우 시차적응이 된 마당에, 어디로 다시 떠난다는 것에 별로 흥미를 느낄 수 없어 나는 어디로 떠나자는 민호의 말을 건성건성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민호가 꺼낸 여행 얘기의 진행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진우가 쌍수를 들고 나선 때문이었다.
“좋지요. 저도 왠지 답답했는데 한번 떠나죠.”
그렇게 급물살을 탄 여행은 이리호(Erie Lake)로 쉽게 낙착되었다. 이리호 정도면 새벽 일찍 떠난다면 당일 코스도 가능하다는 민호의 얘기에, 한번 다녀온 적이 있는 진우가 운전사 노릇을 자청하고 나선 덕분이었다. 쇳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내일 당장 떠나자는 민호의 말에 나는 얼른 끼어들었다.
“내일부터 시작하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저는 곤란하겠는데요.”
그들에게 나의 아르바이트는 금시초문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 그들에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경위는 생략한 채 일하는 장소와 요일만 간략하게 언급했다.
“학교 앞 한국 가게에서 일 주일에 3일. 수, 토, 일.”
“그럼, 월요일에 가요. 수업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주말을 고집할 필요가 있어요? 도로 사정도 주중이 훨씬 나을거구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화살처럼 날아온 희선의 말에 날짜까지 간단히 잡혀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건 또 무슨 알 수 없는 변덕의 조화인가. 처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던 여행이 날짜까지 정해지고 나니까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밤낮으로 책과 씨름하느라 바쁠 것은 자명하다. 쥐가 날 정도로 혹사할 머리를 미리 여행으로 식혀주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면서 나는 어느새 월요일을 기다리는 여행객으로 변모해 있었다.
